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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Aug 20. 2022

무의미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

꽃잎을 줍는 아이처럼 산다면?(feat. 릴케)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 대해 리뷰하던 이동진 평론가의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1) 갑작스럽게 사망 '고지'를 받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사망 피해 그 자체보다도 어쩌면 더 두려워하는 것이 '무의미'라는 요지였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곧, 기준도 없고 계기도 없고 명분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난들이 의미 없이 임의적으로 벌어지는 사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불안해서 몸부림치거나, 허무해서 무너져 버린다는 것이다.


"사람은 왜 태어난 것입니까?"

스님에게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할까, 철학자에게 물어본다면? 과학자에게 물어본다면 아마도 '모른다'라고 답하지 않을까. 나는 우주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인간의 탄생이 사실 어마어마한 '우연'의 결과였다는 점을 떠올린다. 우연일 뿐이라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우연이라는 것 자체를 더욱 영적인 측면으로 해석하여 경외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튼 나는 대체 왜! 무엇을 위해 태어난 것이냔 말이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Cal Tech의 저명한 물리학자 캐롤 Carroll 의 표현대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 pointless universe ’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행복의 기원> (서은국 지음) 중에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는 찾아내야 하는 게(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인간의 숙명 같은 것.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라는 게 맹점이다. 존재의 이유조차 모르는 무지한 인간이거늘, 무슨 수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아낼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인류 전체가 생존해야 하는 명분을 찾는 것은 조금 뒤로 하고, 우선 각 개인이 자기 한 사람 몫의 이유라도 찾아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찾아낸 후에 '바로 이거야!'하고 정하면 그게 '삶의 의미'가 된다. 의미를 찾아간다는 표현도 어색한가 싶다. 의미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더 와닿는다. (그 삶의 의미라는 것이 실재하기는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우선 접어두기로.


"당신의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전에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자기 대답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조금 더 멋져 보일 때가 많다. '의미가 없으면 뭐 어때?' 하는 사람들 말이다. 어떤 게 의미 있는 삶인지 모를 수도 있다. 오히려 '000한 삶은 무의미하다'라는 위험한 신념으로 쉽게 단정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 '의미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인생>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모아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모으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매슬로가 주장한 5단계의 욕구 중, 자아실현을 넘어선 자기초월의 욕구 단계가 되면 자기 자신의 완성을 넘어서 타인, 세계에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된다고 한다. 이런 욕구가 왜곡된 형태로 발현되면 자칫 이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사회가 기대하는 출산율에 기여하고 자손을 통해 이후 세대에까지 기여하고자 하는 과도하고 강박적인 욕구. 이런 욕구들은 사회적인 언어로 잘 포장했을 때 꽤 공익적인 뉘앙스를 갖게 되고, 그와는 대조되는 가치를 추구하는 혼삶을 부정하는 무기가 된다. 의외로 자주 흔들리곤 하는 우리 어른들의 연약한 마음은 이런 날카로운 무기 앞에서 바들바들 나약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넌 자식 하난 잘 키웠잖아'

'이 고독한 세상에서 나는 변치 않는 내 편, 내 배우자가 있으니'

저마다 자신만의 삶의 의미가 있지만, 살다 보면 가끔 이런 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 주변 사람들이 결혼, 출산을 통해 얻은 것들로 삶을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을 볼 때, 그렇다면 내 혼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막막해질 때가 있었다. (특히 내 부모님이 나를 통해 삶의 의미를 느끼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엄마처럼 딸이 있지도 않은데?!) 내 삶의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너무 슬퍼하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인생이 정말 무의미한 것이라면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무의미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 폭력적으로 일상을 부술 수도 있지만, 무릎에 탁 힘이 풀리게 해서 삶을 주저앉힐 수도 있다. 이런 무기력에 휩싸인 상황에서 누군가(매우 애정하는 만화 시리즈인 <진격의 거인>의 한 캐릭터)가 남긴 명대사로 글을 마무리해 본다. 무참히 죽게 될 것이 뻔한 전투를 앞둔 그가 전우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무의미하게 죽을 것이다. 그렇다고 태어난 것까지 무의미한가? 그렇다면 먼저 죽어간 동료들은 의미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살아있는 우리가 의미를 만든다.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죽고, 다음을 살아갈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맡긴다! 그것이 이 잔혹한 세계에 저항해 나갈 방법인 것이다."




(1)Youtube 채널 <이동진 Lo-Fi> 中, "지옥, 디피, 오징어게임" 편

https://youtu.be/wr0GVI8Dwqkhttps://youtu.be/wr0GVI8Dwq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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