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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Feb 20. 2023

삼다(三多)와 삼무(三無)의 집

내 공간을 보면, 내 일상도 내 사고방식도 보인다.

한 때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강점 혁명'이라는 책과 그를 기반으로 한 '5대 강점 테스트'가 있다. 당시 나의 입사 동기들은 대부분 유사한 강점과 역량을 인정받아서 선발된 인재들이기에, 채용된 직군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5대 강점도 겹치는 게 많았다. 나의 테스트 결과지를 들여다보니 주변 동기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키워드 하나가 눈에 띄었다.


"탐구심?"

호기심이 많고 골똘히 관찰하는 종류의 탐구심을 일컫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해당 검사에서의 탐구심은 '수집광', '정리벽'인 인물들에게서 주로 볼 수 있는 특징이었다. 종류 별로 다 모아서 쭈-욱 컬렉션을 진열해 놓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가지를 다 섭렵하는 걸 좋아하는 특성들. 당시에는 그저 나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이 키워드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주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탐구심'이 강점인 사람들은 종류 별로 컬렉션(collection)을 모으는 것을 넘어서, 가진 모든 것을 전시 수준으로 진열해 놓는 것을 즐긴다. 눈에 띄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를 잊고 하는 나이기에 더 그렇다. 향신료도, 여기저기서 받아온 화장품 샘플도 그렇다. 부득이하게 밖으로 꺼내놓기 어려운 물건들이 있다면 상자에 넣고 라벨링 해서라도 분류하고 촥촥촥 진열한다. (labeling에 대한 한글 대체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내 부족함이 한스럽다.) 







내 집은 삼다(三多)와 삼무(三無)의 집이다.


1. 책이 많고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책 읽는 사람이기에 책이 많은 것은 크게 놀랍지 않을 포인트. 오히려 사람들이 가장 의아하게 여기는 건 '왜 책을 다 뒤집어서 꽂아뒀을까?' 하는 점이다. 책이 꽉 차 있는 책장에선 우리에게 '책등(세로제목이 보이는 부분)'이 노출되지만, 난 책 제목이 안 보이도록 책등을 안으로 넣어서 꽂아두는 것이다. 분에 내 집 책장 풍경은 온통 '종이색'이다. 이 점이 바로 내가 노리는 점!


나는 한 번도, 대형서점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책장을 보며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되는 건 어떤 때냐면,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 도서관에 온통 갈색+금색으로 통일된 빛의 책이 쫘-악 잔뜩 꽂혀있는 걸 볼 때다.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 나올 법한!) 요즘에는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디자인까지도 큐레이션 하는 작은 서점들이 많이 생겨서 그나마 낫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각기 다른 색상과 글씨체의 책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은 그다지 미학적이지가 않달까. ('미학적'... 원래 내가 자주 쓰는 단어인데, 드라마 '더 글로리'의 인물에게 뺏겼다.)


누군가의 책장을 들여다보면 마치 그 사람의 사고방식, 정서적 취향, 지적 취향을 알게 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자신의 사고 흐름을 따라가며 기억하기 위해 일부러 읽은 순서대로 책을 진열한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사실 나는 전자책을 주로 읽는 편이라, 내가 소장하고 있는 종이책은 주로 선물 받거나 전자책으로 출판되지 않은 도서들이다. '내 책장 = 내 책 취향'으로서의 교집합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책장이 나를 잘못 알리지 않도록 책 각각의 정체를 숨기는 것! 한 개인을 판단함에 있어서 독서 리스트를 지나치게 큰 참고 지표로 삼는 것도 그다지 마음에 안 들고!



2. 술이 많고

여러 종류의 술을 두루 즐기지만 술이 세지 않은 나는, '가진 역량에 비해 애정이 넘치는' 슬픈 밸런스를 받아들이며 술에 대한 사랑을 조심스럽게 키워나갈 수밖에 없다. 와인, 맥주, 소주, 위스키, 코냑, 진, 럼, 보드카, 백주, 우메슈, 니혼슈가 거의 늘 갖춰진 나의 집. (아, 너무 좋다!) 글을 쓸 때는 곁에 두고 오래 마실 수 있는 long-drink를 즐기는 편인데 최근에는 부담 없이 콸콸콸해서 즐길 수 있는 위스키 하이볼(high-ball)도 종종 즐긴다.


3. 조명이 많고

이런 집에 조명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뭉뚱그려 말하자면 '전구색' 빛을 좋아하고, 더 나아가자면 달빛 + 촛불 빛이 겹쳐있는 것 같은 빛깔을 좋아한다. 햇살만큼 쨍하지는 않고도 은은하고 따뜻한 그런 빛. 그런 빛은 고텐션인 나를 차분하고 낭만적인 왈츠 같은 기분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저기압인 나를 아주 살짝만 들뜨게 해서 스윙재즈처럼 만들기도 한다.


집에 사람들을 초대할 때면 현관 앞 계단에서부터 알록달록하게 움직이는 조명으로 맞이한다. 현관은 집 전체에서 가장 밝고 쨍한 빛으로 사람을 맞이하고, 거실로 들어오면 온통 촛불이다. 루프탑에 올라가면 오징어잡이 배에서 볼 법한 전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조도가 맘에 들지 않으면 전구에 옷을(?) 입혀서 톤을 맞춘다. 이렇게 비로소 내 집이 내가 좋아하는 비주얼로 내 앞에 나타날 때 더할 나위 없이 내 공간이 사랑스럽다. 소중하고 아까워서 귀히 여기게 된다.





혼자 보내는 시간, 결혼 않고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제대로 얘기 나눌 본격 찬스를 기획했습니다! 여행과 관련된 책과 사람들이 있는 성수동의 멋진 서점, '트립북앤스페이스'의 대표님과 함께 기획한 북토크는 23년 3월 4일 토요일 오후 2시에 열립니다!


<혼삶가이드> 북토크! 3.4(토) 저자와의 대화 신청 링크

https://forms.gle/gucK6BsSY5RPUsr18



도쿄에서 맛있는 것도 사들고 가려구요! 오신 분들과 함께 나누려고 하는데... 뭐 사갈까요? 크흐흐 (니혼슈?!)

북토크 때는 책에서는 미처 얘기 못한, 사적인 얘기 깊은 얘기 찐한 얘기를 나누게 될 예정이에요. 참가비는 무료고, 신청 링크에서 책만 구입하시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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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토) 오후 2시 
장소는 '트립북앤스페이스'!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92 4층)


토요일을 혼자 보낼 예정이신 분들, 3월 4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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