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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Aug 03. 2022

1인 가정에도 가훈이 필요하다

모든 혼삶에는 각자의 규칙이 존재하기에,

  꼬맹이 신분이었던 시절, 동네 놀이터에 가면 꼭 이런 친구가 한 명씩 있었다.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놀이를 스스로 지어내서는 온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전파하는 '게임 인플루언서(game influencer)'. 이들은 대체로 규칙을 지배하는 '인싸' 선구자로서 놀이를 쥐락펴락한다. (상황에 맞춰 본인 유리한 대로 실시간으로 지어내는 것 같기도 하지만 'follower'인 참여자 입장에서는 알 길이 없다.) 이들의 주도권이 휘청이는 순간은 자신이 설계한 세계관 안에서의 논리와 규칙이 일관성을 잃을 때이다. 규칙 자체가 모호하거나 충분히 장악하지 못해 혼란스럽고 자신 없는 모습을 들키기 시작하면 끝이다. 대책 없이 우겨대며 발끈하 건 말할 것도 없고. 


 혼삶을 동경하거나 심지어 스스로가 장기적인 혼삶을 계획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의 세계관, 그리고 그 세계의 규칙과 동원리 온전히 이해하고 장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어떤 종류의 인생관이든 그것을 온전히 소화하기는 어렵겠으나, 혼삶의 경우는 여러 측면에서 난도가 높다. 각각의 혼삶은 저마다의 설계로 각기 다른 구조를 갖게 되기에 전통적인 가정을 꾸리는 삶에 비해 그 규칙이 다채로울 수 있다.  때문에 혼삶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타인이 이해할 만한 논리로 혼삶의 구조와 규칙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나 혼자 리그를 벗어나 다른 규칙으로 살다 보니 타인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고 반대로 내 규칙을 이해시키는 건 더 어려워진다. 아무도 이해 못 하는 규칙으로, 내가 지어낸 놀이를 하는 기분을 종종 느끼며 산다.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면서 조금씩 다른 일상을 보내는 지인들을 보 '아, 저 친구는 나보다 어른 같다' 하고 무심코 생각하게 되는 내가 신기하다. 른이 되는 기준에 이런 조건을 나도 모르게 집어넣은 나의 고정관념에 흠칫 놀라서 고개를 저으며 얼굴을 털어낸다.


한 워크숍을 통해 '인생곡선'을 그래프처럼 그려놓고 스토리텔링을 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마치 조선의 왕이 된 것처럼 연도 표를 그리다가 옆 사람이 그린 곡선을 흘끗 바라봤다. 묘하게 내 것과는 달랐다. 사한 간격으로 인생의 주요 이벤트에 점을 찍고, 그 점을 x/y 축의 적절한 위치에 배치한 꺾은선 그래프 같은 곡선. 다수의 사람들이 취업, 결혼, 출산 등의 명확한 사건을 손쉽게 떠올리고, +/- 중 어느 분면에 위치하는지 콕 짚을 수 있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혼삶으로서의 내가 그린 곡선은 사뭇 달랐다.


혼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조금 다르게 실감한다. 결혼식, 돌잔치 같은 특정한 장면들 없이 나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간다. 내 역할이나 위치가 바뀌는 것보다는 나를 둘러싼 환경이 더 극적으로 변하는 경험. 그로 인해 내 상대속도가 느리게 느껴지는 경험. 때문에 비슷한 또래의 삶에 자신의 속도를 비춰보기 어렵다는 것이 장점이자 아쉬운 점이 된다.


     사람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 낸 자신만의 건강한 기준이 있어야 해요.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아도 ‘날 싫어할 이유가 있나?’ 되물을 정도의 당당함과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 <오은영의 화해> (오은영 지음) 중에서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그에 대한 나 자신의 대답이 시원찮다고 느껴지면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보고 싶어진다. 지만 혼삶을 산다는 건, 탄탄한 선후배가 밀어주고 끌어주는 명문 학교를 돌연 자퇴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선배들에게 물어보기도 애매하거니와, 되려 숱한 질문에 똘똘하게 대답해야 할 상황만 많아진다.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니?'라는.


내 삶을 누군가에게 납득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괜히 삐딱한 분노가 몽실몽실 올라오기도 했다. (다행히 학교를 자퇴하는 것과는 다르게, 결혼하지 않는 결정을 할 때는 사유를 작성해서 서류 제출할 필요 없이 바로 잠수타고 내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싶어질 때를 위해서 1줄 요약본을 준비한다. 1인 가정으로 쭉 살아갈 나 스스로를 위한 가훈이기도 하다. 나 혼자로 이루는 온건한 나의 가정에서는 내가 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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