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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Jan 26. 2020

브라이덜 샤워, 가장 오래된 친구들과의 시간

대환장 대난장 파티의 전말



1부. 신부 축하 파티


쌍디들(quads ; 네쌍둥이)

브라이덜샤워 하기로 한 오늘.

쌍디들은 중학교 때 친구들인데 네명이 키와 발 사이즈가 완전히 똑같아서 붙인 애칭인 '네쌍둥이'를 줄여 쌍디들이라 부른다. 그리고 브라이덜샤워(Bridal Shower)는 결혼을 앞둔 신부를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하는 파티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쌍디들 중 두 명은 유부녀 두 명은 안유부녀다. 안유부녀 중 줄곧 "나는 결혼을 하더라도 가장 늦게 결혼할 거니까 너네 먼저 가." 하곤 했었는데 그런 내가 먼저 하게 될 줄은. 가장 먼저 결혼한 친구가 7년 전, 다음으로 한 친구가 5년 전, 그리고 이어서 내가 하게 되는 건데 다들 하자고 하자고 노래 부르고서는 아직 실현하지 못한 브라이덜샤워. 그 파티를 7년 만에야 이루게 된 것이다. 가장 젊고 예뻤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앞으로의 남은 인생 중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 아니겠는가.


한 달 전부터 컨셉을 정하고, 3주 전에 드레스와 맞춰 입을 흰 와이셔츠, 풍선과 여러 장식들을 사두고 오늘이 오기를 손꼽았다.


한결같은 내 취향.



사진관에서 전문기사를 통해 찍을까 했는데 그냥 내 작업실 공간에서 우리끼리 마음 편히 놀면서 파티하듯 해보는 것으로 변경 되었다. 어제 부산에 다녀오고(지난 글 참고) 완전히 지쳐서 오늘 아침, 8시부터 내려가서 작업실을 장식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친구들이 오기 30분 전부터 준비요이땅. 가장 먼저 배송받아두고선 아직 뜯지 않은 흰 와이셔츠 네벌을 꺼내 구김을 펴주고, 홀 한쪽 벽에 'BRIDAL SHOWER' 이니셜 풍선을 장식하고, 캠핑 테이블을 펼쳐 흰 테이블보로 덮고, 꽃시장에 가지 못한 대신 있던 튤립 조화를 화병에 꽂아 두고, 엄마에게 부탁드려 사다주신 과일과 마카롱으로 꾸몄다.


11시. 내일모레면 서울로 발령 가는 싱디가 가장 먼저 도착했고, 그사이 나는 바람을 불어넣다가 실수로 이니셜 'E'를 터뜨려 버렸다. 하마터면 '브라이덜 샤워' 아닌 '브라이덜 쇼'가 될 뻔 한 것을 브레인 싱디가 그 안에 바람 대신 휴지를 쑤셔 넣자며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나중에 온 친구들이 구박했다. 쭈글쭈글 이게 뭐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으로 서울유부녀 헴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피와 케이크를 사들고 온 킹디까지 비로소 완성체가 되었다.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말했다.

"아라 너가 결혼이라니. 안믿긴다 정말."
아직 친구들은  보낼 준비가 안되었나보다.




열심히 장식하고 난리법석.



협심하여 장식을 30분 만에 마칠 수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오징어 냄새가 나는 드레스로 각자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어보자. 눕혀 놓지 않아 산화됐는지 갈색빛이 도는 와인을 잔에 따랐다. 다들 운전을 해야 하니 입도 안 댔는데 이미 와인향에 취하는 것만 같았다. 마침 호두정과와 현미가래떡을 가져다준 엄마가 와인잔 샷을 찍어주셨다. 엄마가 가시고 이제 정말 우리끼리의 촬영 타임.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이제 쇼타임!



한 폰으로는 동영상을, 한 폰으로는 삼각대와 리모컨을 이용해 열심히 찍었다. 생각보다 우리 드레스는 곱고 서로에게 꽤나 잘 어울렸다. 포즈의 한계가 올 때쯤, "아무 노래 챌린지 찍을래 우리!?"라는 킹디의 제안으로 시작된 춤바람. 쉬운 춤 동작인데도 헤매고 또 헤맨 우리. 넷다 몸치라 다행이야. 아니면 잘 추는 사람이 답답해 죽었을거다ㅎ_ㅎ 게다가 드레스가 오프숄더였던 나는 팔이 자유자재로 움직여지질 않아 팔 대신 얼굴을 자꾸만 흔들어댔다(...)


