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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Mar 02. 2020

결혼에 대하여

결혼에 대한 주말 단상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깍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은 전깃불을 끄고 촛불 아래서 한 권의 시집을 읽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책갈피 속에 노란 은행잎 한 장쯤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오면 땅의 벌레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깊으면 가끔은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열림원, 1998)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진 않아도

가랜드 만들겠다는 나를 위해

산속에서 소나무 가지를 주워 주는 사람


된장 푼 쑥국을 끓이진 않아도

서툰 솜씨로 달래파스타와 떡볶이를 해주는 사람


일주일 동안 야근하느라 힘들었음에도

주말에 와 작업실 냉장고, 화장실 청소해주는 사람


잔소리에 대항하며 기어코 삐진 내게 다가와

미안하다 사과하며 풀어주는 사람


두고 보고 결혼할지 안할지? 판단하겠다는데

서로 맞추고 이해해가면서 잘 살자는 사람


그래서 한다, 이 결혼.

요리하고 걷고 다투고 대화한 주말 끝의 단상.






산대장. 미우나 고우나 내사람.



bgm. My way - Seth Macfarlane ('Sing'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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