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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화가 김현정 Mar 02. 2023

내숭, 내 성장통의 기록

한국화가 김현정의 내숭- Prologue

어린 게가 더 크고 단단한 껍데기를 얻기 위해서는 아픔을 견디고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 그러한 탈피를 거치며 비로소 어른 게로 성장한다. 사람의 마음이 자라는 과정도 어린 게가 작은 껍데기를 버리고 새 껍데기를 얻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수많은 잔병치레를 하며 더 탄탄해지고 그 품이 넓어진다. 내가 느끼기에 마음의 성장 곡선은 직선형이나 유선형이 아니라 계단형이다. 마음에 찾아들었던 아픔을 이겨낼 때마다 크고 새로운 마음의 틀을 얻게 되는 것이다. 틀을 깨지 않고서는 마음이 자랄 수 없다. 마음이 아픈 것은, 더 크고 단단한 껍데기를 얻기 위해 성장통을 겪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숭_피어나다_한국화가 김현정 작가

그간 나의 마음은 담묵을 칠한 듯 차갑고 모호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중요한 ‘무엇인가’가 되는 데 일종의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가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기 원하겠지만 나는 그것이 특히 심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만 했고, 누군가가 나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거나 손가락질할 때에는 한없이 움츠러들고 견디기 힘들어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내리는 정의와 평가, 그리고 나의 어깨에 얹는 기대는 내 판단의 지표이자 기준이 되었다. 많은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나의 모습 또한 무수히 다채로워야만 했고, 나는 그 많은 자아의 허상들 사이를 이방인처럼 떠돌았다.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지기 위한 노력들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라는 존재의 고유함은 명멸하듯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내숭 이야기는 내 존재의 모호함과 수많은 허상에

대한 반발심에 시작한 작업이다. 그리고 작업을 통해 허상들이 나에게 안겨준 상처들을 치유해 왔다. 나는 회색 지대 속에 머물고 있는 나 자신에게 분명한 나만의 색깔을 보여 달라고 끊임없이 재촉하며 손을 이끌었다. 그렇게 나 자신과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만남을 계속하면서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대한 미련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음이 아팠던 시간과 그것이 치유되는 시간을 지내고 나니 이제야 그것이 성장통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한차례 마음의 탈피는 분명 있었다. 이처럼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이 단단하고 커졌으니 말이다. 예전이라면 감당하지 못하였을 법할 일들도 지금은 제법 덤덤하게 지나 보낸다. 여전히 주저하고 망설이지만 그래도 나의 삶을 좀 더 책임감 있고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내숭_연심(戀心)_한국화가 김현정 작가

2013년 단풍이 물들 무렵 ‘내숭 올림픽’ 전시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어느덧 십수 년 만이라는 오월의 더위 속에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 추운 겨울을 지나며 걸어온 수개월의 여정을 떠올리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21세기 언어_감동_한국화가 김현정 작가

솔직히, 스물일곱 되는 해의 아름다운 봄을 계속 작업실에서 보내면서 위기의식과 회의가 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알차고 빼곡하게 채워갈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과 기쁨이 더 컸기에 꿋꿋하게 걸어올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이 짧지 않은 여정 중 나와 함께해 준 사랑하는 가족과 동료들, 그리고 나의 작품과 이 부족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이제 조심스럽게 내 삶과 작업에 관한 이야기들을 펼쳐본다.







김현정 Kim, Hyun - jung /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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