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하여 3/3
오랫동안 가진
결혼에 대한 생각 중 확고한 하나가 있었다.
'스튜디오 촬영은 안 할 것. 대신 여행을 가서 셀프로 촬영하고 올 것.'
4개월 가량의 짧은 결혼 준비과정에
스튜디오 촬영 없이 모바일 청첩장이나 포토테이블 위에 올라갈 사진을 위한 셀프 웨딩촬영 여행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스튜디오 촬영을 알아보았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스튜디오란 일반적으로 공장에서 찍어내듯 같은 장소 다른 사람으로 복사 붙여넣기한, 입술 경련 일어나도록 웃기만 해야 하는 꼭두각시 같은 힘든 하루를 보내는 곳이 아니라 보다 자연스러운 느낌의, 순간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사진관을 말한다. 그런 곳으로 노마하우스만한 곳이 없었다. 수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신랑신부의 모습을 담아내는, 정원이 있는 곳. 작년 11월 쯤이었다. 두달 더 후에 있을 촬영일을 미리 예약했다. 그때 이미 주말 오후는 모두 예약 마감이라 오전 타임으로 예약이 가능했다. 이른 아침 6시에 시작해서 준비하는데 2시간 반, 촬영하는데 3시간 소요되는 하프 촬영.
그 후 결혼 준비를 하는데 생각보다 여유가 생긴(?) 우리는 연말에 셀프 웨딩촬영을 위한 울릉도여행을 다녀왔고. 그곳에서 꽤나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얻어 왔다. 첫눈이 다해준 배경 덕에. 그러고 나니 굳이 스튜디오 촬영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고. 돈도 아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취소를 할까 했다. 그러나 그땐 촬영일로부터 한 달이 채 남지 않아 계약 변경이나 취소를 할 수 없는 시기. 만약 하게 되면 계약금 70만원이 그대로 공중분해된다. 그럴 수는 없지. 그대로 고- keep going.
촬영은 드레스 1벌과 캐주얼 1벌로 이루어지는데 캐주얼 의상으로는 고민하다 지난번에 검정 목폴라를 맞추었다. 아래위 올블랙으로 찍으려고. 그런데 엄마의 소원인 폐백을 하게 되면서, 어쩌다 폐백용 한복을 대여가 아닌 고모로부터 맞추게 되면서 이왕 맞추는 한복 노마하우스에서 사진으로 남겨두면 더욱 좋겠다 싶었고. 그렇게 고모는 조카와 조카사위를 위해 촬영 전까지 밤낮으로 우리 한복을 짓고 계실 예정^^
노마하우스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신랑은 정장이나 넥타이, 구두를 직접 준비해와야 하고 부케는 가능한 한 생화로 준비해야 하며, 신랑은 안경의 알을 제거하고 렌즈를 끼고 오란다. 안경알 빛이 반사된다고. 그리고 촬영일로부터 2주 전, 최근에 촬영한 셀카도 몇 장 보내라 했다. 그래서 지난 주말 콩맨과 사진을 몇 장 골라 보냈었다. 그런데 다음날이었다. 다시금 노마하우스와 주고받은 연락을 쭉쭉 살피는데, 두둥. 2주 전 방문상담을 요한단다. 이미 촬영일은 D-13. 아차 싶어 서둘러 다음날로 상담 약속을 잡았다.
화요일 오후,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영덕에 가있는 콩맨 대신 가까운 지원군 엄마와 함께 스튜디오로 향했다. 위치는 시내 삼덕동. 주차할 곳을 물으니 차고 문을 열어준다. 젊은 남자 한분이 나와 차고 입구를 막고 있던 자기차를 옮기고 또 젊고 예쁜 여자분이 나와 웃으며 맞이했다. 동시에 작가 느낌의 남자분 한분도 뒤따라 나왔고. 동백꽃이 활짝 핀 정원을 지나 상담실로 갔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던 따뜻한 상담실. 그곳에서 작가인 줄 알았으나 사장님이었던 분의 담담한 설명을 들었다. 서울분 같으셨는데 예상대로 서울분이시고, 17년간 서울에서 사진업을 하셨다고. 와이프는 마산분인데 결혼 후 어쩌다 대구와 인연이 닿아 이렇게 대구에 노마하우스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했다.
대구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라고 했더니 쑥스러워하시면서도 너무나 기뻐했다. 이런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일의 보람과 자부심 느낄 거 누구보다 잘 아는 나니까. 긴 상담을 마치고. 감사하게도 여러 서비스도 제공받게 되었다. 캐주얼을 대신해 한복을 준비해 온다 했더니 캐주얼 의상도 가지고 오면 촬영해주겠다고. 게다가 부모님도 그날에 오시라고. 오시면 서비스로 가족사진까지 남겨주시겠다 한다. 이게 다 엄마가 함께 있던 덕분. 아닌 게 아니라 도착하자마자 햇빛이 강한 상담실에서 그늘 쪽으로 테이블을 옮기는 걸 엄마가 두 손 걷어 도왔고, 또 두 분 말에 리액션을 얼마나 잘해주었는지. 대화 시 상대방을 편하게 만드는 매력은 나도 있다 들었지만 원조인 엄마는 못 따라간다.
내가 키가 크고 팔이 길어서 드레스는 소화 안 되는 것 없이 잘 어울리겠다고. 또 목이 길어 예쁠 거라 기대되신다는 사장님의 말을 들으며, 다른 신랑신부가 촬영 중인 스튜디오 곳곳과 2층의 웨딩드레스를 구경했다. 게다가 새로 구입을 앞두고 고민중인 것도 보여주셨는데, 말리는 직원 옆 예쁘다며 사도록 종용한 사람 나 :-) 아마 촬영 날 내가 처음 입어볼 수 있을 거란다. 거의 한 시간에 걸친 미팅을 모두 마치고, 촬영 날 만나자고 인사하며 나왔다. 차고를 빠져 나가는데 사장님이 동백꽃 한 송이를 차 창문 틈으로 쏙 내민다. "어머니, 이거 받으세요" 하고. 어머, 로맨티스트셔라ㅋㅋㅋㅋ
2월 2일 촬영을 앞두고, 이제 남은 건 약간의 다이어트와 피부관리. 본식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지. 사장님은 컨디션 나빠질 수 있다고 다이어트는 하지 말라고. 그보다 포즈나 표정, 시선처리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습하자 연습...!
그날 준비해와야 하는 건
평소에는 직업 특성상 하지 않는 네일아트.
우리를 표현할 아이템 (예: 등산스틱이나 등산가방, 앞치마와 정복 등)
미리 맞추어 둔 소중한 웨딩밴드.
두가지 정도의 부케. 가능하다면 생화 헤어피스도.
단숨에 몰아서 쓴
결혼에 대하여 1,2,3탄은 여기서 끝.
번외편이 생기면 나중에 또 따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