아무 노래 챌린지 하다가 지친 우리. 친구의 아이디어로 휴지를 얼굴에 붙여 눈물 샷도 찍고, 우연히 시도해봤다가 생각보다 분위기 넘친 흑백사진도 몇 컷 찍은 뒤 대망의 하이라이트 흰 와이셔츠로 갈아입었다. 브라이덜샤워를 한다면 내가 가장 찍고 싶었던, 흰 셔츠 사진. 우리 네명이 여자로서 작지 않은 키

(1m 70cm)인지라 잘 어울릴 거라 자부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 기장이 어쩐지 모르게 어정쩡했고 또 눈으로 볼 땐 괜찮아도 막상 사진으로는 표현이 안되었다. 방 안에서도 찍어보고, 창가에서도 찍어보고 이쪽저쪽 실패와 시도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정착했다. 바로 홀 의자 위. 우리가 누울 자리는 바로 여기다.



꽤 느낌있게 나온 흑백사진 :-)



가지말라며 우는 그녀들. 그래도 난 갈거야!ㅋㅋㅋ



드레스랑 달리 모두 똑같은 디자인 같은 색이라 내가 신부인게 티가 안 난다고 면사포 베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친구들. "나 있어!" 했는데 울릉도 셀프 웨딩 찍을 때 썼던 베일이 안 보인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건가 보다. 그냥 베일은 포기하고 부케를 드는 것으로 신부임을 부각하기로. 수백 장을 찍다보니 점점 우린 다크서클이 내려오고.. 머리가 흐트러지고.. 지쳐갔다.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별 거 아닌 게 아닌 브라이덜 샤워 촬영 :' ) 4시간 여에 걸친 촬영을 마치고 샤샤삭 재빠르게 뒷정리를 했다. 마치고 모여 앉아 남은 마카롱과 케이크와 과일을 먹으며 못다 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대개 유부녀들의 결혼과 육아, 안유부녀들의 일과 사랑이 주제였다. 어느새 가정이 있는 두 유부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고. 초등학교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던 나도 함께 밖으로 나왔다. 우린 다음번 내 결혼식에서의 조우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대환장 내난장 혼돈의 와이셔츠 컷ㅋㅋㅋㅋㅋ









2부. 내 가장 오래된 친구들과의 시간


그리고 서둘러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모여있는 옛날 동네로 향했다. 초등학교 때 한 반이었던, 짧게는

20년 길게는 25년지기들. 서울에서 회계사를 하고 있고 지금은 결혼 후 육아 중인 수연이, 체육교사를 준비 하고 있는 병따꿍, 구미에서 회사 다니고 있는 양순이, 부산 항만공사다니고 있는 동히까지 일 년 넘게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수연이 남편 곽서방도, 곧 탄생 일년 되는 구 에디슨 현 지윤이도 나온 자리. 둘러앉아 근황 토크를 이어나가다 평소보다 과한 내 볼터치 지적에, "브라이덜 샤워 찍고 와서 그래."

했더니 "친구 누구 결혼해?"라고 묻는 수연이.



"내가. 바로 내가 결혼해."


라고 결밍아웃을 해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상보다 격한 반응들. 너무 놀라 해서 되려 내가 민망했다. 그래 내가 간다 얘들아!ㅋㅋㅋㅋ아 뭔가 너무 코흘리개 시절 때부터 본 친구들이라 그런지_유일하게 술 먹다 필름 끊겼던 모습도 곧 죽어도 남앞에서 우는 법 없는 내가 유일하게 운 모습도 본, 내 흑역사를 낱낱이 알고 있는 친구들이다_다른 누구에게 말하는 것보다도 훨씬 민망하고 이상했다.


결혼 선배 수연이의 (나보다는 남자애들 새겨들으라고, 미래의 와이프에게 잘해야 한단 식의) 결혼 조언을 듣고. 멍한 표정이 매력적인 지윤이랑 놀다가 청첩장 모임은 할 거냐는 질문에 못하지 않을까.. 했는데 어쩌다 부산 동히하우스에서 모이기로 했다. 2월에 각자의 남편(+애) 남자친구 여자친구 모두 데리고. 그러니 나도 콩맨이랑 같이 참석키로.  "그럼 우리 2월에 또 보자." 인사하고 짧지만 깊었던 친구들과의 시간을 마무리지었다.


브라이덜 샤워도 해보고,

내 가장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

행복했던 긴긴 하루.





함께 한 세월만큼이나 소중한 나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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