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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Apr 14. 2022

혼삶은, 외로워 보이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이다.

- 나는 사실 외로워서 여행을 떠나는 걸까?

 궁상과 청승을 기본 테마로 한 배낭여행을 주로 즐기던 내가, 이번만큼은 '잘 나가는(?) 여자의 여행'을 해보리라 맘먹고 싱가포르 70층 전망대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⑴ 식사를 예약해 버렸다! 탁 트인 city view를 보는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게 핵심이었기에 항공권을 확정하자마자 이 레스토랑 홈페이지부터 들어갔다. 2인분이 기본인 코스요리였지만 혼자 여행 가서도 이것저것 여러 메뉴를 주문하곤 하는 나이기에 거침없이 예약 버튼을 눌렀다. 기념일을 맞은 손님에게는 초콜릿 케이크를 제공한다는 말에 별생각 없이 'Y(그렇다)'를 체크하고는 방문일이 다가올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럭셔리함을 대놓고 즐겨보겠다는 다짐을 내어 보이듯 허리가 트인 붉은색 점프수트를 차려입고 당당하게 레스토랑에 등장했지만 내 기대와는 분위기가 영 달랐다. 매니저가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여러 차례 돌아보더니 다른 직원들과 다급한 귓속말을 수군대는 것이 대체 무엇 때문이었는지 눈치채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연히 커플이 함께 걸어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Happy Anniversary' 케이크까지 준비한 그들은 보란 듯이 강렬한 모습으로 혼자 등장한 나에 대해서 결별, 혹은 이혼 키워드까지도 짐작하고 있는 듯했고 그렇기에 더욱더 '혼자 오셨네요?'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 않기 위해 각별히 조심해 주는 것 같았다. 


고급 코스요리를 내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이런 풍경은 처음 봤다. 마치 TGI Friday라도 온 것처럼 여러 직원들이 나를 둘러싼 채로 '연인을 잃고 혼자 와서 기념하는 쓸쓸한 anniversary'를 축하해주는 그런 광경. 혼자인 나를 절대 쓸쓸하게 놔두지 않겠다는 열렬함이 전해져서 나는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이 되었다.





 혼자 여행한다는 건, 가끔 이렇게 외로워 보일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성이 별로라서 저 나이 먹도록 외롭게 혼자 살지"

"저렇게 눈이 높고 까탈스러우니 저 사람은 혼자 지내는 게 낫긴 낫겠어"

'외롭게 사는 것 = 잘못 살아온 것'이라는 요상한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저런 식의 이야기들에는 익숙하게 끄덕거리곤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외로워 보인다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는 일종의 리스크(risk)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리스크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리스크는 그저 잘 인지하고 받아들일 능력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대비가 된다. 


 '아닌데요? 저 혼자라서 더 신나는데요?' 라며 오해를 풀고 싶어서 약간은 의식적으로 즐거운 모습을 유지해야던 때도 있었다. 언젠가부터는 내가 외로워 보이든 그렇지 않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사실은 내가 정말 외로운 건가? 외롭지 않기 위해 회피하듯 자꾸 여행을 떠나는 걸까?' 하는 의심도 해 봤다. 하지만 내가 혼자인 게 싫어서 외로웠다면, 여행을 떠나서도 즐겁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남은 케이크가 들어있는 하얗고 고운 상자를 터덜터덜 들고 전망대에서 내려오니 땅에 발이 붙어있기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실감 같은 것이 몰려왔다. 케이크가 무색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매년 이 날을 기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혼기념일 대신 '혼삶기념일'에 무슨 이벤트를 하며 어떤 선물을 스스로에게 할지 벌써부터 설레발을 치며 즐겁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이 날을 기념한 적이 없다. 사실 내게 혼삶이 그리 유난 떨 만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2015 아시아 최고의 레스토랑 11위에 빛나는 <Jaan> by Julien Royer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 직원들이 다 같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 떠오르는 곳이다(실제 그런 서비스를 아직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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