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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r 21. 2022

대의(大義)가 아닌 '내'의(my義)

- 서퍼의 삶, @베니스 비치(Venice Beach)

 내가 애정하는 화가, 콰야(QWAYA)는 자신의 작업이 물감의 중량보다 가치 있는지 질문하고 고민한다고 한다. '내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줄까' 하는  본능적인 고민이라면, '이게 물감이 아깝지 않을 일인가'의 가치에 대한 고민은 조금 더 본질적이다. 명확한 증명으로서 '값'에 기대어 그 가치를 저울질할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스멀스멀 올라오는 의심의 모가지를 단칼에 쳐낼 수 없을지모른다. 




LA 베니스 비치(Venice Beach)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친구는 자신을 셰프가 아닌 서퍼(surfer)로 소개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서핑, 배구, 스케이트보드, 자전거까지 운동을 죽을세라 즐기다가 일 끝나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휘리릭 집에 와서 라면 끓이듯 무심하게 물 붓고 파스타를 삶는다. 김치 꺼내듯 냉장고를 열어 미리 만들어둔 과카몰리(Guacamole)를 척하고 내어온다. 식탁이 있지만 소파 위에서 접시를 손에 든 채 식사한다. 설거지하러 일어난 엉덩이에는 모래가 이곳저곳 묻어있지만 그대로 침대에 벌러덩 눕는다.


N년차 직장인이었던 당시의 나는 애벗키니(Abbot Kinney)거리의 카페, '블루보틀(그때만 해도 한국엔 없었지!)'에서 라떼 한잔 사들고는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조심조심 자전거를 굴려 모래사장에 왔다. 바닥에 철푸덕 앉아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고민만 잔뜩이라 잡념이 올라오면 라떼 한 모금, 또 한 모금, 그렇게 잡념을 계속 꿀꺽했더니 왠지 헛배가 불러오는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계속 여행을 다닐까. 내 삶에서 여행이라는 것이 왜 이렇게 높은 우선순위에 있는지 내 여행의 가치, 여행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허세가 정말 하나도 안 섞여있어?'

'놀고, 쉬고 싶어서 왔으면서 거창한 의미로 덮어 씌우고 있나?'

'일상에서의 문제를 여행으로만 해결하려는 습관이 들었나?' 

'회피하려는 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나?'


그렇게 흐느적흐느적 해변을 헤매는 나를 건져내어 스케이트보드를 가르쳐주던 그 친구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이탈리아에서 베니스 비치로 넘어온 후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여행해 본 적이 없다던 그였다.  먹듯이 집을 비우는 나와는 다른 삶인 줄 알았지만,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우리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인생의 의미는 단순하다. 신이 내게 좀 즐겨보라고 인생을 선물했는데, 우리는 의미만 찾느라 정신 팔려있나 싶을 때가 있다.

사실, 신은 속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게 아닐까.

"즐기는 게 네 인생의 의미라고!"

 





나는 결혼을 거쳐 가족을 만드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타의보다 오히려 대의 앞에서 뜨끔하곤 했다.  부모님의 손주 기대를 거절하는 것은 오히려 덜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이 유전자의 사명(feat. <이기적 유전자>)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허무해졌다. 여자로 태어나서 꼭 해봐야 할 경험이라는 말 앞에서는 괜히 아쉬워지기도 했다. 인구 수에 영향을 받는 국력과 역사적 흐름에 대해서는 선을 그어서 타자화할 수 있다고 해도,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큰 명제그에 대한 숭고한 대의 앞에서는 오히려 내 아무렇지 않게 박수만 치고 있도 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나는 영웅이 아니다. 타의와 대의서는 ''(my義)가 있. 남을 구하지도, 나라도 세상도 구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나만은 내가 구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꿈꾸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1인 가정이고, 내게는 남들보다 내 가정을 먼저 지키고 가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나 자신을 구하고 지키는 것보다 뾰족한 개인의 사명은 없다.


'내의'에 입각한 사명과 삶은 구체적인 미션(mission)을 갖는다. 계속된 의심에 답해가면서, 흔들려도 머지않아 돌아온다. 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는 것은 어딘가 불편하고 쓰리지만, 그렇게 정리해나가는 자신의 우선순위, 자신이 부여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 맹목적인 모든 것은 결과가 좋지 않다, 당연하게도.




사실 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큰 동력이 되는지도 실감한다. 그러고 보면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삶의 대표적인 창조활동이 아니겠는가.


낯선 펍의 bar 자리에 앉아 손으로 위스키를 느릿하게 굴려 알코올을 날리면서 씁쓸한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혼삶이, 혼술이 더 멋지게 느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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