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언약식
#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나홀로) 전입신고를 하고서 가족들이랑 담당투표소가 달라진 나와, 영덕군민인 그가 함께 사전투표를 하러 동네 행정복지센터로 향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50센치에 육박하는 투표용지는 실물로 보니 신기했다 참말. 같이 손잡고 투표를 하니 마치 부부가 된 것만 같던 아침.
# 그의 일에 동행
원래 나는 기장에 마켓 행사, 그는 주말근무로 각자 일할 예정이었던 오늘. 그러나 필요한 경북에 비가 안 오고 정작 부산에만 내려줘서 나는 행사가 취소되었고, 덕분에 일 겸 드라이브 겸 영천으로 그와 동행하게 되었다. 삐용삐용 사이렌 울리면서 지나가는 산불방제차들을 만나서 따라갔더니 산불을 만남. 막 진압이 된 후라 다행이었다. 이렇게 흔하게 일어납니다 산불이. 포은 정몽주 생가와, 보현산 천수누리길을 걸어 천문대, 보현산 시루봉에 도달하는 것을 끝으로 (저녁 6시) 일은 마무리.
# 우리만의 언약식
2020년 4월 11일,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결혼식을 올렸을 날. 그의 근무가 아니었으면 양가 부모님들과 함께 약혼식을 했을 오늘. 모두 실패로 돌아가 나는 울적했고. 그런데 웬일인지 그가 쿵짝을 맞춰주었다. "스테이크 구워 와인이랑 먹을까." 하면서. 영천에서 돌아가는 길에 스테이크를 샀고 엄마오빠가 찾아놔 준 비건케이크를 가지고 우리의 홈스윗홈으로. 그가 쉪을 나는 보조를 하면서 요리놀이를 했다. 그가 스테이크를 구우면 나는 옆에서 샐러드와 케이크 데코를 하는 식. 완성된 콩맨의 인생 첫 스테이크는 그야말로 "체고~!". 내가 좋아하는 미디움레어로 딱. 안전빵으로 다른 하나는 에어프라이어로 구웠는데 그가 직접 구워준 게 훨씬 더 맛있었다.
# 아주 보통의 일요일
오늘도 이어진 비 예보에 마켓 취소 2일 차. 또 그의 근무에 동행 예정이었다. 아침을 먹는데 메시지가 왔다.
'오늘은 마음껏 주말을 보내세요.'
주말 근무 안 해도 된다는 말. 옹예! 황금 같은 일요일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안 본 지 오조수억만년인 전시회를 가장 즐기고 싶지만 (전시 앓이) 코로나 이후 거의 모든 미술관이 문을 닫았다. 등산 반 트레킹 반을 하자니 비가 와서 무리다. 아이쇼핑을 하러 아울렛을 가느냐 vs 자연을 거닐 것이냐에서 결정하지 못한 채 일단 나섰다. 어제 우리끼리 언약식을 함으로써 맛보시지 못한 케이크를 전하러 엄마아빠가 계신 집으로 들렀다가, 그리고 우린 가창으로. 신거역 폐역을 가고 싶어 가창을 지나 청도까지 고고. 비 오는 촉촉한 용천사에서 국화빵을 먹고, 내가 잘못 찾아본 맛집을 가기 위해 하마터면 밀양까지 갈 뻔하다가(혼 마이 남) 그가 알아채서 '국수사랑'이라는 곳의 들깨칼국수와 비빔국수로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 신거역은 역시 코로나로 안이 모두 굳게 닫혀 있어서 밖에서만 돌아봐야 했다. 그렇지만 마침 비가 그치고 해가 비춰서 감나무 가득한 아기자기한 마을도 한 바퀴 돌아봤다. 다 돌아보고 나오니 거짓말처럼 다시 하늘이 흐려지고 비가 쏟아지던. 이제 대구로 돌아가자. 돌아가는 길 그가 해 먹자는 백종원표 시금치무침과 같이 먹을 앞다리살을 1kg 샀다. 빠질 수 없는 청도산 곡주도 함께. 시금치 송송 잘게 썰어 마늘 4개, 땡초 4개 다져 넣은 뒤 후추와 고춧가루, 참기름, 맛소금을 넣어 잘 섞어주면 시금치무침 완성. 지방이 적은 앞다리살에 넣어 말아먹으니 김치도, 다른 야채도 전혀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보통의 일요일은 지나갔다.
bgm. 화려하지 않은 고백 - 이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