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신이라니 그런 것을
오늘은 10월 10일, 임산부의 날이다.
풍요와 수확의 달(10월)과 임신기간(10개월)을 의미하는 날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통해 임산부가 배려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내 브런치의 작품 타이틀이기도 하지만
나는 결혼이라니 그런 것을 하게 될 줄은,
나아가 임신이라는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혼주의까지는 아니었지만,
오롯이 나만의 인생이 중요했던 나.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도,
일부분 희생할 수 있겠다는 각오쯤은 들게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가능하리라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이 되었다.
오래전 20대 때 만났던 남자친구와
30대가 되어 우연히 다시 재회를 했고,
그와 나는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어쩌다 정신차리고 보니 결혼까지 했다.
코로나로 인해 3개월 미루어졌지만 원래의
결혼식으로부터 일 년이 지난 2021년 5월의 어느날
우리는 부부에서 부모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와 결혼을 하고서도 나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글쌔...
딩크족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살면서 '임신과 출신, 육아'라는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무엇보다 "나는 적어도 내 혈육은 갖고 싶어"
라던 남편의 의견도 존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마음의 준비 없이
신혼 일년 차에 불쑥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처음 느낀 감정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아직 철없고 미성숙한 존재인 내가
한 아이를 열 달 품고 또 낳아서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한 없이 걱정되고 두려웠다.
그렇지만 그가 결혼식 때 불러주었던
노래 '오르막길'의 가사처럼, '이 길 함께 가는 그대여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중략)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앞으로도 어려운 길 같이 걸어 나가자고 손잡아 주는 든든한 남편이 옆에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임신을 한 후, 행복한 날보다 힘든 날이 훨씬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처음 임신 확인을 하러 간 병원에서 태아 심장이 약하게 뛰니 유산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다음 진료를 받으러 가기 전 일주일 내내 불안에 떨어야만 했고.
먹덧, 토덧, 침덧, 양치덧 4종 종합세트를 모두 겪은 지옥 같은 입덧은 이른 6주부터 시작되어 자그마치 18주가 다 되어서, 세달 넘게 지속되었고. (가장 많이 토한 기록은 하루에 12번. 자는 시간 외엔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토를 하다 나중엔 피까지 게워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만성빈혈이 있는 데다가 임신까지 해서 너무 낮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기립성저혈압을 불러일으켜 걷다가 눈앞이 핑 돌며 쓰러지는 아찔한 경험을 두 번 겪고.
1차 기형아검사에서 고위험군으로 판정되어 혹시 우리 아기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마음 졸이는 시간도 가졌고.
임신 안정기가 되어 하루 만 오천보 넘게 많이 걷다가 쏟아지는 하혈로 철렁하는 마음 안고 병원에 가기도 했고(당일치기 서울갔다가 한 번, 진도견들과 아침 저녁으로 산책하다 또 한 번. 두 번 그랬다. 담당쌤한테서 무리 좀 하지 말라고 혼나기도)
주위에서 임신 기간이 황금기라고 가장 편하고 좋을 때라고들 하는데 나에겐 왜 이렇게 다사다난 이벤트가 유난히 많이 생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몸이 불편해도, 체력이 후달려도, 힘든 위기가 왔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한 번 없이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 오히려 명현현상처럼 뱃속의 아가가 더 잘 크고 있는 반증이라는 생각에 무엇이든 다 괜찮게 여겨졌다. 내가 이렇게 긍정의 아이콘이었나? 싶을 정도로
무엇보다 준비 없이 찾아온 천사이기에, 서툴고 부족한 엄마와 아빠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우리 두 사람이 하루하루 성장하는 짜릿함마저 느껴졌다.
그러니 누가 임신 후 가장 행복하고 뜻깊었던 순간을 물어본다면, 어느 한순간이 아닌 우리 차밍이를 품은 지난 200여 일간의 모든 순간들이 아닐까 싶다. 만나기까지 앞으로 남은 90일, 걱정말고 설레자
Mother-to-be
엄마가 되어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