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날 경주로 쉼 여행을
2020/01/27
원래는 신혼집으로 입주하기까지
일주일 남겨 놓은 설날 연휴의 마지막 날,
입주청소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엄마가 경주에 회사 연수원 호텔이
공실이 있길래 예약해두셨다고 해서,
(그곳은 예약이 치열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라 안 쓰면 아깝다.) 나랑 콩맨이 묵기로 했다.
그보다 먼저 우리 집안의 큰 어른인 큰아버지께
그를 소개해드리기로 한 점심 무렵,
부산에 있던 그가 대구로 날아왔다.
정장으로 차려입고 이제는 문턱이 낮아진 우리집으로 두 번째 방문 : ) 이틀 전 아버지 어머니를 뵐 때 빠트리고 못 드린 세배(엄마한테 엄청 혼난 포인트..머쓱)를 우리 부모님껜 뒤늦게나마 같이 드렸다.
그리고 세뱃돈을 받았다 만세
콩맨은 아직 계약한 방을 실물로 보지 못한 터라
신혼집으로 아빠 엄마랑 함께 갔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우리에게 딱 좋은 공간.
복층이 일반적인 복층보다 천고가 높아 좋아했는데
아주 간발의 차이로 2m 20cm인 높은 내 원목 화장대가 들어가진 못하게 되었다. 침대랑 세트인데 아까워ㅠㅠ 침대랑 화장대, 붙박이장은 구비되어 있으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소파와 러그, 그리고 식탁 정도. 과하지 않게 필요한 것들로만 하나씩 차곡차곡 채워나가야겠다.
12:00
집을 다 둘러보고 나와 역시 아빠 엄마와 함께
차 두대로 나눠서 (우린 경주로 바로 가기 위해)
큰아버지, 큰어머니와 약속한 장소로 갔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우리. 수성못 전경이 보이는 창가 자리엔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안쪽 원형 테이블에 자리했다. 곧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들어오시는 게 보였고 그와 나는 입구로 나가 맞이했다.
주꾸미 정식을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이야기가 길어질 무렵 큰어머니가 차를 마시자며 자리를 옮기 자신다. 바로 위에 식당에서 운영하는, 후식으로 그냥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가 있어서 멀리 갈 것 없었고. 아메리카노 6잔과 함께 더 오붓한 대화를 나누었다. 분명히 나눈 대화는 많은데 기억이 잘 나질 않는 거 보니 알게 모르게 긴장이 많이 되었나 보다 :')
이 순간을 놓칠 수 없는 사진 마니아 아빠가 찍으려 하시기에, 이왕이면 다 같이 찍자고 내가 바 테이블에 폰을 올려두고 10초 타이머를 눌렀다. 생각보다 잘 나온 사진. 아빠의 말처럼 언젠가는 오늘의 지금 이 순간이 역사적인 날이 되겠지.
14:00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고
콩맨이 가져온 지리산 함양 꿀을 선물로 드리며
큰아버지 큰어머니께 인사했다.
"결혼식 날에 뵐게요"
그리고 아빠, 엄마에게도 그가 영덕에서 가져온
몇 가지_그의 회사 달력과 양말세트ㅎㅎㅎㅎㅎ를
드리고 배웅했다.
우리는 이제 경주로 힐링하러 가는 거다.
16:00
국도로 천천히 두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경주 더 스위트 호텔.
재작년에 한 번 묵고 두 번째 다시 온 이곳.
그때 너무 좋았어서 조만간 남원 스위트호텔에서도 묵자 했는데 못 가고 경주로 또 왔네.
비는 엄청나게 쏟아지고,
무엇보다 내내 정장만 입고 돌아다녀서인지
으슬으슬 몸이 안 좋아진 그의 컨디션으로
나가지 말고 그냥 쉬기로 했다.
바로 곯아떨어진 그의 옆에서 나는 가져온 노트북으로 울릉도 셀프 웨딩 사진을 고르고, 결혼식 대본(결혼서약서, 성혼선언문, 덕담) 샘플들을 찾아봤다. 결혼은 정말 알게 모르게 준비할게 많다. 한 번은 해도 두 번은 정말 못할 짓...! 한 시간쯤 지났을까, 잠에서 깼고 출출해진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나가보기로.
