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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Jan 12. 2020

우리집 현관문턱을 넘는 남자는 누구인가

보통의 특별한 날




우리 엄마의 사위가 될 사람의 방문


아주 역사적인 날이었다.

바로 우리집에 남자친구가 온 날.

그간 엄마는

"결혼할 사이 아닌 이상
절대 우리집에 발 못 들인다."

엄포한 터라 그 어떤 남자친구도 현관 문턱을 넘은 적이 없었다. 아니 설사 내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라고 데려왔더라도 쉽게 허락했을 리도 만무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9살 되던 해부터 실체 없는 인물과의 결혼을 아무리 하라 해도 귓등으로 듣던 딸이 돌연 결혼을 하겠다 하니, 마침 그 상대는 이미 5년 전 우연히 부모님이 만나보곤 인상 좋다고 생각한 상대인 데다 다시 재회하고서 딸의 일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든든한 사람이니 어쩌면 허락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어쩌다 상견례부터 했던 터라 일반적인 순서는 아니지만 4월 11일 결혼날로부터 정확히 세 달 남은 1월 11일, 남자친구가 우리집에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왔다. 그가 근무하는 영덕의 특산물, 대게를 한 상자 싣고서.



조카와 조카사위를 위해 기꺼이 한복 디자인을


오후 두 시, 그가 도착하고 얼마 있지 않아 고모가 오셨다. 고모라 하면 내가 사랑하는 서촌에서 한복 디자인 일을 하는 분이시다. 조카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 한복을 직접 지어주시겠다며 두 팔 걷어붙여 한달음에 대구로 내려오셨다. 5년 전 첫 번째 연애하던 당시, 그가 핀란드로 교환학생 가기 직전에 서울 가서 함께 뵈었던 터라 더 특별했다. 이제야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고모가 걱정을 했더란다. "아빠는 아시니?" 라는 물음이, 애기같은 조카가 멀리 떠날 남자랑 사귀다 상처받진 않을지...하는 뜻이었다고. 고모가 옳았어요(소곤) 그런 고모로부터 뜻밖에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태교 49개월'이라는 책.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우리에게 태교 준비 책이라니, 고모의 선물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나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아무튼 오셔서 견본 속 여러 가지 원단을 보여주시고는 우리가 마음에 드는 색(나의 당의는 노란 빛깔, 그의 쾌자는 연한 밤색으로.)을 고르게 했다. 빈 노트에 '아라와 박서방'이라 적으시곤 우리의 치수를 꼼꼼히 재셨고, 콩맨의 치수를 잴 때는 내가, 또 내 치수를 잴 때는 콩맨이 받아 적었다. 하프 스튜디오 촬영을 하는 2월 2일 전으로 완성해주시겠다 약조를 하고서 고모는 다시 서울로 가셨다.




늘 바래다주던 길인데, 왜 이다지도 낯선지


가래떡데이인 오늘의 일을 마무리 지은 뒤, 퇴근 한 우리는 엄마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은 집으로 향했다. 대게 두 박스(살아있는 대게 한 박스는 덤) 영양에서 사 온 술과 두들마을 표 선물까지 양손 가득 들고서. 항상 그가 바래다주던 길이라 둘이서 걷는 이 길이 익숙한데도 어째서 긴장이 되는지. 약간의 설렘도 더해진 익숙하지만 낯선, 집으로 가는 길.


울타리를 넘고, 마침내 현관문을 열어 집안으로 들어섰다. 아빠와 오빠가 우리를 맞이하고, 이어 주방에서 저녁식사 준비로 분주하던 엄마가 나왔다. 가지고 온 선물을 내려놓고, 손만 씻고서 식탁에 둘러앉았다.

"이 집에 들어오기 힘들었지?"

아빠가 말씀하셨다. 그간 아무리 자주, 집 앞까지 온 그지만 우리의 경계는 딱 거기까지였다. 집 앞에서 늘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그. 엄마는 "집으로 들어오게 해야 하는데...(그렇지만 아직은 안돼)."를 말하곤 했고 우리는 그 의견에 기꺼이 수긍했다. 그랬던 그가 두 번째 연애만에, 일 년 하고도 반 만에 집으로 들어오게 된 거다.


그가 가지고 온 대게 다섯 마리와 엄마가 준비하신 육회, 북어찜, 전, 샐러드, 그리고 고모의 찬조로 동인동 찜갈비까지 올라온 꽉 찬 식탁 위에서 다섯 사람은 둘러앉아 저녁을 함께 먹었다. 보통 남자친구가 처음 인사드리러 오면 신상조사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이미 서로 밖에서 밥도 많이 먹고 자주 본 사이라 그런지 그렇게 나눌 이야기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색할 줄 알았지만 그가 들어와 있는 그림이 금세 익숙해진 채로. 다가올 결혼식 이야기 약간, 그리고 외삼촌이 카톡으로 지금의 현장 사진을 받아보시곤 "예비사위 이마랑 코가 돈을 부르네."라고 하신 거 정도?


"밥 먹을래? 국 퍼줄까?" 하며 엄마는 끊임없이 음식을 내어오셨고, 나는 오늘 종일 엄마가 준비하셨을 그 시간과 정성에 왠지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 정성에 부른 배를 두드리면서도 마지막까지 먹었고, 최근에 다이어트를 하느라 위가 많이 줄은 콩맨도 사양 않고 밥까지 먹었다. 다 먹고 소파에 앉아 엄마가 깎아주신 과일로 후식까지 먹은 후에야, 마침내 우린 집에서 나왔고. 동네를 돌며 소화를 시켰다.




우리의 집은 어디


상동-파동-앞산으로 이어진 우리의 신혼집 구상. 수성구로 가면 물론 좋겠지만, 평일에 나만 있을 집이니 작업실에서 출퇴근하기 가까운 곳이, 기왕이면 교통비가 안 드는 곳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신혼집을 구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정하고서 앞산 이쪽저쪽을 돌아다니면서 내 집 마련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어릴 때 '내 집 마련'을 목표로 하는 어른들에 대해 이해를 못한 과거의 나를 반성해(..) 이렇게 많고 많은 집 가운데 우리의 집은 과연 어디인가 냐며. 그렇게 동네를 배회하다 조금은 특별했던 오늘을 마무리했다.







엄마가 내어주신 후식 과일 : )


집을 찾습니다.


이렇게 많은 집들 중에 우리 신혼집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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