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불을 끄고, 나는 불을 다스리고
나는 불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직업군이다.
'잼머(Jammer)' ; 잼을 만드는 사람
즉, 매일 불 앞에서 일하는 사람.
코로나 사태 이후 의식주에 집중된 소비 패턴에
식품 가운데 디저트 제조업인
나의 일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2, 3월 매출은 7~80% 가량 줄었다.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행사 준비로
한 일주일 다시 불 앞에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예비신랑인 콩맨도 덩달아 불 앞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 일 년 중 가장 바쁜 봄, 가을 시즌 '산불기동단속' 기간을 주말마다 경북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 근래 상대적으로 한가하던 내가 2주간 주말에 영덕으로 가서 동행을 했고, 지난 주말에는 영양에 산불이 일어나 예기치 못하게 현장 출동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 덕에 나는 차에서 추위와 기다림 속에서 몇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돌아온 그는 회색 사복바지가 새까맣게 그을렸고, 무방비 상태로 드러낸 발목에는 산을 오르내리다 생긴 상처가 곳곳에 생긴 채로 녹초가 된 모습이었다.
이번 주는 각자의 일로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주말에 있을 만남을 며칠 앞둔 수요일 오늘,
담당 지역인 청송에서 발생한 산불로 그는 점심시간에 부랴부랴 출동했다. 그리고 화재 발생 10시간 가량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다.
나도 오늘은 종일 불 앞에서 잼을 만들며
사투를 벌였지만,
그는 정말 본인의 의지대로 어찌할 수가 없는
화마 앞에서 전투 중.
간혹 잠시 잠깐 한눈을 팔거나 오늘처럼 불 조절에 실패해 오늘처럼 애써 만들던 잼이 눌러붙거나 타서 다 버려야 할 때, 속상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그건 오롯이 내 손안으로 통제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이 무력할 뿐. 그래서 또 손쓸 수 없이 본인의 바지와 신발이 모두 그을리거나 젖은 그가, 낮에 점심을 먹다가 뛰쳐나가 저녁도 먹지 못한 채 화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가 안쓰럽고 또 애잔하다.
저녁 9시, 나는 막 퇴근을 했지만
그는 아직 퇴근 전이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나 오늘 일 그만할래요. 더 이상 찾지 마세요" 해버리면 그만인 자영업이지만
그는 아무리 안 하려 해도 '전직원 출동'이라는 명령에 무조건 최전선에 뛰쳐나가야 하는 직원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 그에게서 온 카톡.
아, 짠하다.
제발 빨리 진압되기를.
이번 토요일, 4월 11일 원래의 결혼식이 코로나로 연기되며 대신 그날 하기로 한 우리만의 약혼식도 어쩌면 근무로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은 그저 아무쪼록 무사히 그가 빨리 돌아오기 만을 바라는 밤.
덧. 그가 지역 이동(내가 있는 곳과 가까운)이나
부서 이동(홍보팀 같은 내근직) 했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bgm. Rain or shine - 일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