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원 Feb 24. 2020

코로나가 바꿔 놓은 우리들의 일상

예비부부의 반 칩거 주말 기록.



주말이 다가왔다.

어느 때라면 일주일 만에 남자친구 만날 생각에

설레고 손꼽았을 주말이, 이번엔 그럴 수 없었던 건

바로 환장할 코로나 때문.

한국에 코로나가 상륙한 지 한 달 남짓,

신천지로 인해 수백 명의 확진자가 생긴 후 사나흘,

그리고 이번 주말을 맞이했다.

(금요일 당시엔) 대구에 100명 가량 집중되어있는 터라 오지 말라고, 아직까지 청정지역인 그의 동네에 있으라 했는데 그는 결국 대구행을 감행했다.

단 휴게소 들리기 금지, 창문 내리기 금지

조건을 내세우고.








1일차 (fri, Feb 21st.)


그가 올 금요일, 체력 보충도 할 겸 고기를 구워 먹기로 하고서 그가 오기 전 점심시간에 미리 재료를 사러 한살림에 갔다. 타지의 지인들이 이거 진짜냐며 대구 마트 사재기 사진을 보낼 때마다  "이정돈 아니야 에이" 했는데..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텅텅 빈 신선코너. 내가 좋아하는 콩빵도, 우유도, 계란도, 과일이나 야채나 구황작물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잘 아는 직원분이 절레절레하며 얘기하셨다. "명절 전날 같네요." 쌀과 두부, 김, 누룽지, 라면, 그리고 한우 등심이랑 생삼겹살을 사들고 나왔다. 사지 못한 쌈 야채는 내 작업실의 식물재배기에서 버터헤드를 따서 대신하고. 집에서 김치와 명이나물을 찬조받아서. 그리고 금요일 밤, 영덕에서 온 그와 예비신혼집에서 고기 파티를 벌였다.



한살림 애용한지 4년 째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


겨우 습득한 것들.









2일차 (sat, Feb 22nd)


토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코로나 관련 뉴스를 틀고서 왕년의 단골 브런치 메뉴, 정또띠* 를 해 먹었다. 정또띠는 그 옛날 콩맨이 교환학생 갔을 때 내가 알려준 메뉴이기도. 그도 핀란드에서 자주 해 먹었다고 했다.

(*정또띠 : 무한도전에서 정준하가 백종원에게 전수 받은 레시피로, 또띠아 안에 계란과 양파 치즈 등을 넣고 구운 요리. 아침 한 끼 식사로 제격이다.)


워낙 든든하게 아침을 먹어 점심은 아이스크림으로 대신하고 옆동네 송이네로 향했다. 얼마 전 임신을 한 동생 송이에게 임산부에게 좋은 키위청과 출산 디데이 달력을 전해주러. 집콕을 하고 있던 송이는 마스크를 낀 채 대문 앞으로 나왔고 선물만 주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우리 곧 만나)

그의 차 토닉이에게 줄 워셔액을 사러 다이소를 들린 후, 나온 김에 차로 드라이브라도 하려 했는데 배가 고파진 우리는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다시 나오기로. 어제 남은 삼겹살로 그가 김치볶음밥과 계란국을 만들어 주었다.


부린 배를 두드리며 쉬다가 집안 대정리 한바탕. 할 일 다 하고 답답해진 우리는 드라이브를 나섰다. 마스크 착용은 필수. 좋아하는 장소인 달성습지로 가서 사람 없는 호젓한 길을 걸으며 답답함을 풀고 백 투더 홈. 저녁은 아빠엄마오빠랑 다 같이 먹기로 한터라 친정(?)집으로 갔다. 엄마가 해두신 삼계탕과 김치찌개에 친구 수정이가 준 술 독산53을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부린 배를 두드리며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왔고. 요거트맛 투게더에 내가 만든 블루베리잼을 올려후식으로 먹고 오빠야가 담아준 영화 겨울왕국2를 보며 담담하게 토요일 밤을 보냈다.




