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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r 28. 2022

나는 비빔밥을 먹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 창의적인 인생을 디자인하는 편식의 미덕

 나는 비빔밥을 먹을 기본 자질이 안 되는 사람이다.


 고향인 전주에 다녀오겠다고 하면 꼭 "비빔밥 싸와!" 하며 실없는 농담을 하던 가까운 사람들이 떠오른다. 전주 사람이라고 다 비빔밥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항변하기에 나는 꽤나 비빔밥을 좋아하고 즐겨 먹는 편이다. 고등학생 때 급식 먹기가 지겨워지면 같은 반 친구들 중 누군가의 일사불란한 리딩 하에 '비빔밥 데이'를 즐기곤 했다. 나름대로 분야를 나누어 각자 집에서 재료를 챙겨 오는데, 흰 밥 대신 흑미나 현미밥이 섞이는 것은 예삿일. 토핑으로 고구마 맛탕이나 땅콩 반찬 같은 신선한 품목이 등장할 때면 그 당혹감을 다 같이 웃어넘기며 즐기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였다. 케첩에 볶은 비엔나소시지와, 연근조림과, 멸치볶음 같은 것들을 다 같이 거대한 양푼에 비벼먹으면 비주얼에 비해 맛이 늘 훌륭해서 여럿이 전쟁처럼 덤벼들곤 했다.




 혼자 나들이하던 하루의 저녁식사로 비빔밥을 택한 최근의 어느 날이었다. 편식쟁이로서 꽤 유서 깊은 이력을 자랑하는(?) 나는 대충 슥슥 비비는 듯 보여도 실은 젓가락으로 먹기 싫은 재료를 필터링해서 한쪽으로 기술 좋게 몰아 놓는다. 누군가는 비빔밥에 빠져선 안 될 재료라고 말할 만한 무 생채는, 특유의 아삭아삭 혼자 살아남는 식감이 거슬려서 탈락이다. 그날도 늘 그렇듯 나는 유려한 숟가락 놀림으로 귀하게 몇 알 들어있는 노란 은행 열매를 걸러내어 틱- 하고 그릇 구석으로 쳐냈다. 그렇게 은행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그릇을 거의 비웠을 때쯤, 갑자기 뜬금없게도 은행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깝다'가 아닌 '안타깝다'는 마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를 아주 능숙하게 따돌린 것 같은 생각.


비빔밥은 무릇, 화합과 포용을 상징하는 멋진 음식 아니던가. 하지만 나는 비빔밥이라는 형식, 형태만 애정할 뿐 그 본질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편식쟁이, 'picky eater'다. 누군가가 아무리 식재료를 모두 섞어 먹어야 더 맛있다고 이야기해도, 나는 좋아하는 것만을 pick 해서 먹는 그런 사람이다. 삶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모든 인생을 다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고 믿기에 내게 맞는 삶의 요소만을 반찬 골라내듯 꼬집어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결혼을 하지 않는 계획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통해 얻는 좋은 점들은 어떻게든 가져가려고 한다. 무 생채와 은행을 어떻게 따돌리고 비빔밥을 먹으려는 사람이다.


나의 이러한 편식에는 리스크가 따라온다. 내가 걸러낸 것들을 대신해서 내게 필요한 영양을 가져다 줄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눈 딱 감고 싫은 것을 입에 넣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생떼 쓰는 고집쟁이처럼 살고 싶지 않기에.


그리고 그 기반에는 교만함이 깔려있다. 내 입맛도 취향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을 기본으로 하고, 혹시라도 입맛이 변화했다면 새로운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의 손실까지 감당하겠다는 교만. 유사한 경험은 유사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념이 강하고, 한번 내 영역 바깥으로 밀어낸 것을 다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관성으로 변질될 수 있다. 어떤 음식과의 첫 만남을 통한 후험적인(a posteriori) 판단 때문에 나중에 언젠가 다른 맛집에서 같은 음식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먹어 볼 생각조차 들지 않게 만드는 선험적인(a priori) 방어기제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더 편식을 하게 되기도 한다. 소화능력이 떨어지게 되면서 이것저것 많이 먹기도 힘들어지기에 한 끼의 식사를 어떤 음식으로 채우느냐 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더 중요해진다. 그 한 끼의 소중한 기회를 좋아하는 음식으로 가득 채우되, 새로운 음식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더 깊이 있고 세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소화능력이 좋은 시절에 되도록 다양한 음식을 먹어 보면서 경험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좋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골라내고도 건강하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그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식생활,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잘 디자인해 나가면 이후의 삶에서 이어질 편식에서 리스크는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밥맛 떨어지는(?) 생각들을 이어나가며 비빔밥을 다 비우고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영역 밖' 반찬들을 하나씩 입에 넣어봤다. 알고 보니 나랑 꽤 잘 맞는 반찬들이었다. 하나같이 따돌림당할 이유는 없는 반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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