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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Sep 13. 2020

그 무렵 우리에겐 꿈이 있었다.

2.5일간 영덕에서의 대화들



부부가 되어간다는 것은 정원을 가꾸는 일.


그, "2년이면 영덕에 오래 있었지."

나, "내 일 3년 했으니 오래 했다."

서로 한 마디씩 툭툭하고서 입을 모았다.


"우리 다른 듯 비슷하다 참 많이."

일은 꾸준히 하더라도 환경이 바뀌어야 되는 남자와

환경은 그대로더라도 일이 바뀌어야 되는 여자.

그는 영덕에 있은지 2년,

나는 내 브랜드를 운영해온지 어언 3년.

서로가 혼자 지낼 때와 다르게

이젠 부부라는 이름으로 두사람이 전우가 되었으니.

그날 밤 우린 맥주를 나누어 마시며

유튜브로 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하며

농도 짙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언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고
꽃을 기다리는,
정원을 가꾸는 마음과도 같다.

-건축탐구 집-






"무슨 남자가 이렇게..."


식당에서 남편이랑 밥 먹는데 주방에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테이블로 다가오시더니 말을 거셨다.

"무슨 남자가 이렇게..."

뒤에 이어질 말은 '이쁘장하게' 이거나 '곱상하게' 생겼나 일 줄 알았다. 그런데 반전.

"무슨 남자가 이렇게 복스럽게 생겼댜? 아주 그냥 연예인 같네. 요즘 tv에 나오는 아들 다 이렇게 생겼어 참말로." 하시며 한참을 뜯어보셨다. 트롯하는 젊은이 같기도 하다 했다가, 연기하는 배우 같다고 하신 것 같기도. 반찬도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게장에 양파지를 가득가득 다시 갖다 주셨다. 계산하고 나갈 때까지도 사장님은 남편을 연예인을 보는 팬 마냥 사랑의 눈빛을 쏘아대셨다. 남편 사장님은 탐탁지 않아 보이는, 질투가 섞인 시선이셨다. 다음에 또가면 사인 요청하실 것만 같은 느낌이 팍팍. 아주 맛있는 굴국밥집이었는데 다시 갈 수 있겠느냐고. 아무튼 복덩이 남편이여 아주 그냥.


그의 새로운 호(상대 박상언)가 된 상대산.






감성도 옮나요


영덕해파랑길, 블루로드 B~C코스 걷던 중.

우리 키보다 약간 높게 드리워진 소나무 숲에

"소나무가 터널을 이뤘네." 감탄했더니,

 "나는 그동안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역시 김아라." 라 한다.

또 출발할 때보다 점점 더 선명하고 파란 모습을 보여주는 동해바다에,

"하늘빛이 바다에 물들고 있어" 감탄했더니

"크 시적 표현. 브런치 감성이다."


예전엔 나의 이 감수성지수 높음이 버거울 때도 있다던 그였는데. 이젠 쿵짝이 잘맞고 때론 나보다 더 표현력이 좋을 때도 있다. 감성도 전이가 되나요.


그 소나무터널과 물감 뿌려놓은 바다


예를 들면 그의 인스타 산행 일기 속 표현!





딱 한 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결혼식 입장 전으로.


7년 만에 영화 어바웃타임을 간밤에 다시 함께 보고

오늘 트레킹을 하던 중 그에게 질문을 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갈래?"

잠시 고민하더니 이어지는 그의 대답.

"결혼식날 입장하기 전으로."

".....??!!!!"

"입장 제대로 하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꼭 천천히 입장해. 그래야 사진 잘 나온대."

신신당부했던 내 말에 입력 오류가 난 그는

결혼식 날 신랑입장하는데

천천히, 그러나 당당히가 아닌

마치 슬로우모션 걸린 로봇처럼 입장해버렸다 :')

본의 아니게 입장할 때 하객들에게 큰 웃음 선사해준 그(동영상을 첨부하고 싶지만 그가 원치않아 올리지 못함이 아쉽다.)



최애장면 best3 중 하나.





덜 아쉽고 덜 애틋하고.


그러니까 결혼하고

그가 있는 영덕에 처음 가는 것이었다.

주말마다 신혼살림이 있는 대구에 그가 오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었고. 그러다 그는 본의 아니게

영덕집을 이사하게 되었고. 주말 당직근무도 서게 된터라 겸사겸사 영덕행을 했다. 2시간 여 버스를 타고 가던 밤. 그리고 2.5일을 보내고 대구로 돌아오던 기차 안. (돌아올 때는 그가 포항까지 데려다 주어 편하게 ktx 타고 올 수 있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연애할 때는 영덕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항상 아쉽고 헤어짐이 애틋했다면, 결혼한 지금은 덜 아쉽고 덜 애틋하다. 마음이 덜해진 게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다가 일주일 후면 또다시 만날 거라는 안정감과 확신이 바탕이 되서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가 대구에 오는 것보다 내가 영덕으로 가는 것이 몸은 피곤하더라도 마음은 훨씬 낫다는 것. 나야 대중교통 이용해서 오가면 되지만 그는 항상 차를 몰고 영덕-대구-영덕 왕복 5시간 길을 온다. 그것도 금요일 밤 퇴근시간과 월요일 새벽 출근시간에. 얼마나 고단하겠는가. 위험도 할 거고 피곤하기도 할 테니 늘 걱정이고 안타깝다.


그러니 우리는 어서 함양에 가야 해. 나는 더 이상 스크루지 주인할아버지에게 달달 볶이며 월세와 관리비를 내는 일 없게. 그리고 그는 불안정하고 불편한 다인실 관사 생활을 그만 하도록. 기승전하미앙이다.


would you go come with me?





bgm. Love like that - La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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