18:30
치킨러버들은 경주까지 와서도 치킨 노래를 부른다. 아니 내가 너무 좋아해서 그가 맞춰주는 것 두 가지 치킨 앤 떡볶이. 어쨌든 bhc의 블랙올리브나 맛초킹이 먹고 싶었고 마침 그에겐 친구에게 받은 맛초킹 쿠폰이 있었으니, 멀어도 주문을 해서 찾으러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아직 몸이 좋지 않은 그를 위해 약국을 들렀으나 문이 닫혀 편의점에서 판피린을 샀고. 마트에 들러 곡주커플에게 빠질 수 없는 막걸리와 함께 과자와 아이스크림도 샀다. 참 치킨 먹을 때 샐러드 꼭 찾는 별난 내사랑을 위해 샐러드와 드레싱도. 마지막으로 치킨을 찾아 호텔로 돌아왔다. 차 안에서 포장한 치킨 냄새를 맡는 것만큼 지독한 고문은 없다며ㅠㅠ
20:00
생각보다 늦어진 저녁식사. 치킨과 샐러드와 그의 차에 있던 김치사발면으로 먹었다. 경주 생막걸리도 함께 곁들여서. 주말의 노마 사진 촬영을 앞두고 관리해서 위가 작아진 우리(우리라고 쓰지만 사실은 그만. 나는 안줄었...)는 치킨을 많이 남겼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우리의 과제 '울릉도 셀프 사진 셀렉'에 들어갔다. 한없이 미뤄두고 고르지 못했는데, 마침 그의 친구 디자이너 설양이 보정해준단다. 그래서 고르고 골라 스무 장 가량을 보냈다. 이제 보정해주는 사진은 모바일 청첩장과 결혼식 날 포토테이블 위를 장식하거나 식전영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23:00
엄마가 챙겨준 입욕제로 반신욕을 했다. 욕조 목욕이 역시 최고ㅠㅠ 원래 혈액순환 똥망진창인 나인데 하고 나니 몸에 열이 올라서 막 운동 욕구가 셈 솟았다. 발레스트레칭인 턴아웃 복근운동도 하고 둘이서 플랭크 1분씩 3세트도 했다. 실내운동 안 좋아하는 나지만 이렇게 비가 오거나 하는 날을 위해서, 앞으로 홈트에도 취미 가져봐야지.
2020/01/28
둘 째날,
그는 연가를 냈고 나는 휴무를 낸
우리의 꿀 같은 쉼 날.
9:30
느지막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내려왔다. 예전 맛에 기대에 차 있었는데 왜 못해졌나요(..) 맛보다 가짓수가 너무 줄어 먹을게 많이 없었다. 아쉬워x100. 조식을 다 먹고 일어나 로비에 있던 젠가를 시작했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 아이스크림 사주기로 했는데 처참히 내가 실패,
바로 옆 테이블에 아이들이 하고 있던 루미큐브가 드디어 자리가 났고, 한 판 ok? 왕년에 루미큐브 좀 하던 나라고 자신감 안고 했는데 저버렸다. 아왜ㅠㅠㅠㅠㅠㅠㅠ이대로 끝낼 순 없는데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되었고, 짐 싸고 내려와서 더 하기로 했다.
11:00
짐을 갖고 내려와 로비에 제대로 자리잡기.
3판 2선 승제로 다시 시작. 첫 판, 그가 이겼고 두 번째 판도 그가 또 이겼다. 귤과 꼬북칩을 먹으며 다시 심기일전을. 세 번째 판, 내가 이겼고 대망의 마지막 판에선 결국 그가 이겼다. 1번 빼고 다 패한 나ㅜㅜ 어디 가서 루미큐브 잘한다 하지 말아야지 이젠. 시간을 보니 어느덧 오후 한시. 무려 2시간을 게임하고 있었다ㅋㅋㅋㅋㅋㅋ대단해 우리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오랜만에 경주월드를 가고 싶었지만 거센 비바람에 무리라고 판단,대신 지난번에 휴관일이라 못 간 솔거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보기로 했다.
