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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Jan 03. 2020

한 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예비부부의 울릉도 여행기 1/3탄




2019.12.30.-2020.1.2.
울릉도 구상여행이라 쓰고
셀프 웨딩촬영이라 읽는 여행







prologue.


일주일 내내 수학여행 기다리던 고2 때처럼 설레었다. 그때는 제주도였지만 비슷한 점은 있지. 갈 때 배를 타고 갔다는 것, 태풍을 만나 비바람과 함께 했었다는 것, 그리고 돌아오던 날 비행기가 뜨지 않아 하루를 더 머물렀던 것. 이번 울릉도는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여행 전날 오후에 날아온 한통의 문자.

'내일 울릉도행 운항이 통제됩니다.'


일반적인 운항 불가의 이유인 높은 파고 때문이 아니라 선박 점검이란다. 아니 대체 왜? 불행 중 다행인 건 6시간 늦은 오후 배는 운항한다는 것. 도착하면 해 질 녘일테니 날짜 중 유일하게 포근할 첫날에 웨딩촬영을 몰아서 하기로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슬펐다. 도무지 어떻게 될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와 배 상황, 우리의 여행이지만.


어쨌든, 간다. 거기서 딱 기다려 울릉섬아.




문자 받은 순간 이대로 울릉도행 못하는건가 아찔했다.



화,수 기온 어쩔거야..








울렁울렁울렁거리는 울릉도로



나는 집과 가까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그는 부산 집에서 토닉이(차 애칭)를 몰고 각자 포항으로 출발했다. 간밤에 잠을 잘못 자서 인지 오른쪽 목과 어깨의 통증을 수반한 채, 그렇게 더 환자가 된 나는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그와 만났다.


지나가다 눈에 띈 맛있어 보이는, 알고 보니 포항에서 꽤 유명한 명승원만두집에서 군만두와 쫄면으로 아점을 먹고 (내가 "꾼만두 맛있겠다." 했더니 "꾼만두가 뭐냐 군만두라 해야지." 해서 시작된 대구-부산 사투리 배틀. 우리의 사투리배틀은 오래 전 '대학교'라는 단어에서 시작되었다. 대!학교라고 하는 대구와, 대학교!라고 하는 부산의 억양 차이로 우리는 종종 사투리로 의미 없는 갑론을박을 하곤 한다.) 후식으로 지난 생일에 그가 잔뜩 받은 음료 쿠폰을 쓰러 스타벅스로, 글레이즈드라떼 한잔을 테이크아웃. 여객선터미널로 가다가 죽도시장에 들러 산림청 분들 드릴 귤 한 박스도 사서 이제 정말 배를 탄다. 두른두근


여객선터미널에서 발권 수속하는데 직원이 물었다. "좌석 어디로 드릴까요? 1층이랑 2층 중에." "멀미 가장 안 하는 곳으로요!!!!" 했더니 직원분이 귀엽다는 듯 웃으셨다... 저는 7년 전 그때 그 공포를 잊을 수가 없다구요ㅠㅠ 티켓을 받아 들고 생명의 멀미약을 한 알씩 삼키고선 우리누리호에 올라탔다.





7년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하는 나의 가이드님(하트)



배는 생각보다 작았고 그 작은 배에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올라탔다. 무서워 무서... 이상하게 맨몸으로 수심 깊은 바다에 뛰어드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우면서 이런 배는 무섭다. 비슷하게 고층 전망대나 아찔한 절벽 위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롤러코스터처럼 360도 도는 건 이따금 무섭다. 사고 날까 봐.


어쨌든, 좁은 좌석에 나란히 앉은 그와 나는 뱃멀미에 가장 특효라고 알려준 김필씨(지난 번 울릉군 산림조합 설명꾼) 말만 믿고 귀마개..대신 무선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았다. 너만 믿는다.



여객선 안은 이런 모습 : )
창가자리가 아닌건 아쉬워


그럼에도 중간중간 멀미가 나려 할 때마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 일몰은 울릉도에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운항 시간이 오래 걸려서(거의 4시간) 배 안에서 해가 넘어가는 걸 보았다.



바다 한 가운데서 본 해넘이.








보고 싶었어, 울릉도야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깜깜해진 저동항에 발을 디뎠다. 공기를 들이마시니 폐 속을 가득 채우는 청량감. 그래 여기가 바로 울릉도지. 오는 길에 예약했던 한진렌터카 사장님이 마중 나와주셨고  차를 빌려서 산림청으로. 높다란 언덕을 넘어 도착하니 부부 직원 두 분께서 막 퇴근하고 나오시는 길이었고 우리가 머물 숙소 '독도방'으로 안내해주셨다.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우리가 타고 온 우리누리호. 핑크보랏빛 하늘과 손톱달.



짐을 풀고, 근처에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대박치킨에서 양념통닭 한 마리를 포장하고 돌아왔다. 그리고선 맥주와 물을 사러 차로 10분을 가야 하는 그런 곳, 정말 울릉도스러워 : )  


숙소로 돌아와 준비해온 스파클라 폭죽으로 테라스에서 사진 찍자고 졸랐다가 콩맨의 원성을 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몹시 허기져 있었고, 포장해 온 치킨은 강력한 냄새를 풍기며 식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늘 그렇듯 이번에도 역시 내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해준다. 흔들리거나 폭죽에 얼굴이 가리거나 엉망진창인 결과물을 보고서도 마음에 들어하는 생각보다 단순한 나. 호박막걸리와 테라와 양념치킨과 라면을 먹고서 울릉도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내일 셀프웨딩사진 촬영 잘 할 수 있기를, 부디 날씨가 도와주길 바라며 잠에 청했다.

nighty night!






이번 여행 중 나한테 서운하거나 짜증난 적이 언제냐면 이때라 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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