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부부의 울릉도 여행기 2/3탄
2019.12.30.-2020.1.2.
울릉도 구상여행이라 쓰고
셀프 웨딩촬영이라 읽는 여행
대망의 셀프 웨딩 촬영 날.
오늘이다. 이날을 위해서 얼마나 벼루었던가. 눈을 뜨자마자 창문 밖을 내다보는데 아.. 망했다. 어제의 화창한 날씨와는 달리 무척이나 흐린 게 아닌가. 게다가 눈이 온다. 심지어 소복소복 눈이 아니라 비처럼 녹아내리는 눈. 우리의 촬영은 이대로 끝인가요.. 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무 아니 양파라도 썰어봐야지 않겠냐며. 얼른 씻고 나는 드레스를, 콩맨은 정장을 걸쳐 입었다. 대구에서부터 소중히 안고 온 부케, 부토니에, 베일, 보타이, 구두와 장신구들도 함께 챙겨서. 각자 드레스 한 벌, 정장 한 벌에 롱패딩만 걸쳐 입고 밖으로 나섰다.
울릉도 오기 전에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한다는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리조트로 향했다. 50분쯤 달렸을까. 엄청 가파른 언덕 너머에 있는 리조트에 도착했고. 눈은 어느새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체크인 데스크를 지나 같이 운영하는 카페 울라 안으로 들어섰다.
"저희.. 사진 좀 찍고 가도 될까요?"
이 추운 날씨에 왔느냐며, 그리고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얼른 찍고 내려가야지 안 그러면 빙판길 미끄러워서 못 내려갈 거라고 걱정 뒤섞인 조언을 해주시는 호텔과 카페 관계자분들. 카페에 짐을 내려놓은 뒤 사진을 찍으러 나갔다. 비록 바라던 맑고 투명한 바다나 늠름한 추산은 시야가 흐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눈이 예쁘게 내려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이번 셀프 웨딩촬영엔 사진작가나 코디도 없다. 헤어나 메이크업해주는 사람도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게 우리 몫. 사진작가는 콩맨, 코디는 나. 거울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감으로 머리를 질끈 묶고 베일을 꽂고, 드레스의 어깨를 내렸다. 콩맨의 목엔 보타이를 둘러 메주고, 왼쪽 가슴 주머니엔 부토니에를 달아 주었다. 포즈나 구도 고민할 겨를도 없이, 촬영은 시작되었다. 그가 삼각대를 설치하고 카메라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른 뒤 먼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에게 달려오면 10, 9, 8, 7, 6.... 찰칵찰칵찰칵~! 열 번의 연속 촬영이 된다. 조금씩 포즈를 바꿔도 보고, 결과물을 확인하지만 살을 에는 추위와 눈발 속에서 확인이 잘 될 리 만무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눈밭에서 촬영했고. 이제 마지막 컷만 찍고 가자하는데, 갑자기 콩맨이 노래를 튼다. 아 추위에 분위기 바꾸어 보자는 거구나- 템포를 따라 춤을 췄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주섬주섬 가방에서 블루투스 마이크를 꺼내고, 스케치북을 집어 들고 다가왔다. 응???? 설마 프러포즈????????!
