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를 기차에 비유한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나는 철로를 달리는 기차고, 그 기차에 타고 내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가끔 긴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 기차의 종점과 승객의 목적지가 같아서 함께 가기도 한다. 사람들이 언제 타고 언제 내릴지는 모르지만, 그가 기차에서 내리는 그 순간에 따뜻한 인사를 건네며 손을 흔들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은 거라고.
요즘의 나는 꽤 긴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깊이 있게 몰입했던 관계를 마무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난 어쩌지?'.
지도 앱을 보며 목적지로 잘 가고 있다가 갑자기 폰 배터리가 꺼진 기분이었다.
이윽고, 아예 삶의 목적지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찾아왔다.
'난 이제 무얼 향해 가야 하지?'
실제로 내인생관이 바뀐 것도 아니고, 일과에 큰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이런 기분이 든다. 그만큼 내 삶에 깊숙하게 얽혀있던 관계였다는 반증이라 더 감사하고 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상실감.귀한 것을 잃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상실감은 크지 않네. 하지만 시간도 정서적인 에너지도 갑자기 여유가 생겨버리니 그 간극만큼의 공허함이 생길 수도. 텅 비어버린 것만 같은 허전함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당연하다.
나는 감정적, 정서적인 측면에서 유독 그릇이 큰 사람이다. 감정의 크기와 에너지가 큰 만큼,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에만 의존하기 어렵다. 그 큰 감정이 다 옅어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옅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버겁다. 조금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다뤄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견디기 버거운 감정일수록 '물꼬를 터 놓는' 방식으로 다루려 하는 편이다. 각 잡고 앉아서 깊고 긴 호흡을 반복하며 '날숨'에 실어 내보낸다. 좁고 아늑한 공간에 웅크리고 들어가서 또륵또륵 '눈물'에 흘려보낸다. 말하는 대신 글로 적어내면 또 다른 가치를 지닌 무언가로 재탄생시킬 수도 있다. 슬픈 멜로디에 실어서 노래로 힘껏 부르고, 뻗어내는 몸짓에 얹어 춤으로 털어낸다. 그러면 도정을 거친 뽀얀 쌀처럼 알맹이만 남는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수많은 결심이 쌓인다. - 김영하
대충 주머니에 넣어둔 목걸이는 나중에 꺼내보면 잔뜩 엉켜있게 마련이다. 실처럼 끊어낼 수도 없고, 금속은 슬슬슬 풀어내기도 어렵다. 목걸이라는 것은 애초에 길게 편 상태로 널어놓듯, 걸어놓듯 보관해야 한다. 귀찮다고 막 뭉쳐 넣으면 이 난리가 난다. 엉킨 목걸이를 풀다가 힘에 부치면, 포기하고 갖다 버리고 싶게 되거든.
내 감정의 끝과 끝을 잘 붙잡아서 목걸이처럼 길게 놓아보려고 노력한다. 추억과 반성과 감사와 아쉬움과 미련과 불안과 허전함과 설렘이 한꺼번에 뭉쳐서 볼썽사납게 엉키지 않도록. '에라, 모르겠다'하고 갖다 버리는 기억으로 뭉치지 않도록.
지금 이 여행에서 돌아오는 나의 결심은 무엇인가. 긴 배낭여행을 끝내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일기를 쓰던 스무 살의 나를 회상한다. 여행에서 배운 것들을 되새기기도 했고, 돌아가기 싫다고 떼쓰는 마음도 들었고, 여행 추억을 정리하기도 했고, 여행에서의 귀한 일들에 감사하기도 했지. 돌아간 후엔 어떻게 지내야 할지 생각하기도 했고, 이제 나는 또 어떤 여행을 할까 설레기도 했다. 어떤 여행에서든 나는 잃은 것이 있고 얻은 것이 있었다. 모든 여행이 내 세계관을 강화하고 확장했다. 눈물 나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