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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Jul 11. 2022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 맞나? 정말?

얽매이지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혼자 여행하며 내 맘대로?

사주에 나무 목(木) 기운이 넘쳐 가지가 많으니 남성 편력(遍歷) ¹ 이 있으며
역마살까지 있어 여기저기 다니면서 살 팔자일세.


 갓 청년기에 진입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소위 '자유로운 영혼'이라 한 곳에 못 붙어있고, 잠이 많고 게으른 베짱이 스타일이라 도저히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 수는 없을 거라고. 무언가에 쉽게 질리기 때문에 입는 옷도, 먹는 음식도, 만나는 사람도 계속 바꿔서 스스로에게 새로운 자극을 넣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라고 생각했. 하지만 나는 스스로와 주변인들의 예상을 깨고 10년 동안 한 회사에 착실하게 다녔다. 고등학교 때 입던 최애 원피스들을 아직도 입고 있고, 세 살 때부터 먹던 새콤달콤은 아직도 못 끊었다.


이런 오해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안정적인 삶'이라는 것이 '자유로운 삶'과 대칭이 되는 것처럼 생각했던 걸 보면 당시의 내가 구축한 세계관은 좁았고 그에 비해 가치관은 유독 단호했던 것 같다. 안정 10%에 변화 90%의 균형이 내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새로운 것만을 좇아서 변화를 주입하던 시기. 수집하듯 강박적으로 경험을 모았다. 안 가본 곳, 못 들어본 일, 새로운 인연을 더 편애하고 유리한 점수를 주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당시의 시도들은 고스란히 귀한 경험이 되었기에 나는 조금씩 조금씩 더 스스로가 원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해도 굳어졌다. '역시 나는 계속 새로운 걸 넣어줘야 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안정 70%에 변화 30% 정도의 균형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는 것은 상당히 극적인 변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차이는 당시의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영역에서의 간극이 뒤늦게 반영된 것뿐이다. '안정적=변화가 적은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 본다면, 갓 청년기에 진입한 때의 나는 사실 이미 아주 안정적인 상태였다. 이미 갖고 있던 안정성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발칙하게도(?) 안정적인 삶은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경솔한 가정을 했겠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많다는 점 때문에 불안감(感)은 느꼈지만, 감정적인 측면을 제외한다면 불안은 실체가 없는 것이었기에 실제로 '불안정'에 해당하는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대학생이라는 내 신분도 꽤나 안정적이었고, 가족관계에 변화도 없었고, 내 건강상태는 대부분 예상한 범위 내에서만 오르락내리락했고, 꾸준히 가난했으니 경제적으로도 변화의 폭은 적었으니 이 또한 안정된 상태라고 볼 수 있겠었달까.




나는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vs 새로운 변화를 반기는 사람인가?

 내가 이렇게나 의외로 안정적인 상황이었으니,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변화를 더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터. 그러니 당시의 나는 스스로를 도저히 잔잔해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오해했을 법도 하군. 하지만 사회인으로서의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직업적으로 안정되면서 경제적인 안정이 따라왔지만 건강상태와 신체능력은 불안정한 변화의 영역으로 가고 있다. 갑자기 병원을 들러야 해서 일정의 제약이 생기거나, 뜻밖의 피로감이 와서 의도했던 하루를 보내지 못할 때도 있다. '가능성' 보다는 '변수'로 인한 변화가 늘어난다. 가능성은 '기대감', 변수는 '불안감'이라는 감정과 함께 한다. 가능성을 크게 열어두고 변수는 좁게 통제하는 것이 정서적, 경제적 안정의 핵심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어른이 될수록 오히려 이런 점에서의 변화를 전제로 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정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취향과 선호의 문제이기보다 환경에 의한 전략적 선택에 가까운 것일지도.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 맞나? 정말?


 최근에 "내가 생각하는 자유"란 어떤 것인지 언급할 기회가 있었다.

'자유란 실재(實在)하는가?'

'실재한다면, 과연 자유란 무엇인가?'

'우리가 선택과 행동의 자유가 있다고 느끼는 모든 상황은, 사실 넓은 범위에서는 전부 환경에 의해 유도되거나 강제된 것이지 않은가?'

 

액션 영화를 (누아르, 스릴러, 스파이물 등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나는, 어떠한 특수 상황(뭐..., 협박, 납치, 고문, 종교적 박해 상황 이런 것들)에 의해 내가 오로지 한 가지 선택만을 하도록 강요받거나, 혹은 선택의 기회조차 없는 어떠한 순간을 상상한다. 아무런 자유가 주어지지 않고, 자유를 쟁취할 수도 없는 순간. 더 이상 어떠한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내가 손아귀에 틀어쥐고 놓지 않을 수 있는 자유는, "내가 어떠한 태도로 대처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였다.


자유에 대해 파고들어서 생각해 보고 다양한 지식인과 성인들의 관점을 헤아리는 것은 즐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자유의 정서'를 만끽하는 것은 덜 어려울 수 있다. 언제든 자유로운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나의 일상을 단련하는 것. 내가 의도하는 태도를 발현해 내기 위해 따라줘야 하는 그날의 기분, 그날의 체력 같은 것들을 준비하는 것. 어쩌면 '자유로운 영혼'의 실체는 이런 것들일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 주로 가족 구성원이 많고, 규칙적인 생활을 영유하는 나의 지인들이 부러워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실체는 결국 그것이다. 갑작스럽게 여행을 훌쩍 떠나고, 혼자서 이것저것 마음껏 즐기고 다니는 '자유로운 일상'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좋아 보이는 이런 일상들이 혼삶에서 오히려 불가피한 것이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자유로운 영혼에서 비롯되는 일상이 아닐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안정도, 변화도 모두 자유로운 영혼에서 출발한 것일 수 있다. 이 순간을 살아내는 나의 태도, 그 자유로움에 몰입하자. 삶을 온전히 내 것으로서 장악하는 기분은 생각보다 짜릿하다.


혼삶을 디자인하고, 스타일링할 때는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¹ 남성 편력(遍歷): 여러 가지 경험(經驗)을 함 - 네이버 어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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