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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Sep 14. 2022

치킨을 안 좋아한다고? 내가 싫으면 그만이지

- 결혼관, 가족관. 가치관도 전부 편식할 겁니다

섬세하게 라면 면발을 집어 들고 티 나지 않게 젓가락에 살짝 반동을 줘서 눈에 거슬리는 후레이크(채소 조각들)를 털어낸다. 교 급식 메뉴 중 가장 내 맘에 들었던 건 공산품 그대로 주는 '도시락 김'. 이 세상 어린이들에게 '어떤 음식을 싫어하세요?'라는 설문조사를 돌려서 그 응답을 전부 취합하면 그게 나의 편식 리스트가 었을지도 모르겠다. 깊이 있게(?) 편식해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입으로 편식하기 전에 눈으로도 편식한다는 것을.


까탈스럽게 굴지 않을 뿐 매우 까다로운 나의 습관 처음부터 취향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안 먹어?"

 "꾹 참고 먹다 보면 적응돼"

 "아, 일단 한 번만 먹어 봐"

다양한 멘트로 유혹을 시도하는 여러 도전자(?)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결과는 참패.


상대방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의 세계로 나를 함께 데려가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써서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치킨이라는 천국을 맛보지 못한 내가 너무나도 안타깝고, 이렇게나 몸에 좋은 김치를 안 먹겠다고 하니 비실비실 키도 안 크면 어쩌나 하고 여간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음식의 우주는 생각보다 넓다. 정작 나는 그들이 모르는 세상의 숱한 다른 음식들을 즐기며 산다. 내키지 않는 음식을 거르고 내 체질에 맞는 것들을 골라 먹으니 영양상태는 오히려 더 좋다. 무협지에 나오는 '00단', '00환' 처럼 내상을 치료해주고 생명을 살리는 음식이 아닌 이상, 안 먹고살아도 전혀 지장이 없다.




어른이 되어 여러 문화권을 여행하면서 조금은 관대해졌다. 로마에서 '풍기 피자(Funghi pizza)'를 흡입하는 나를 보는 누구라도 내가 버섯을 싫어했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려울 것이고, 콩밥에는 손도 안 대던 내가 영국식 브런치로 베이크드 빈(baked bean)이나 중동 음식의 병아리 콩(Chick peas)을 이렇게나 애정하게 된 것도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지금까지도 내가 편식하는 음식들(그중에서도 가장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치킨이다(!). 그리고 족발과 곱창도 별로다(!!). 심지어 돈까스도 안 좋아한다(!!!). 사실 삼겹살도 좋아하지 않지만 왠지 쑥스러워서 주변에 적극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어렸을 때 싫어했던 수많은 음식들을 지금은 매우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편식 리스트를 굳건히 지키는 이 메뉴들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식(食)취향을 알게 해 준다.


인생에서의 가치관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경험치와 포용력이 적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싫어했던 것들은 나도 모르게 어느새 받아들이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블랙리스트에 올려두었던 '과거의 고집'들을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가도 끝까지 남아있는 항목들이 있다. 그런 핵심적인 가치관들은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인생의 사명과 비전이 된다.


녹색 채소를 사랑하게 된 지금은 할 말이 없다. 당시의 편식습관 중 대부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에. 지금의 내 가치관도 영원불멸의 것은 아니겠지. 새삼스럽게 좋아하게 될 인생의 맛을 기대하며, 섬세하고도 관대한 미각을 발달시키기 위해 노력할 뿐.


'죽어도 싫은 것들'의 고집은 점점 줄이고, '차분히 생각해도 내 취향이 아닌 것들'은 담담히 걸러내어 나에게 맞는 인생의 가치관들로만 구성된 메뉴판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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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을 돕는 가이드처럼, 내가 다닌 혼삶의 여행길에서 본 멋진 혼삶의 풍경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하나하나 글로 썼습니다. #혼행 #혼술을 즐기는 저자가 '1인 가구'보다 탄탄한 '1인 가정'으로 성장하는 인생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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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키워드가 갖고 있는 특유의 날이 선 분위기와 현실 비판보다는 진중하고 위트 있게 지혜를 좇는 긍정적인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로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때문에 여성 중심 관점은 되도록 배제하고 양성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젠더리스(genderless)한 내용이 되기를 기대하며 글을 썼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진정으로 좁은 관점 안에 갇히지 않고 더 자유롭게 사고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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