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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Jan 22. 2020

13평 복층 신혼집을 구하기까지

결혼에 대하여 1/3





1월 초에 시작한 신혼집 구하기 미션.

조건은 세가지.

• 첫 번째, 작업실에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기 어렵지 않을 것.

• 두 번째, 평일에 혼자 지내기 무서운 곳이 아닐 것.

• 세 번째, 근처에 물이 있을 것(신천이나 수성못)

첫 서칭을 시작한 동네는 수성구 '상동'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품을 팔아봐도 전세 매물은 없었고, 원룸/투룸 빌라도 마땅한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 컨택한 건물주나 부동산 업자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 동네에 그대로 살면서 교통비를 아끼는 게(한 달 7만원 가량) 어떨까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떠나기엔 아쉬운 앞산. 가까이 물은 없지만 대신 산이 있지 않는가.


그래서 시작한 '앞산' 속에서 집 찾기.

일주일 전 주말.

많이 다니고 서칭하다가 우연히 닿은 황부장님.

처음엔 경계했는데, 이 사람 알면 알수록 진국이다.

처음에 인터넷으로 찾아놓은 곳을 포함해서

황부장의 소개로 총 네 군데의 집을 보았다.


A. 완전히 깨끗한 투룸인데, 이미 다른 사람이 계약을 앞둔 집.

B. 작업실과도 가깝고 지하철 역이나 버스 정류장도 코앞이고 가격도 알맞은데 모텔 느낌의 인테리어

C. 먼저 인터넷으로 본 곳. 동네가 좋고 신축빌라인데, 생각보다 너무 좁은 원룸.

D. 깨끗하고 넓은 원룸인데, 동네가 술집 골목 근처.


그리고 "여긴 복층이긴 한데... 그래도 한 번 보실래요?" 라고 황부장이 데려간 E가 바로 우리의 운명의 집이 되고야 말았다. 설마..? 했는데 건물 가까이 다다르고야 깨달았다. 예전에 동네손님 한분이 자기집이라고 사진으로 보여주며 자랑 아닌 자랑을 했던. 근데 분명 그 당시 월세가 어마어마한 오피스텔로 기억했다. 근데 그때의 그 가격이 아니다. 그냥 그는 허세남이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층고 높은 3층 계단을 오르고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반짝이며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아직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 복층인데 천고가 아주 높아 문제없이 다닐 수 있었고 공간이 매력적이었다.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콩맨도 마찬가지였다. 다 둘러보고 돌아와서, 인테리어 포기하고 현실적인 B집이냐 아니면 자금은 부담되더라도 어릴 때부터 로망의 복층집인 E집을 선택하느냐. 밤늦게까지 우리의 신혼집 대책회의는 계속되었다.


그날 밤, 심지어 눈팅만 하던 웨딩커뮤니티에 다른 예신예랑들의 의견을 묻는 글까지 올렸다. 댓글도 제법 많이 달렸다. 어쨌든 E집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그래, 짧게 살자. 신혼 때니까 살아보는 거야, 그리고 떠나자! 하고서 다음날, 황부장과 연락했지만 "지난밤 두 분 가시고 나서 다른 사람이 보자마자 계약했어요." 라는 슬픈 소식. 대신 처음 우리가 인터넷으로 마음에 들었던 C집의 투룸이 나왔단다. 영덕 간 콩맨 대신 엄마를 불러 황부장의 집 투어에 동행했다. 동네 좋고, 신축이고, 관리 잘되고.. 이번엔 투룸이라 넓고 다 좋은데... 마음이 안 간다. 원격으로 콩맨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는데 그도 같은 반응이다. 우리에겐 이미 묻따말 E집. 이 마음을 알고 황부장이 1월 말에 계약이 끝나는 다른 세입자가 있는데 이 사람이 연장만 안 하면 방이 또 나올 수 있단다. 무조건 연락 주세요! 저희한테! 신신당부를 했다.



예상 밖의 많은 댓글에 놀랐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월요일 오후.

설 연휴 전 선물세트 마지막 배송을 새하얗게 불태우고 늦은 점심으로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때마침

황부장이 연락 왔다.

"집이 나왔대요.
일단 다른 부동산에 알리지 마시라 하고
제가 잡아두었는데 보러 오시겠어요?"


당연히 가야지. 엄마도 마침 시간이 되셔서 회사에서 20분만에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다와가는데 "집주인이 그새를 못참고 다른 부동산에 매물올렸대요. 그리고 원래 살던 세입자가 자기친구한테 소개까지 해줘서 난감하대요." 라며 재촉의 전화가 또 왔다. 도착한 집 앞엔 황부장과 집주인이 있었다. 그 사이 집주인에겐 문의전화가 잇따라 걸려오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집안을 둘러 보았고, 여전히 마음에 쏙 드는 집 구조. 아쉬운 건 지난 3층보다 아래층이라 풍경이 앞의 건물에 가린다는 거지만 그래도 건물 간의 간격이 넓어서 하늘이 제법 보인다. 그리고 지난번과 다르게 흰 싱크대 색깔이 마음에 든다. (먼저번은 난해한 연두색) 이미 여긴 더 이상 묻고 따질 게 없다. 집주인과 좀 더 딜을 하려 했지만 걸려오는 전화에, 심지어 그새를 못 참고 다른 부동산에서도 집을 보러 온 사람의 도착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저희 계약할게요!"


