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연휴를 보내는 방법 part 1.
지난 한 달 동안
산불기동단속과 산불 진압에 지친 그,
갑작스러운 원정 행사에 주말마다 참여했던 나,
그런 우리가 5월 황금연휴를 보낸 이야기.
그랬다. 원래라면 기장의 행사에 참여했을, 그게
아니면 가정의 달 선물세트로 일에 파묻혀있었을 시기지만 그를 따라 산을 올랐고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러 갔다.
part 1. 충주로의 일박이일
어쩌다 충주로 갔나
행선지를 정하게 된 과정이 잘 기억 안 난다. 강릉갈까 제천갈까 어디갈까 몇 군데에서 고민했던 것 같은데. 전날에 행사를 마치고 밤 열한 시쯤 대구 도착해서 작업실 뒷정리 호다닥 한 후에 집에 와 기절했던 것 밖에. 느지막이 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났고. 기장에서 사 온 치아바타와 사고 받은 쇼콜라식빵, 거기에 내가 만든 쌀잼을 곁들여 아침을 먹고 그러고서 제천으로 향했다. 청풍호 주변을 걷고 청풍랜드에 번지점프를 하러. 그러다 점심을 먹고 가려고 잠깐 들린 충주.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 만나고 가자고 농담하다가 그렇게 그곳에서 일박이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유명한 메밀마당은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점심 먹으러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고, 키오스크를 통해 대기번호표를 받았다. 내 앞 웨이팅 39팀에 예상 대기시간 60분......? 우리의 배고픔은 딱 60분이 아닌 6분만 기다려줄 수 있는 상황이라 근처 다른 곳을 찾았다. 다행히 똑같은 메뉴의 맛있어 보이는 근처 다른 곳에 들어서서 10분 정도 웨이팅 후에 먹게 된 것은 이날 저녁이 돼서도, 며칠이 지나도 "막국수에 메밀치킨 또 막고 싶다~~~." 노래를 부르게 했다.
행복한 포만감을 느끼며 나왔을 때, 그가 사랑해마지않는 중앙탑이 바로 옆에 있었다. 안 보고 갈 수가 없지. 근데 식당도 그렇고 중앙탑공원도 그렇고 왜 이렇게 사람 많나 했더니 얼마 전 종영한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였다고. 현빈이랑 손예진이 다녀갔나 보다.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쉬는 사람들 보고 "그나저나 우린 오늘 어디서 자지?" "글쌔." "안되면 차박하지 뭐~" 하며 즉흥 도발 여행 속 대화를 이어갔다.
제천 가려던 계획을 바꿔 충주의 수주팔봉을 오르고 다음날 산행을 하기로 했다. 사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글램핑장을 지나 하천 옆에서 캠핑족들을 부러워하며 우리는 차를 세워두고 수주팔봉을 올랐다. 굽이치는 달천과 출렁다리가 멋진 곳.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달천은 마치 예천의 회룡포를 닮아있었다.
수주팔봉의 유래
수주팔봉은 서쪽 대소원면 문주리 팔봉 마을에서 달천 건너 동쪽 산을 바라볼 때, 정상에서 강기슭까지 여덟 개의 봉우리가 떠오른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팔봉 마을은 안동의 하회나 예전 회룡포처럼 곡류천으로 물길이 아름답고, 마을 안쪽의 팔봉 서원은 4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달천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괴산군 지역을 흐를 때는 청천 괴강으로 불리고 충주로 흘러오면서 달천이라 하였다.
물맛이 달다고 하여 '달래' 또는 '감천(甘川)'이라 하였고 수달이 많아 '달강(獺江)이라고도 불렸다.
그리고 시작된 두룽산 산행. 나는 거의 두 달 만에 하는 산행에, 잇따른 행사 강행군에 컨디션이 안 좋아 오르기 힘든 줄 알았다. 그런데 정상을 딛고 내려가는 길에 깨달았다. 아 상당한 오르막이었구나. 힘든 게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하고 :') 그리고 별명이 생겼다. '하산왕'. 오르막길엔 그리 더디게 가던 내가
내리막길에선 막 날아간다고ㅋㅋㅋㅋㅋ 오르막길 10분 오를래 아님 평지길 100분 걸을래 묻는다면 무조건 후자를 택할 정도로 오르막에 약하고 자신이 없다. 어릴 때는 계단 몇 걸음에도 어지러워하던 심한 빈혈에 그랬던 거지만 지금은 아마 왕궁오궁(왕궁뎅이, 오리궁둥이의 줄임말)인 나인지라 중력을 거스름에 힘들어하는 것일 거라고 추측해 본다.
