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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Apr 26. 2022

그리움을 외로움으로 착각하지 말자

- 혼자 하는 여행, 그리움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겠는가

  가족들이 다 함께 이주해서 지내는 주재원들과는 달리, 나는 '단신 주재원'으로서 중국 상하이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적은 나이에 억대 연봉을 받으니 평일에는 칵테일과 재즈를 끼고 살았고, 주말에는 취미활동을 실컷 하며 중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커리어 상으로나 신체적, 정신적으로나 전성기라 불러 마땅한 시기였다. 하지만 내가 가장 외로워"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실제 외로울 법한 환경이 아니었던 것에 비해 유독 외로움을 더 느꼈다는 의미로.)



저격수는 멈춰있는 대상을 노린다.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표적을 지켜보다 조용히 한방. 향수 역시 머물러 있는 여행자를 노린다. 이 부드러운 목소리의 위험한 저격수를 피하기 위해 신중한 여행자는 어지럽고 분주히 움직이며 향수가 공격할 틈을 주지 않는다.  방심한 여행자가 일단 향수의 표적이 되면 움직이기 어려워진다. - 김영하, <오래 준비해 온 대답>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끊임없이 여행을 다니다가 이제는 일마저 해외에서 하게 되다니. 그때마다 나는 그리워할 만한 무언가를 남겨두고 떠났기에, 그만큼의 그리움이 쌓여있다. 언제든 그리워할 만한 것들이 한 무더기였다.


그리움이 나를 공격해 올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나도 분주히 움직였다. 우선 중국어부터 갈고닦았다. 나 스스로가 나를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해. 회사나 펍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 내가 외지인인 건 알아도, 외국인인 건 알아채지 못했다. 런 현지화(?) 덕분인지, 감사하게도 중국에서 만난 그 누구도 나를 조금도 이방인으로 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장에서 중국 영화를 보고 나온 후 혹평을 일부러 참아줄 수도 없었고, '사드' 사건들로 인해 한국인에 대한 위협이 있었을 때 더욱더 열심히 현지 억양으로 중국인인 척 말하는 게 마냥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분주한 나날에도 틈이라는 것은 있었는지, 잠깐 숨을 내 쉬는 그 문틈 사이로 고독은 발을 집어넣는다. 진공 상태인 것처럼 서늘한 그 기분이 너무도 생생하다. 어차피 더는 피할 길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내가 좋아하는 '김필' 노래를 듣는다. 어느덧 하던 일을 멈추고 침대 맡에 걸터앉아서 노래 가사에 집중한다. 그의 노래는 내가 그리움의 문에서 주저하고 있을 때, 내 어깨를 감싸고 그 문을 활짝 열어다. 그 마음 어떤 건지 굳이 후벼 파내서 알려주고 맘껏 외로워 울 수 있게 해 준다. 신기하게도 내가 외롭지 않은 순간에는 김필 노래를 귓등으로만 듣게 된다.




 그리움을 외로움으로 착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리움은 공격적이지만 생각보다 은밀하고 잔잔해서 외로움과 섞이기 쉽다. 완벽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두 감정은 뿌리가 다르다. 그렇기에 외로움에 대한 처방들이 그리움에도 진통제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치료에는 한계가 있다. 혼자 일궈나가는 당시의 삶에서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충족감을 느꼈고, 사실 나는 외로운 게 아니었다. 더는 외로운 척 하기가 애매했다. 나의 그리움은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다행히 외로움에 비해서는 조금 뾰족했다. 뚜렷한 뿌리와 실체가 있었다. 없애버리지는 못해도, 잘 감싸서 데리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혼자가 편하지만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모순의 순간을 지겹도록 반복한다. '혼삶'을 산다는 것, 특히 혼자 여행을 즐긴다는 것은 이런 훈련의 연속이다. 훈련의 결과로 혼자 사는 삶에 근력 같은 것이 붙어가지만, 멀쩡히 잘해 나가다가도 갑작스럽게 혼자인 게 울컥 싫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서러운 일을 당했을 때나 심심할 때도 그렇지만, 가장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순간은 '좋은 사람과 또 와야 할 곳'에 혼자 다다랐을 때다.


 아름다운 곳에서는 아름다운 사람이 그리워지기에, 혼자 하는 여행은 외롭기보다는 그립다. 그리움이 불쑥 공격해 올 때, 원망도 회피도 않고 그 축복에 감사할 내공을 쌓는 것. 그것이 혼자 하는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선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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