임신선물 주러 갔다가 한라봉을 받았다. 잘 먹을게!


호젓한 화원군 시골길. 함께 걸으면서 :-)









3일차 (sun, Feb 23rd)


원래라면 남해 가기로 한 일요일. 처음에 코로나가 이 정도로 발발하기 전에 산악회 버스를 타고 남해 설흘산 산행을 계획했었다. 그러다 지난 수요일 신천지 사태가 벌어졌고. 단체버스는 불안하니 자가용으로 보리암을 가는 것으로 변경했다. 근데 점점 더 확산되는 양상에 이마저도 무산되었다.


그런데 새벽 6시, 알람도 없이 둘 다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몸도 개운했다. (지난밤 53도 독주 마신 우리 맞느냐며) 그리고 "남해갈까?" 그의 도발에 나는 거짓말~ 이라면서도 어느새 발딱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으로 올리브빵을 굽고 야채크림수프 끓이고 없는 양파 대신 씻은 김치와 버섯을 넣은 김치버섯치즈또띠아로 든든하게 먹고 나섰다. 마스크 단단히 착용한 채, 휴게소나 화장실 한 번 들리지 않고 보리암만 오르고 오는 것으로 약속하고 33번 국도를 따라 남해로 가는 길, 그와 나는 눈이 마주 치곤 웃음이 터졌다. "우리 이런 쿵짝이 너무 잘 맞아서 큰일이야."



어제 본 영화 ost를 들으면서 보리암으로 출-발!


두근두근 남해군



두 시간 반 가까이 달려 도착한 남해,

그리고 보리암 매표소 주차장.

나는 3년 만, 그는 6년 만에 온 거였다.

먹는 것도 입는 옷도 가는 곳도

한 번 꽂히면 같은 것만 파는 나에게

좋아해서 자주 찾는 여행지가 몇 군데 있다.

울릉도, 강릉, 남해.

내 마음의 고향 같은 곳들이랄까.

늘 콩맨에게 같이 남해가고 싶다 노래를 불렀는데

드디어 소원 성취의 날.

그러나 보리암만 가야 하는 날. 그래도 그게 어디랴

등산이라 하기엔 뭣한 가벼운 산책길의 끝에 금산 정상과 금산산장에 다다랐다.

금산 정상엔 시야가 트이는 봉수대가 있었고

금산산장엔 여전히 할머니께서 라면과 메밀전과 기타 메뉴들을 팔고 계셨다. 콩맨은 직업병이 돋아 이곳은 불법 점유된 국유지인데 너무나 오랫동안 살아온 토착민일 거라 어쩌지 못하지만 그래도 장사를 통해 이익이 발생되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얘기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손바닥만한 파전이 1만 원, 쥐꼬리만큼 들어간 나물 들어간 나물비빔밥 한 접시에 7천 원인 건 너무 하잖아요..^^

그런 나물비빔밥일지언정 배가 고팠던 우리는 컵라면과 함께 한그릇 먹었다. 마지막으로 보리암에 들러 '코로나 종식되게 해 주세요.' 빌고 내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좋아하는 돌창고프로젝트에 가서 미숫가루 마시며 전시도 보고, 독일마을에 들러 인생 슈니첼도 먹고 싶지만 마음 꾹꾹 눌러 담고 곧장 돌아가는 것으로. 다시 33번 국도의 하행길에 올랐다.






한 시간 채 안되게 보낸 금산 보리암에서의 시간,

왕복 5시간의 쉼 없는 운전으로 지쳤을 그인데

돌아와 파스타를 만들어주었다. 짱짱맨

쉐프의 진두지휘 아래 보조인 나는 파스타면을 삶았고. 그러고 보니 파스타 만들어보는 거 처음이네 나. 철학관에서 말했듯이 '맛있는 건 좋아하지만 직접 하는 건 싫어하는. 손에 물 닿는 걸 꺼린다.'는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잼머 일 이후로 그나마 간헐적 취미였던 베이킹도 손 떼고 일터에서 말고는 주방에 있는 걸 싫어한다. 요알못인 나는 면을 삶고 면수를 다 버렸다. 그 덕에 알리오올리오의 면이 고무 씹는 느낌이었지 히히. 달래를 넣은 알리오올리오와, 재료의 부재로 생크림 대신 우유, 베이컨 대신 스팸, no고춧가루의 투움바파스타는 일명 '우리만 만족하면 된 요리'가 되었다.


