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함께 한 일하는 토요일.
하루는 일하고
하루는 드라이브하기로 한
그가 오는 주말이 찾아왔다.
드라이브행으로 정해진 곳은 '옥천.'
충청북도 옥천은 바로 그가 제안했다.
호수가 있는 이곳으로 가자고. 처음에 얘길 들었을 때, 옥천? 고속도로 위의 그 옥천휴게소? 라고 반문했다. 휴게소 말고는 정보도 없고 그려지는 이미지도 전혀 없었는데 문득 그가 보내온 블로그 링크,
옥천 대청호 향수호수길에 매료되어
다른 후보지로 오른 진안(용담호)을 제치고
단숨에 결정했다. 그렇담 토요일vs일요일
토요일은 비가 온다 하고, 또 마침 매장 방문하신다는 분도 계셔서 일하기로 결정한 날. 느지막이 일어나 계란물 듬뿍 입힌 프렌치토스트와 감자호밀빵,
그리고 직접 만든(아 물론 기계가) 플레인요거트에
역시 직접 담근 키위청을 곁들였다.
아침을 먹고 그는 내가 과제로 던져두었던 산림청 헬리콥터 모형을 조립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옆에서 뉴스를 보거나 고객분 답장을 기다리며 한적한 토요일 오전을 보냈다.
친구가 스티로폼 상자를 모아두었데서, 내일모레 있을 가래떡데이에 현미가래떡 뽑을 현미쌀을 사러가는 김에 친구 집에 들렀다. 제품 택배 배송 시에 사용하는 것으로, 환경을 생각해서 대량으로 구입하던 것을 언제부턴가 그만두고 지인이나 손님이 가져다주시거나 동네 길가에 깨끗하게 내어진 것을 재사용을 하고 있다. 어젯밤 산책길에도 스티로폼 상자 많이 주웠는데^^ 우리는 일명 프로줍줍러.
오랜만에 뵙는 쌀집 사장님. 이 시국에 사람들이 쌀 사러는 올 거라고 기대하고 안 쉬고 쭉 열어오셨다는데 이상하게 발길이 뚝 끊겼단다. 왜겠어요 요즘 사람들 온라인 식품 배송시키는 게 대부분이라 그래요 사장님ㅠ_ㅠ 괜히 또 쓸데없이 짠한 마음 발동해서 오버해서 필요 이상으로 샀다. 현미 15되 약 30킬로나. 엄마가 그랬잖아 내가 제일 짠하다고(눈물) 그리고 친구 집으로. 추억추억한 옛 동네. 애정하던 이곳. 아주 오랜만에 모여 있는 내 모교 두 곳을 스쳤다. 그러곤 스티로폼상자 두어개를 들고 아파트 정문에 나와있는 친구와 접선했다. 생존 안부를 짧게 나누다 나는 친구에게 얼려둔 디저트를 쥐어주고 사라졌다.
늦은 점심을 먹고 홈플러스에서 장도 본 후 작업실로 왔다. 그는 한숨 자고 나는 손님을 기다리며 다음 주에 택배 배송 나갈 것들 미리 포장작업을 싹 마쳤다. 그래도 오지 않으시는 ㅎㅈ님... 언제 오시냐는 질문에도 답이 없는 그대여......... 연락오면 그때 다시 작업실 나와야지 하고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우리는 오전에 주문해둔 수비드스테이크를 찾으러 갔는데 어라, 굳게 닫혀 있다. 전화해보니 우리가 안 와서 퇴근했단다(빡침) 아니 그러면 오전에 주문할 때 "몇 시까지 찾으러오세요" 안내를 해줬던가 "언제 방문 예정이세요?" 물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여기서 그녀와 나의 차이가 느껴졌다. 나는 단 한분의 손님 을 위해 하루를 꼬박 기다렸는데 그녀는 오늘 장사할 치 다했으니 끝 이거였던 거다. 맞다. 그래서 몇 해전 꽤 가까워질 뻔했던 그녀와 나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던 거지.
가족들과 함께 하려던 저녁메뉴가 수포로 돌아가고, 우리는 그냥 우리끼리 어제저녁으로 먹고 남은 카레를 먹기로 했다. 그는 떡볶이를, 나는 우동카레를 만들어. 지난주에 망쳐 냉동실에 얼려둔 감자 피자를 다시 에어프라이기로 회생해서 같이 먹었다.
먹고 설거지하고 치우고 씻고나니 밤 열시.
내일 새벽에 일어나 옥천을 가려면 지금 자야 했지만, 이대로 자기엔 아쉬운 토요일 밤이 아닌가.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기로 했다. 지난주에 보다가 꺼버린 백두산이랑 다르게 몰입도 짱. 연출 최고. 배우들 연기는 미쳤다. 박통 역할을 맡은 이성민은 인중에 분장을 하고 나왔던데 싱크로율 대단했다. 유일한 여배우였던 김소진은 처음 봤는데 신스틸을 넘어 독보적 존재감이었다. 체중을 100킬로 쪄서 나왔다는 곽실장 이희준이나 박부장 곽도언 모두 말해 뭐하나. 모든 배우들이 다 완벽했다. 그리고 한국판 조커가 나온다면 무조건 이병헌이 해야 된다는 생각. 그는 정말 한국에서 배우를 해줘서 고마운 사람ㅜㅜ (사실 스크린 밖의 인간 이병헌은 싫다.) 내가 꼽는 극 중 명대사는 두 개. 하나는 이 글의 제목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 "사람은 인격이라는 게 있고 국가는 국격이라는 게 있어."
어쨌든, 그과 함께한 일하는 토요일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