곧바로 황부장을 따라 부동산으로 갔고, 등기부등본을 떼서 융자 유무를 확인했고, 입주날짜를 정하고, 계약금을 냈다. 4월 결혼이니 우리는 3월 말이나 4월에 들어가고싶다 밝혔지만 집주인은 무조건 1월 말엔 들어가야 한단다. 하는 수 없이 1월 31일로 계약 날을 정했는데, 손 없는 날에 대한 엄마와 나 사이의 대화를 듣던 진국 황부장이 집주인을 설득시켜 손 없는 날인 2월 2일로 최종 조율 땅땅. 최고다 이 사람 정말ㅠㅠ


지난 밤이 떠올라 소름 돋았다. 이 집에 방이 나기를 기다린 일주일, 그리고 주말이라 대구 왔던 콩맨이랑 심야영화를 보고 돌아오다가 문득 그 집 앞을 지나쳤고, "여기 우리집 될 거야. 느낌 왔어." 툭하고 내뱉었는데 24시간이 안돼서 정말 거짓말처럼 이루어졌다. 만약 이날따라 일찍 일을 서둘러 마치지 않은 채 오후부터 포장 작업해 평소처럼 오후 4시경 배송 업무를 했다면, 그 시간에 황부장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가지 못했을 거다. 그랬다면 또다시 눈 뜨고 코베인 격으로 다른 사람에게 그 집은 계약되었을 거고. 우리집이 될 인연이었나보다 정말.



신기하다며 나눈 대화.




처음 집 알아보기 시작한 게 1월 5일, 보름만인 20일에 우리의 집이 구해졌다. 되돌아보면 내 작업실 구했을 때가 오버랩되었다. 그때는 발품파는데 수개월이 걸리긴 했지만. 어쩌다 한 번 보고 마음엔 들지만 계약은 고민하던 곳을, "아라야! 당장 와봐! 다른 사람이 지금 계약하려고 해." 라며 다급하게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 한달음에 달려가서 보고 있는 다른 사람을 제치고 "제가 먼저 봤어요! 저 계약할 거예요!!!!!" 외쳐서 어쩌다 지금의 작업실이 내 작업실이 되었던 그때. 그리고 이번에도 다른 사람이 와서 보려는데 (보면 무조건 계약할 수 밖에 없는 집)

"저요! 저희가 계약해요!!!!" 질러버린 신혼집. 엄마는 이런 날 보고 난 그래도 참 복이 있단다. 인복이나 집운이 많이 따른다고. 인생은 운과 타이밍, 그리고 노력이다. 자칭타칭 운과 타이밍은 따라 주는 편이나 그거 믿고 노력에 소홀하는 일은 없어야지. 불끈.


그렇게 신혼집은 구해졌고.

입주를 2주 앞두고 우리는 무척 설레하고 있다.

생각보다 지출이 큰 집이지만.

대신 풀옵션이라 혼수 장만할 게 없잖아?

출퇴근 걸어서 3분 거리니 교통비 하나 안 들잖아?

친정집과도 가까우니 남편 없는 평일에는 집에 가서 밥 먹어도 되잖아?

게다가 좁은 원룸이었으면 아마 답답해서 안 그래도 심한 두사람의 방랑벽이 더욱 촉진됐을 거다. 이제 여행 대신 집에서 놀 거다. 애주가 커플을 위한 홈바도 구상해두었다. 오랜 내 신혼집 로망대로 TV는 두지 않을거다. 대신 책으로 거실 한쪽 벽을 가득 채워야지. 그리고 주말 밤이면 그와 좋아하는 술을 마시며 우리의 먼 미래 사업 구상을 해야지. 그리고 곡주만큼이나 애정하는, 밤 산책을 손 꼭잡고 해야지. 마무리는 충혼탑 계단 꼭대기에서 그가 좋아하는 대구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무엇보다 어쩌다 둘이 싸울 때면 "넌 내려가 소파에서 자!" 각방아닌 각방 쓸 수도 있는 완벽한 신혼집.

이게 가장 좋은 이유다.(농담)


다음화 [결혼 준비에 대하여 2/3]는

'완벽주의병을 가진 자의 셀프청첩장 만들기'에서 계속되는 것으로.






이 떡볶이를 먹다 받은 전화. 운명적인 타이밍.


계단난간 칠만 해주면 완벽해질, 우리의 복층집


영화 천문을 보고 나와서 쏟아지던 별, 별이 우리에게로 왔지.


bgm.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 - 마크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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