밥 먹고 쉬다가 늦은 저녁, 또다시 출출해진 우리.

치킨을 시킬까 하다가 간단하게 닭강정을 사 먹기로 했다. 집 근처에는 편의점이 총 세 곳. 세븐일레븐, 지에스25, 씨유 모두 300m 이내에 다 있는 우리집은 편세권^^ 그런 김에 편의점 세 곳을 다 가보기로 하였다. 1편의점 1메뉴를 사들고 돌아와 우리는 늦은 저녁을 즐겼다. 영화 백두산을 보려 했지만 A급 배우들로 B급 영화를 만들었다는 후기가 처음부터 오버랩되어 금세 끄고 노마하우스에서 찍은 웨딩사진을(8천장 가운데 20장) 골랐다.








+ 4일차 (mon, Feb 24th)


월요일 새벽 같이 그가 영덕으로 출근했다.

아침으론 시리얼과 사과와 커피를 먹고.

두시간 여를 달려 간 그에게서

슬픈 소식이 들려 왔다.


어쩌면 당분간 우린 만날 수 없을 사이...





3일간의 칩거 생활을 마무리하고 나니 드는 생각은, 자연적 재해든 감염병과 같은 사회적 재난이든간에

재난 앞에 사람은 무력하고 한없이 나약할 수 밖에 없다는 것. 4월로 예정된 우리의 결혼식은 아직도 어찌할지 모르겠다. 미루자니 언제쯤 진정이 될지, 어느때로 날짜를 잡을지 종잡을 수 없고. 그렇다고 무한정 연기할 수도 없는 일이고. 또 그에 따른 예식장 위약금이나 새로 찍어야 할 청첩장, 취소 시 드는 수많은 수수료 문제 등. 그대로 감행하자니 이 시국에 초대하는 게 눈치도 보이고 만에 하나 우리의 결혼식장에서 확진자라도 발생하면... 그런 끔찍한 일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일주일만 더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해야겠다.

그리고 이럴 때 우리가 집돌이 집순이가 아닌 게 안타깝다는 생각. 밖에 나가야 에너지가 솟고 등산이 곧 쉼인 우리에겐 칩거 생활은 고문과도 같았다. 달성습지로의 드라이브도, 남해 보리암도 다녀왔지만 부족하다. 땀 빼고 싶고 턱까지 숨이 차오르게 운동하고 싶다.


어쨌든,

더 이상 모두가 불안하지 않았으면

더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나 같은 자영업자들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마음껏 나갈 수 있는

숨 쉬기 편한 날이 하루빨리 다시 오기만을.







3일간의 칩거 생활 그동안의 식(食) 기록



[day 1]

1일차. 아직 식탁이 없어 캠핑테이블 위에서, 한우와 와인과 녹미밥.



[day 2]

2일차 아침. 정또띠 브런치 :*) 포크와 나이프가 필요하다.


요거트 아이스크림에 직접 만든 블루베리잼 곁들이기.


그가 해준 첫 번째 요리, 삼겹살김치볶음밥과 계란국.


저녁은 친정집에서. 삼계탕과 김치찌개 with 독산53



[day 3]

3일차 아침, 김치버섯또띠아에 야채스프와 올리브빵.


그가 해준 달래알리오올리오와 스팸투움바파스타. with 딸기초주


저녁인가 야식인가. 편의점 3군데 표 고추크런치치킨 외



[day 4]

4일차 아침. 시리얼볼이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와의 쉼은 훠궈와 같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