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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Apr 15. 2022

심심함을 외로움으로 착각하지 말자

혼자 놀기의 본질, 남들은 대체 뭐하고 놀아?

 Q. "혼자 해도 괜찮은 일, 혼자 재밌게 사는 방법 궁금해요. 특히 요즘 외국여행을 못하는데 여행을 대체할 수 있는 재밌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요?"


 '남의집' 모임에서는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을 라디오 사연처럼 미리 접수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내 모임에 와 주는 게스트들은 하루 저녁을 혼자가 아닌 새로운 사람들과 여럿이 보내기로 택한 분들이라, 적어도 그날만큼은 즐거운 일상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성향과 태도를 가지고 모이게 된다. "저는 별다른 취미는 없고요."라고 말하는 분들조차도 여러 의미로 흥미로운 키워드를 수줍게 꺼내놓곤 해서 나를 놀라게 한다. 지금까지 이야기 나눈 혼자 즐기는 일상이나 취미에 대한 키워드는 대략 이렇다. 

#홈카페 #홈베이킹 #피크닉 #다회 #수제맥주 #와인테이스팅 #위스키바 #스윙댄스 #라틴댄스 #러닝동호회 #등산 #캠핑 #웨이크보드 #독서모임 #보드게임 #악기연주 #클러빙 #홈오디오 #셀프인테리어 #라탄공방 #프랑스자수 #필라테스 #요가 #주짓수 #클라이밍 #테니스 #아침수영 #글쓰기...... (헉- 헉-)


이런 대화가 쌓이다 보면 단순하게 취미를 공유하는 시간을 넘어서 권태, 매너리즘, 일상의 쾌락, 새로운 경험을 위한 용기와 같은 키워드까지 이어지곤 한다. '나는 심심할 때 뭘 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하고 낯선 타인과 이야기해 보는 경험 자체로도 각자 자신의 혼삶에서 채우고자 하는 니즈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뭘 하고 놀까?" 

결혼하지 않는 계획이 있는, 현재 비혼상태로서 혼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혼자 지내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일상 속 취미에 대한 문제는 마치 이런 것과 같다. 

"친구들이 전부 학원 가고 나만 놀이터에 있다면, 나는 뭘 하고 놀아야 재밌을까?"


결혼해서 육아에 열중하고 있는 친구들은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나중에 아이 다 키우고 나면 우리 실컷 꽃놀이도 다니고 재미지게 놀자고.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마냥 두 손 놓고(?) 잠자코 중년의 삶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건 마치 친구들이 학원 끝날 때까지 혼자 놀이터 모래밭에 땅그지(?)처럼 앉아서 개미 몇 마리 세고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나는 내가 꿈꾸는 혼삶의 모습을 위해 꾸준히 훈련한다. 훈련의 목적은 '나 자신을 나와 가장 친한, 가장 재밌게 놀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 나랑 놀다가 지겨워지는 순간은 어떨 때인지 경험해보고, 나 자신이 별로 마음에 차지 않을 때에는 또 어떻게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서 사이좋게 놀아야 하는지 배워간다. 나 스스로가 맘에 들어하지 않을 만한 습관은 줄이려고 애쓰고, 내가 기특해할 만한 나 자신을 자주 선보이는 훈련. 내 취향을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취향의 틀에 갇히지 않고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랑말랑함은 더 중요할 터. 벽 보고 혼자 레고 맞추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혼자 춤추고 놀다가도 누군가가 다가오면 덥석 그 손을 끌어다가 빙글빙글 강강술래를 돌며 금세 무리를 짓는 그런 놀이가 내 취향이지. 


혼자 놀고 있을 줄 알았던 나 녀석이 그 사이에 으리뻔쩍한 모래성도 지어놓고, 옆 동네 뉴페이스 새 친구도 데려오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놀이를 소개하는 풍경을 상상한다. (나는 '판을 설계하는 자'로서 학원이 끝난 이후 시간을 지배하는 인싸 중의 인싸가 될지도 모른다!) 다른 친구들이 학원에서 학습하는 사이에 나는 나 혼자서 노는 삶을 배웠고, 온 동네의 갖은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하면서 자기주도형 체험학습을 하고 있었노라고. 적어도 내 세계관, 내 유니버스(universe)에서는 나도 내 친구도 다 같이 모여서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그런 놀이터가 있길. 내 사회가 그런 놀이터이길 그려보면서 -




 '시간적 여유를 고독감으로 혼돈할 수 있다.'는 글귀에 공감한 적이 있다. 싱글도, 결혼한 사람도 혼삶의 순간에서 간혹 이런 씁쓸한 여유를 맛보곤 한다. 혼자 어마어마하게 멋진 곳으로 여행을 가도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진짜 외로움이겠지. 하지만 맛난 거 좋은 거 예쁜 거 천지인 여행지에서 씻은 듯이 외로움을 잊어버렸다면, 아마도 그 전의 감정은 외로움이기보다 '심심함'이었을 수 있다. 혹, 여행지에서의 행복을 누리다가도 혼자이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 또한 외로움이 아니라 '그리움'일 수 있다. (그리움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외롭다"는 감정은 누가 곁에 있고 없고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스스로 편안한 리듬으로 고독해질 수 있고,
또 그 고독을 멈출 수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상태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
외로움은 그 상태가 무너질 때 찾아온다.
-사이하테 타히, <너의 변명은 최고의 예술> 

심심한 상태를 피하기 위해 이것저것 욱여넣은 하루의 끝은 오히려 더 허전할 때가 많았다. '누가 봐도 외로울 것 같아서'라는 생각으로 억지스럽게 시간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보다는 '내가 봐도 외로운지'에 초점을 맞춰볼까. 내 마음에 꽉 차지 않는 하루를 살았기 때문에 느껴지는 아쉬움과 그로 인한 정서적인 gap을 외로움이라는 손쉬운 단어와 혼동하지 않도록. 




취향 모임 플랫폼 '남의집'에서 호스팅하고 있는 <여행블로거의 "혼삶"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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