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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May 16. 2020

또 다른 부모님이 생겼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가족이 만나 대가족을 이루는 일


그러니까 두 번째 만나는 날. 지난 해 가을 어느 날 긴장 속에서 두 분의 아버지와 두 분의 어머니, 그리고 아들 한 명과 딸 한 명 이렇게 여섯 식구가 마주 보고 식사를 했었다. 쉽게 말해 상견례라는 걸 했었다. 대구에 사는 우리가 부산으로 가겠다, 부산에 사는 남자친구네가 대구로 오겠다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중간지점인 경주에서 만났다. 경주로 향하던 길, 먼저 도착해 있는 남자친구 식구들이 있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던 그 순간이 얼마나 두근두근 긴장되고 쿵쾅쿵쾅 설레던지.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건이 아닌가. 그날 밤은 고즈넉한 정원이 있는 한옥집에서 식사를, 보문호가 바라보이는 운치 있는 카페에서 차를 먹고 마셨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무려 4월로 결혼식 날짜를 잡고, 우리는 3개월만의 결혼 준비에 착수했지...만 그사이 2월에 코로나가 발발하였고 결국 결혼식은 무산이 되었다. 아 무산이라고 해서 결혼 자체를 안 하게 된 것은 아니고 7월로 연기를 하였다. 봄의 신부가 될 줄 알았는데 여름의 신부라니 내가 하하하 :') 그리고 그 당시 이미 결혼 준비는 거의 마쳤던 상태였던 터라 시간이 멈춘 듯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개월이 흘러갔다. 2020년 너무나 기대했던 해인데.. 건강도 증진시키고 의욕도 넘쳐났으며 그간 모아둔 돈을 결혼 준비에 소진했던 터라 앞으로 일도 열심히 하려고 결심한 직후인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의지만으로 그 어떤 것도 마음대로 안되던 2020년 2,3,4월 이 시기를 내 인생의 암흑기라 명명한다.


그리고 원래라면 이미 결혼식을 했을 날짜가 지나고, 이제 결혼식이 한 달 남짓 남아있게 되니 슬슬 결혼 준비에 다시 발동이 걸린다. 예를 들면 한 달 앞두고 해야 할 신부 드레스 셀렉, 신랑 예복 맞추기, 청첩장 전달, 식중 영상 제작 등등. 그런 미션들을 앞두고 부모님과 한 번 더 식사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원래 지난 4월에 하려고 했는데 내가 기장 행사를 주말마다 하게 되면서 연기하고, 드디어 하게 된 것. 장소는 어쩌다 부산 아닌 대구로. 마침 아버지 생신을 앞두고 있었고 또 일이 바빠 어버이날에 꽃바구니만 배달 보내고 준비한 선물은 전해드리지 못한 터라 케이크도 함께 주문하고 겸사겸사 잘 되었다.



주문한 떡케이크 찾으러 가던 길, 장미가 지천이었다.


경복궁이라는 한정식집을 예약하고, 마침 어머니들 다시 한복 고를 겸 한복집 상담도 예약하고, 아버지는 아직 보지 못하신 예식장도 함께 보면 되겠다 싶었다. 두 번째 뵙는 아버지는 여전히 (내 기준) 멋있으셨다. 처음엔 과묵하셔서 말씀이 없으셨는데 오늘은 얼마나 편하게 말씀하시는지 하시는 말마다 나는 빵빵 터졌다(아버지 제 서타일이세요)TMT 우리 아빠는 뭐 처음부터 음식보단 말하기 좋아해서 집에서 나설 때 "오늘은 제발 말씀 많이 하지 마세요."라고 신신당부했지만 혹시나 역시나 효과는 1도 없지. 어머니야 두 분 다 센스 있고 우아하고 말해 뭐해 히히. 두 분께 각각 태어난 해와 이니셜이 새겨진 엔틱동전으로 만든 팔찌와 키링을 선물해드렸고. 아버지 생신은 다가올 18일이 아닌 지난 음력 18이었다는 사실에 뒷목 잡았지만 그래도 준비한 떡케이크로 지나간 생신축하 노랠 불러드렸다. 좋아하셨으니 됐지 뭐~



초는 하나만 꽂는 배려.
왼쪽 어머니들 팔찌 / 오른쪽 아버지들 키링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들 한복 재상담하는 동안 아버지들은 수성못 산책을 살짝 즐기시다가 예식장은 안 봐도 된다면서 내 매장 한 번 가보자는 아버지 말씀에 어쩌다 같이 작업실행을 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청소해둘걸... 중얼) 그곳에서 내가 담근 파인애플식초와 사온 커피로 티타임을 즐겼고 세분은 다시 부산으로 가셨다. 첫 만남보다 덜 어색하고 그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오늘. 만나기 전엔 긴장이 되고, 만나고 있을 때는 따뜻한 느낌이 들더니, 헤어지고 나니 그 잔상이 오래 남는다. 나에게 또 다른 가족이 생긴 느낌? 대화 중에 오늘 콩맨에게 불쑥 던졌지기도 한 말인 '참 다행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 이런 부모님을 만나, 이런 사람들과 가족을 이룬다는 것이 문득 행복하고 좋다는 생각. 결혼에 대한 로망도 없었고 결혼을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던 나를-내게 결혼은 소중한 것들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내 인생에서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포기해도 된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해야지 했던 나였는데-바꾸어놨다. 예상보다 2~3년 빨리, 모아둔 돈도 마음의 준비도 안되있었는데 '이 사람이면 결혼을 해도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갑자기 결혼하게 된 알 수 없는 흐름.


우리는 공백(헤어졌던 시간)도 거리(물리적으로 떨어진)도 긴 사이. 그러니 앞으로 더 잘 살 거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지만 둘이 하면 더. 결혼을 결심한 이후로 그냥 그런 예감이 든다. 왠지 결혼하고 더 잘 살 것 같다는 생각 아니 확신이. 서로가 가진 좋은 기운과 역량을 모아 시너지를 발휘할 거라는. 오늘의 이야기는 또 다른 가족이 생겨서 좋다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결론은 너랑 함께할 앞으로의 날들이 더 기대된다는 것으로 마치네? 아무튼 잘 살아가야지.







재밌게 나이 들어가자 우리


나는 특히 더 :P




bgm. 그때 우린 - 하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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