14:00
도착한 솔거미술관, 근데 입구가 막혀 있다. 뭐지? 알고 보니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시즌을 맞아 엑스포공원이랑 미술관 모두를 통합운영 관리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엑스포 입장권을 끊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니. 그래도 안 볼 순 없잖아. 인당 5천 원씩 더 주고 입장. 단순히 수묵화 작가 전시라고만 알고 갔는데 가서 본 진경산수화의 대가 소산 박대성 작가에 우리는 완전히 사로 잡혔다. 한쪽 팔이 없이 한 손으로만 70여 년 간 작업을 해온 그. 전시실에 들어가 마주한 그의 작품에 탄성이 나왔다. 화폭의 크기가 8m x 4m에 달했다. 이걸 어떻게 그리나 토론도 벌였지만 나중에 본 그의 다큐 영상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서양화는 세워서 그린다면 동양화는 눕혀서 그린다고 한다. 종이를 밟고 다니며 그리고, 그래서 단순히 손만 사용하는 게 아닌 그릴 때마다 전신과 오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의 <한라산>과 <독도>에 반한 우리는 각각 엽서도 한 장씩 사들고 나왔다.
"전시 진짜 보길 잘했지." "그래 정말 좋았어" 하며
이왕 끊은 통합입장권 솔거미술관 관람으로만 마치기엔 아쉬웠던 우리는 미디어아트전인 '찬란한 빛의 신라 <Timeless media art>'도 보기로 했다. 총 일곱 개의 방에서, 두 방은 우리가 움직이는 데로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전시를 하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을 안고 들어갔는데 뜻밖에 화려하고 눈을 사로잡는 방에서 우리는 춤도 추고 난 발레 동작도 하고 신나게 놀았다.
15:30
마지막으로 85m 엑스포타워 전망대에 올라 경주의 전경을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경주 여정을 마무리 짓기로. 오랜만에 온 타워는 정비가 되어서 모던하고 세련되어졌고, 말끔해진 카페에서 라이스 파우더가 들어간 아인슈페너 '선덕라떼'를 마시며 잼머 일 구상을 했다.
호텔에서 조식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던 우리. 각자 영덕으로, 대구로 돌아가기 전 점심 겸 저녁을 먹기로 했고 그가 얼마 전 동아리 '향뽕' 사람들과 먹은인생닭갈비집 '산갈래'를 추천했다. 그러다 여전히 비도 오고 숙취해소도 하고 싶어 칼칼한 국물이 당겼고, 찾아두았던 '수향훠궈'가 생각나서 그곳으로 향했다. 신기했던 건 수향훠궈 가는 길에 아주 근접하게 산갈래 닭갈비집이 있었던 것. 여기가 경주의 숨은 맛집 골목인가 보다 했다.
17:00
소고기 말고 양고기 넣은 오리지널 훠궈 정식 2인분을 주문. 산초 범벅인 홍탕과 백탕 반반의 훠궈는 정말 맛있었다. 이런 맛도 좋아해주는 나와 입맛 비슷한 콩맨이 좋고, 그는 날더러 동남아 여행 같이 가자한다. 맛있게 싹싹 비우고 나와 엄마가 부탁한 교리김밥..은 본점 - 운영 마감, 보문점 - 화요일 휴무였던 터라 대신 우엉김밥을 사 가기로 하고 성동시장으로 고. 평일이고 한지 웬일로 줄이 하나도 없다. 할머님께서 강제로(?) 입에 하나씩 물려주시는 우엉을 먹으면서 포장해서 나왔다. 그리고 경주역으로 가려다가, 그가 영덕으로 가는 길인 포항에서 타고 가기로 급 결정. (이를 전화상으로 들은 엄마는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으냐고 혀를 내두르셨다ㅎㅎㅎㅎㅎ)
18:30
그렇게 순식간에 도착한 포항역. 같이 있으면 항상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떨어져 있는 시간은 길고. 아무튼 그는 기차에 올라타는 날 배웅한 뒤 영덕으로 다시 운전대를 잡고 갔다. 나는 홀로이 대구로.
이번 설 연휴의 마지막은 이렇게
큰아버지도 찾아뵙고,
신혼집도 구경하고,
경주에서 쉼과 구상도 하고
사랑하는 그와 함께
낱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다.
이제 대구로 돌아가면 우리가 주문한 청첩장도 올 거고, 주말엔 노마에서 웨딩촬영도 하게 되고, 곧 부산에서 오실 어머니와 엄마를 모시고 한복을 맞출게 된다. 온통 행복할 일들로 기다리고 있는 이번 한 주.
'걱정 말고 설레어라.'
얼마 전 그에게 했던 말.
결혼 후 새 가정에서의 우선순위를 꼽자면
"만약 나중에 우리 사이에 아기가 생기더라도
난 널 항상 우선순위에 둘 거야.
나에게 1순위는 너야. 다음이 자식이고.
그렇지만 0순위는 항상 나 자신이야."
bgm. End of time - Johnny stim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