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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Feb 25. 2020

대구 자영업자, 눈물이 차오르는 이유

호르몬의 노예 주간은 지났소이다만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용무시 연락 주세요.'


라는 쪽지만 작업실 문에 써붙인 채

집콕한 지 여러 날,

어제는 감사하게도 5일간의 공백을 깨고

두 분이 주문을 주셨다.

그런데 만들어둔 잼과 청 가운데 유일하게 소진된

스트로베리밀크잼과 레몬청을 각각 말씀하셨다.

일시 소진을 말씀드리며

다른 메뉴로 제안도 해보았지만

두 분 다 괜찮으니 새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단다.

허허


그래서 오늘 아침 출근길에 자주 가는

농산물 가게에 들러 과일을 샀다.

지나는데 동네의 식당과 공방들

열에 아홉은 어둡게 문이 닫혀 있었다.


마스크에 유일하게 가려지지 않은 눈을 통해

농산물집 사장님을 쳐다봤는데 동병상련의 눈..

돌아와서, 같은 건물 3층에 사는 아저씨를 만나

안부를 물었다.

"요즘 서문시장은 어때요? 가게 나가세요?"

"폐쇄돼서 아예 못 가고 있죠 허허~"


뽀독뽀독 베이킹파우더로 세척하고

송송송 썰어 손질하기 시작했다.

애플시나몬청부터 시작해서 딸기잼까지.

마스크를 코까지 덮은 채 작업하다 보니

좋아하는 싱그러운 과일향을 전혀 맡을 수가 없다.

원래 비 오는 날 작업실에서 생산 작업하는,

오롯이 혼자인 시간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일하다 말고 자꾸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호르몬의 노예 시기도 아닌데. 생리도 끝났는데.


연락 중이던 친구에게 왜 이런지 모르겠다 하니

속에 한 번 풀어내야 할 것이 있는 게 아니냐고 한다. 마음속에 답답함이나 불만이 한도 이상으로 쌓여 조금의 슬픔만 덧대져도 또르륵 하는 걸 거라며.


아마 이건

코로나가 가장 많이 발생한 대구의 자영업자로서,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4월의 예비신부로서,

그리고 가족 연인 친구들의 건강이 걱정되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엉켜서 생긴 문제 같다.


시시각각 늘어나는 확진자 소식으로도 가슴 아픈데

누군가에게는 오랜 시간 공들이고 준비한 결혼식이, 사람들에게 축복받고 싶던 그날이 민폐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연기나 취소를 하고 싶어도 여러 문제가 얽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예비신랑신부들을 보며 동병상련을 느끼고,

중국에 수출된 마스크가 역으로 우리나라에 가격을 15배나 올려 되팔리고 그들에겐 300만 장 보낸 것이 대구시민들에게는 3시간을 줄 서서 기다려도 겨우 30장 살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 서글프고,

봉감독이 끌어올린 대구와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신천지로 인해 한순간 추락해버린 게 속상하고 무엇보다 우리는 중국이라는 한 나라를 차단하지 못했는데 우리나라는 지금 전 세계 수십개국에서 입국 금지당한 데다(이건 당연한 조치라고 봄) 되려 발원지 중국이 한국인 입국자를 격리하고 있다는 게 괘씸하고 수치스럽고,

의료진들은 낮밤으로 치료와 방역에 고생하고 있는데 걸렸을지 모르는 암적인 존재들이 아직도 연락을 피하고 어딘가에서 활보를 하고 있는 사실이 화가 치밀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소상공인들.. 다음 달 월세 걱정을 하고 있는 나 같은 처지의 자영업자들의 걱정과 한숨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이런 것들이 얽혀서 그냥 별거 아닌 것에도

자꾸만 울컥한다.

별일 없는 사소한 일상이 그리워서.

내일은 레몬청과 우유잼 만들어야 하는 날.

가능한 생산은 짧게, 혼자 작업실에 있지 말고

가족들이랑 집에 있어야지.






#마음의문만은닫지말아요





웃을 수만은 없는 이 광경


확진자가 다녀가 휴업한 월성동 가게 앞에 붙은 포스트잇에 울컥,


동료이자 이웃의 마지막 말에 또 울컥,


자주 들어가는 웨딩커뮤니티 글 읽다 다시 한번 울컥,


재난문자 이젠 그만 받고싶어요


언제까지..
힘내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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