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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Aug 11. 2020

결혼이란 걸 하다니

부제 : 결코 가볍지 않은 신혼생활


한 달 사이

믿기지 않지만 결혼이란 걸 했고,

마치 오지탐험 같은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본래 엄마와 새로 생긴 엄마(시어머니)

두 분의 생신을 맞이했고,

평생 철들지 않고 살거라 자부했던 내가

어느샌가 앞으로의 살아갈 방향과 집과 돈에 대한

고민을 동반자와 함께 나누며

폭우 아님 폭염으로 여름을 나고 있다.

밀린 그간의 이야기.






결혼 : 결혼이라는 걸, 드디어

 3개월 연기되고 도합 7개월 간 준비하면서

코로나므스키 이놈으로

전전긍긍하며 폭풍 속을 보냈는데,

초여름날의 그 결혼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뭐 내 인생에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고 스포트라이트 받는 일 처음이자 마지막인 건 당연하고

또 하나에서 열까지 내 손 닿지 않은 곳 없이 기획했던 행사(거즌 셀프웨딩한 느낌... 남편 친구인 사회자가 8년 사회 경력 동안 이렇게 신부가 결혼식에 이렇게 공들이는 거 거의 처음이라 했다)인 만큼...

아쉬운 것도, 이보다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

1도 없다. 그냥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결혼식.


주례없는 결혼식이라 혼인서약서는 우리가 읽었다.
직접 만들었던 부모님 감사영상, 좋아하는 순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았고,

생각보다 구남친은 축가를 잘 불렀으며,

내 첫 조카는 화동으로 감동을 주었고,

어머니는 편지 낭독으로 눈물 섞인 웃음을 주셨고,

능력 있는 지인들 덕에 사회도, 영상도 다 멋지게 해냈다.

감사할 사람이 너무 많으니 살면서 차차 갚아 나가기로.





신혼여행 : 한라에서 설악까지

대학시절 내일로여행만 3번,

취업하고도 친구와 강원도 내일로여행,

훌쩍 혼자서 한라산으로,

또 훌쩍 친오빠와 울릉도로,

잼머 일 하면서는 출장으로

전국 방방곡곡 무수하게 다녔는데

반면에 외국으로 나간 건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그래서 신혼여행만큼은 국내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노무 코로나스키는 우리의 결혼식 풍경도,

신혼여행지도, 몽땅 다 바꾸어놨다.

예정되었던 아이슬란드행 비행기표는

눈물을 머금고 취소하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종주할지

그냥 캠핑카로 전국 유랑을 할지

백두대간 국립공원 종주할지

여러 의견으로 분분하다가 결국 우리가 선택한 건

<한라에서 백두..아니 설악까지>

누가 산에서 만난 애들 아니랄까 봐ㅋㅋㅋㅋㅋ

결혼식을 마친 후 곧장 제주도로 가서

한라산을 올랐고

며칠 섬에서의 시간을 마친 후 육지로 나와

설악산을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최북단 가까이 철원서

한탄강 트레킹을 한 게 하이라이트.

신행기간 중에 비 온 날이 2/3, 비 오지 않은 날이 1/3이었는데


신행 내내 거의 교복이었던 우비ㅋㅋㅋㅋㅋ


한라산과 설악산 오른 두 날은 기가 막히게도

날이 개어주었고, 우리 눈앞엔 파란 하늘이 보였다.

지금 생각해도 짜릿해...

지난 우리 2주간의 신혼여행은

한라산과 설악산, 우중 차박 정도로 함축할 수 있다.

비록 그토록 바라던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빙하 여행은 아니지만

비를 맞으며 고생했던 이 신혼여행은 분명

앞으로 우리 두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자양분이 될 거라 믿는다.


한라산 해발 1,700m
설악산 해발 1,708m
두근두근, 백록담 마주한 순간에
ᴗ͈ˬᴗ͈ෆ





집안행사 : 두 엄마의 생신


어쩌다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엄마의 생신과

어머니의 생신이 일주일 차이로 잇따라 있었다.

그동안 키워주신 은혜, 결혼 준비하는데 애써주신 고마움 여러 가지로 명품가방을 선물해드렸다.

지출은 컸지만... 앞으로 갚아나가야 할

카드값이 있지만 후회는 없다.

예쁘게 잘 쓰세용


명품관에 줄을 서다니...우리가




삶 고민 :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가계부 안 쓴 지가 거의 10년인데 다시 쓰게 되었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건 쉬운 일이었다.

둘이 되니 예전처럼 욕심 없이 벌고 생각 없이 쓰는 건 곤란하다.

내 집 마련, 차, 자식 교육 문제...

살다 보니 결혼이란 걸 해서

나는 안 할 줄 알았던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마침 가게가 있는 건물이

수도세 폭탄 맞으며 집주인에게 시달리면서

이 동네에, 대구에 마음이 완전히 떴고

콩맨은 지내던 영덕 관사가 재계약이 안돼

나와야 하게 생겼다.

처음엔 일주일 만에 방 빼라하더니

다행히 8월까진 여유가 생겼다.

한순간 집도 절도 없는 애들 될 뻔......

이런 상황들을 맞이하면서 진지하게 앞으로

우리가 터전을 맞이할 방식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역변의 2020-2021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어디서든 예쁘게 잘 살거라는 앞사너 이웃.






그외 : 너무 많지만 간추려서

•애플워치가 생겼다.

•친정집 지하실이 침수되었다.

•동업 제안을 또 받았고 또 거절했다.


다사다난 여름이다~




얼른 스트랩 바꿀래 (핑크성애자 아님)


119 대원분들 출동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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