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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r 25. 2022

비혼? "납득이 안 돼, 납득이!"

- 부족한 건 내 설득력인가 vs 타인의 포용력인가

 "그만 좀 해! 세상 사람들이 다 당신 같진 않아!"

 "나도 알아. 그게 바로 사람들의 문제점이지."

 찰스 부코스키의 책, <할리우드>의 이 대목은 말 그대로 나를 뒷목 잡고 뜨억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이런 대사를 뱉을 수 있는 위인이 아니었다. 결혼하지 않으려는 계획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다 보면, 듣는 이들은 당연하게도 내가 뒤이어서 결정을 내린 이유나 논리에 대해 설득해 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를 애정 하는 주변 사람들은 내 결정과 삶에 공감하고 싶은 어여쁜 선의를 바탕으로 진심 어린 궁금증을 표현했다. 내가 결혼하지 않는 계획을 갖게 된 계기나 감정도 중요하지만, 내가 부정할 수 없을 만한 탄탄한 논리로 그들을 설득해 주길 기대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나의 "혼삶"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내가 '준비되어 있길' 기대했다. 


 책 <비혼수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세상을 납득시킬 필요가 없다. 삶의 모양 중 하나인 비혼을 납득시키거나 설명하려고 애쓰지 말자. 내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이유를 남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듯이."

그건 그렇지. 결혼하지 않는 계획에 대해서 타인을 납득시킬 필요는 없었다. 아니,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굳이 납득시킬 '필요'는 없어도 '니즈(needs)'는 아주 강했다. 나에 대해 듣고자 하는 타인의 니즈보다 더 큰 것은 사실 나 자신의 니즈였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결정을 납득시키고 싶은 대상이 있지 않나, 이해시키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나.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이유를 남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 말이다. 




 온통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상상해 본다. 만나기만 하면 쉴 틈 없이 요새 무슨 아이스크림이 맛있는지 이야기하고, 우리끼리 신제품 소식을 공유하며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기도 한다. 이런 '아이스크림 연대' 속에서 아이스크림에 대한 사랑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런 내가 어느 날 새로운 사람들과의 술자리에 갔다가 간식을 사러 편의점에 들르게 되고,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을 한 봉지 한가득 사서 하나씩 나눠준다. 그중 한 명은 아이스크림을 바로 뜯지 않고 테이블에 올려만 두고 있다. "왜 안 먹어요? 그거 맛있는데"라고 나는 말한다. 내 말이 뭐가 잘못됐는지 생각조차 않는다. 사실 나는 그 사람의 반응이 살짝 미덥지 않기까지 하다. 아이스크림을 안 먹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고 미리 배려해서 무난한 음료도 몇 개 섞어서 사 오던 그런 나는 없다. 오히려 그 사람이 나를 납득시켜야 분위기가 무난하게 흘러간다. 원래 단 거 안 먹어서요, 속이 차면 배탈이 나서요, 배가 불러서요, 이유가 뭐가 됐든. 


 만약 내가 내 삶을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만 채우면, 저런 '아이스크림 연대' 속에서 살게 될 것만 같다. 가끔 비혼 계획을 표현하는 분들을 만나면 왠지 모르게 반갑고 동지애마저 피어오른다. 내 목소리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모이게 되고 그렇게 쌓이는 인간관계는 내 삶의 형태를 지탱해 주는 감사한 연대가 되어주겠지만, 그럴수록 반향실(에코 체임버, Echo Chamber) 문을 열고 나가서 더 다양한 목소리와 소통하고 싶어 진다. 내가 쉽게 납득시킬 수 있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인간관계, 나와 다른 의견을 보이는 사람이 전혀 없는 삶은 위험할 수 있다. 




 나는 결혼하지 않을 계획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한 친구들의 삶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 선택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마찬가지로 결혼한 내 친구들도 비혼으로서의 내 삶이 궁금할 거라고 믿는다. 주변 사람들이 내 삶에 대해 크고 작은 관심을 가질 때, 순수한 애정과 선의까지도 비뚤어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조금은 탄탄하게 준비되어 있고 싶다. 아마도 계속해서 나는 나 자신과 내 주변을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내 이 마음이 사랑에서부터 출발하는 한은.


내가 정성스럽고 조심스럽게 나를 표현하는 데도 불구하고 누군가 내게 눈총을 쏘며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어떤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납득시키지 못했다고 해도, 그게 반드시 내 삶의 설득력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반향실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기 위해 소음이 가득한 세상으로 문을 열고 나가는 나 자신의 용기를 칭찬하고, 조금씩 더 마음에 드는 표현을 익히게 되는 스스로에 만족하자. 단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 나를 공격해 온다면 그때부터는 내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 상대방의 포용력 부족을 드러낼 뿐 아니겠는가.



⑴ <비혼수업>. 하현지, 지나리, 강한별, 김아람, 이예닮 지음

⑵ 에코 체임버 효과(Echo Chamber Effect). 반향실 효과라고도 하며, 생각이나 신념,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정보나 뉴스를 공유함으로써 기존의 신념이나 견해에 대한 확신이 더욱 강화되고 증폭되는 상황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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