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원 Oct 10. 2021

"제가 엄마가 된다구요?"

내가 임신이라니 그런 것을




오늘은 10월 10일, 임산부의 날이다.
풍요와 수확의 달(10월)과 임신기간(10개월)을 의미하는 날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통해 임산부가 배려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내 브런치의 작품 타이틀이기도 하지만

나는 결혼이라니 그런 것을 하게 될 줄은,

나아가 임신이라는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혼주의까지는 아니었지만,

오롯이 나만의 인생이 중요했던 나.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도,

일부분 희생할 수 있겠다는 각오쯤은 들게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가능하리라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이 되었다.

오래전 20대 때 만났던 남자친구와

30대가 되어 우연히 다시 재회를 했고,

그와 나는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어쩌다 정신차리고 보니 결혼까지 했다.


코로나로 인해 3개월 미루어졌지만 원래의

결혼식으로부터 일 년이 지난 2021년 5월의 어느날

우리는 부부에서 부모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첫 임테기 두줄 확인, 210506


그와 결혼을 하고서도 나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글쌔...

딩크족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살면서 '임신과 출신, 육아'라는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무엇보다 "나는 적어도 내 혈육은 갖고 싶어"

라던 남편의 의견도 존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마음의 준비 없이

신혼 일년 차에 불쑥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남편에게 임밍아웃하던 순간



처음 느낀 감정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아직 철없고 미성숙한 존재인 내가

한 아이를 열 달 품고 또 낳아서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한 없이 걱정되고 두려웠다.

그렇지만 그가 결혼식 때 불러주었던

노래 '오르막길'의 가사처럼, '이 길 함께 가는 그대여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중략)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앞으로도 어려운 길 같이 걸어 나가자고 손잡아 주는 든든한 남편이 옆에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임신을 한 후, 행복한 날보다 힘든 날이 훨씬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처음 임신 확인을 하러 간 병원에서 태아 심장이 약하게 뛰니 유산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다음 진료를 받으러 가기 전 일주일 내내 불안에 떨어야만 했고.


힘찬 심장소리를 듣기까지...



먹덧, 토덧, 침덧, 양치덧 4종 종합세트를 모두 겪은 지옥 같은 입덧은 이른 6주부터 시작되어 자그마치 18주가 다 되어서, 세달 넘게 지속되었고. (가장 많이 토한 기록은 하루에 12번. 자는 시간 외엔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토를 하다 나중엔 피까지 게워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살면서 제일 큰 고통은 생리통인줄 알았었던 과거의 나..무지했음을


디클렉틴(입덧약) 달고 살던 한때



만성빈혈이 있는 데다가 임신까지 해서 너무 낮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기립성저혈압을 불러일으켜 걷다가 눈앞이 핑 돌며 쓰러지는 아찔한 경험을 두 번 겪고.


1차 기형아검사에서 고위험군으로 판정되어 혹시 우리 아기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마음 졸이는 시간도 가졌고.


저위험군으로 나온 재검사 후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임신 안정기가 되어 하루 만 오천보 넘게 많이 걷다가 쏟아지는 하혈로 철렁하는 마음 안고 병원에 가기도 했고(당일치기 서울갔다가 한 번, 진도견들과 아침 저녁으로 산책하다 또 한 번. 두 번 그랬다. 담당쌤한테서 무리 좀 하지 말라고 혼나기도)


주위에서 임신 기간이 황금기라고 가장 편하고 좋을 때라고들 하는데 나에겐 왜 이렇게 다사다난 이벤트가 유난히 많이 생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중기에 들어선 지금은 조금만 먹어도 배불러 힘들고,                          화장실을 하루에 수없이 간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몸이 불편해도, 체력이 후달려도, 힘든 위기가 왔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한 번 없이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 오히려 명현현상처럼 뱃속의 아가가 더 잘 크고 있는 반증이라는 생각에 무엇이든 다 괜찮게 여겨졌다. 내가 이렇게 긍정의 아이콘이었나? 싶을 정도로


체중과 다리길이 상위 20% 뽐내주고 계신 차밍씨.                       26주차인 지금은 900g이 넘었다.



무엇보다 준비 없이 찾아온 천사이기에, 서툴고 부족한 엄마와 아빠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우리 두 사람이 하루하루 성장하는 짜릿함마저 느껴졌다.



내안에 차밍이 있다 :•)


그러니 누가 임신 후 가장 행복하고 뜻깊었던 순간을 물어본다면, 어느 한순간이 아닌 우리 차밍이를 품은 지난 200여 일간의 모든 순간들이 아닐까 싶다. 만나기까지 앞으로 남은 90일, 걱정말고 설레자




Mother-to-be

                   엄마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