힘들었던 과정에 비해 보상(뷰) 없던 두룽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수주팔봉 전망대에서 올여름에 쓰담쓰담 멤버들과 캠핑을 하러 오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숙소를 서칭 후 그가 이끄는 대로 수안보 근처에 있는 호텔로 갔다. 방을 예약하고 저녁거리를 고민하던 우리가 나눈 대화.
나 - 저녁 뭐 먹을까?
그 - 글쌔
나 - 배가 미친 듯 고프진 않아.
그 - 막걸리 먹자
나 - 안주는?
그 - 맛있는 막걸리라면 안주로 배부르게 할 수 없지
나 - 내 남편 할 자격 충분하군
그 - 그래서 결혼하는 거 아냐?
마트를 돌며 충주의 막걸리를 종류별로 샀다. '그 지역에 가면 그 지역주를 마셔봐야만 한다.'는 것이 자칭 타칭 곡주커플 우리의 지론.
그리고 이틀 째, 지난밤 먹지 못한 충주의 유명한 꿩이 들어간 꿩만두국과 올갱이해장국을 먹었다. 그러고서 우연히 들린 자전거 카페에서 운명처럼 지난밤 구상하던 우리의 신혼여행을 확정 지었다. 농담처럼 하루를 10년처럼 가정, 그래서 마지막 종착지에서는 황혼식 아닌 여든식(?)을 올리자고도, 내 뒷통수엔 면사포를 너의 헬멧엔 보타이를 달자고도 하며. 꼭 의미 있는 신혼여행을 보내게 되기를.
이틀날 일정은 가은산 산행.
더 하드하게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가 나를 고려해 그리 힘들지 않은 등산 코스로 짰다. 충주호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후 옥순봉 전망대를 올랐다. 그 시작점에서부터 우린 어쩌면 오늘의 산행이 전망 좋은 최고의 뷰를 선사해줄 것이라 직감했다. (어제의 두룽산은 잊어라! -가은산曰)
정말 그랬다. 산행을 시작한 지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가슴이 뻥 뚫리는 청풍호 뷰가 나왔고, 무엇보다 마침 나무들 사이로 살짝 내리는 비는 천연미스트 역할을 해주어 더위나 햇빛으로부터 막아주었다. 우중산행은 처음이었던 내게 엄청 매력으로 다가온 이날의 날씨.
자꾸만 걸음을 멈추어 경치를 담고 또 담은 탓에 두 시간 정도 걸려 정상에 마침내 도착했다. 비석에서 우리는 공중부양 놀이도 하고 한참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내려오는 길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던 올라왔던 코스가 아닌
다른 코스를 찾아 하산하자는 그의 선택은
다름 아닌 '약 주고 병 주고' 코스였다.
엄청 아름답고 황홀한 경치를 보여주는 대신
그 결과는 "이쪽으로 내려가는 거 맞아?"라는 질문을 계속 던질 만큼 길이 아주 험난했을 정도니.
내려오는 길은 2시간 반이나 걸렸다. 마지막에는 정말 지금껏 본적 없는 엄청난 경사의 계단이 이어졌는데 그전에도 여러 번 나와야 했던 구간들이었음에도, 계단이나 밧줄 한번 없다가 다 내려올 때쯤 이제야 설치해놨음에 의아했다. 그래도 메마른 사막 위 오아시스 같았던 고마운 계단.
등산을 모두 마쳤다. 슈퍼에서 사 먹은 알로에 1.5리터 맛은 잊을 수 없다. "체고~" 원래 계획은 상천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차가 세워져 있는 처음의 충주호전망대까지 가는 거였지만 버스는 한 시간 반 후에야 온다는 동네아저씨 얘기에 걸어가기로. 하...
그래.. 평지길인데 까짓 거 두 시간 더 걸어가지 머
그렇게 어쩌다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5코스 상천마을~옥순대교를 걷는 4.1킬로 여정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완만한 평지길이라 한 시간 여만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등산 9km+트레킹 4km = 도합 13km, 2만 1천보 여정은 모두 끝~
이제 홈스윗홈 대구로 가야 할 시간- 근처 어디서 저녁먹을까 하다가 단양에 들러 구경시장에서 순대국밥을 먹었다. 먹지 못한 흑마늘닭강정은 다음에 먹기로. 대신 흑마늘 떡갈비와 단양 막걸리 2종을 사서 단양과는 잠깐이라서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대구로.
마침 새로 발매된 성시경의 신곡을 들으면서 : ) 어쩌다 충주로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또 어쩌다 청풍호를 끼고 충주-제천-단양 지역을 넘나들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행복했던 이틀. 그가 종종 내뱉는 말이지만 "우리 너무 잘 맞아서 큰일이야."라는 문장이 새삼 콕 박힌다.
bgm.
뭐가 그리 좋은지 몰라 - 원모어찬스
And we go - 성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