멘트 꾹꾹 눌러쓴 스케치북을 한 장씩 넘기며, 아주 달콤한 노래를 부르며. (나중에 곡 제목을 물으니 김형중이 아내에게 프러포즈하려고 만들었다는 '고마워요 내사랑'.) 그전까지 너무 추워서 발을 동동거리던 나였는데 그순간은 추위고 뭐고 그냥 행복했다. 온 세상은 하얗고 내 눈앞엔 그만 보였다. 진심을 다해 불러주는 그의 모습이 멋졌고 눈에 젖은 머리와 주륵주륵 물이 내려오는 안경이 짠하기도 했다. 여러 감정이 뒤얽히며 한 소절이 끝났고. 또다시 가방으로 뛰어가 무언가 꺼내와 "이건 선물이야." 하고 내밀었다. 다름 아닌 로즈몽ㅜㅜ 안 봐도 시계다. 오래전 내가 스스로에게 준 선물이었지만 (술을 마시고) 잃어버린 뒤 꼭 다시 갖고 싶었던 브랜드인데.. 어제 내 손목을 잡더니 이걸 주려고 그랬던 거구나(괜스레 울컥) 그의 프러포즈로 촬영은 끝났고 우리는 따뜻한 실내로 뛰어들어갔다. 원래는 카페울라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눈이 더 쌓이기 전에 얼른 내려가란다. 죄송해서 음료라도 테이크 아웃하려 했는데 되려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그냥 내어주셨다. 찡- 감사합니다 코스모스리조트 지배인님 & 카페울라 사장님들 :' )
이미 눈이 제법 쌓인 아주 가파른 경사길을 천천히 조심해서 내려와, 사동으로 돌아가는데 도로가 얼어 미끄럽다. 트럭 한 대가 나아가질 못하고 뒤에서 밀고 있고 우리 차도 미끌리기 시작했다. "이대론 안 되겠어. 차 돌려야겠다." 강원도 군 시절 운전병하며 눈길에서 차가 미끄러져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트라우마가 있는 그이기에 상황판단이 옳았다. 현포로 돌아가 우선 차를 댔고 밥 먹을 곳을 찾았다. '현포반점'이라는 나름의 맛집으로 유명한 중국집. 그곳에서 짜장면과 중화비빔밥을 먹고 몸을 녹이고 나왔다. 화관을 놓고 왔다는 걸 알고 다시 코스모스리조트로 찾으러 갔고, 눈이 쌓여 화관은 아주 끄트머리만 보였다는 게 그의 말. 어쨌든 대여한 건데 찾아서 다행 :> 콩맨 말을 빌리자면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여자 나야 나. 그리고 마지막 코스는 통구미 바위에서. 예전에 울릉도 왔을 때도 좋아하던 스팟인지라 여기서 안 찍을 수가 없었다.
신기한 저녁모임
숙소로 돌아가 옆방 '관음도' 방에서의 저녁식사에 초대되었다. 소장님 부부와 소장님의 장모님, 산림청 직원 부부, 그리고 역시 소장님의 초대로 오신 이웃 식당 사장님 부부와 예비부부인 우리까지 모두 일곱 사람이 모였다. 사모님이 차려주신 과메기와 매생이굴국, 꼬막비빔밥으로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음식 솜씨가 뛰어나신 사모님은 알고 보니 대구에서 꼬막 집을 하셨다고(무려 9호점까지 낸 유명한 꼬막집) 또 포스가 보통이 아니었던 이웃 식당 여사장님은 (사)울릉도아리랑보존회장이셨다.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다 예비부부인 우리에게 관심이 쏠려 "셀프 웨딩 촬영하러 둘 다 서로 좋아하는 울릉도에 왔어요." 하며 오늘 있었던 촬영 스토리를 들려드리니 기특하다고, 내일 새벽에 새해맞이 성인봉 등반 같이 하는 건 어떠냐 신다. 그러고 싶지만 등산복이나 장비를 전혀 준비해오지 못했고, 무엇보다 울릉도 오기 전 허리와 목이 안 좋았던 내 몸 상태에 어려울 것 같다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아리랑 보존회장이신 황효숙선생님이 자기 한복을 빌려줄 테니 저동항에서 하는 일출행사에 입고 가라고. 드레스 같은 하얀 순백의 아리랑 한복이 있다고 입으라 신다. 처음엔 부담이 되어 괜찮다 말씀드렸지만 모두가 입으라고, 새해에 의미 있게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그렇게 우리는 한복을 빌리러 황효숙선생님이 운영하시는 근처 식당 '미당'으로 밤중에 건너갔다. 그곳에서 한복을 빌려와 뜻하지 않게 내일 일출 행사를 위해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