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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May 07. 2020

꿈꾸던 하동, 지리산 둘레길 여정

우리가 연휴를 보내는 방법 part 2.


예정대로라면 전전날 충주에서 나만 돌아오고

그는 홀로 시간을 더 보내며 등산이나 트레킹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구까지 혼자 버스타고 가게 할 수 없다하여 차로 같이 돌아온 우리.

그러나 5월 황금연휴는 연례행사와도 같은

그의 힐링 여행 시즌이 아닌가.

그래서 기꺼이 보내주기로 했는데, 간다는 곳이

하필 몇년 째 내가 봄마다 노래를 부르는 하동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올해는 참 안바쁘니.

그렇다면 같이 가는 수밖에^^

작년 그는 지리산 둘레길을 혼자서 걸었다.

그리고 올해는 그의 옆에서 나도 함께 걸었다.




part 2. 꿈꾸던 하동으로


지리산둘레길을 둘이서 걷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하동으로 출발했다.

다섯시간도 채 못잔터라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참아가다 도착 30분을 남겨놓고 결국 나는 기절하고야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잠오는 곳은 그의 옆자리, 조수석이다. (이건 다 니가 운전을 너무 부드럽게 잘해서 그렇다며z.z)

7시 반, 8시 50분에 버스를 탈거라 그 전에 꼭 아침식사를 해야만 한다. 마침 그가 찾아봤던 맛집 문이 열려있었다. 섬진강이 바라보이는 원조할매재첩식당.  큰 자막으로 뉴스를 보며 공기밥을 푸고 계시던 할머니가 내어주신 정식. 쌉싸름하고 깊은 재첩국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재첩(다슬기)이 정말 어마무시하게 들었다.


편의점에 들러 커피와 간식거리를 좀 사고 하동버스터미널에 갔다. 차를 세워두고 들어서는데 막아선다. "소독하고 들어오세요." 바로 방문객 무균소독실. 전화부스같은 곳에 들어가서 15초간 살균소독을 당하는(?) 기분이 묘했다.


하동버스터미널
강제 소독 당했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달려가 도착한 삼화실. 복사꽃, 살구꽃, 배꽃 세 가지 꽃이 피는 마을이라 하여 삼화실로 부른다는 이곳은 총 7개의 마을로 이어져있고, 삼화실에서 대축마을로 이어지는 16.9km의 지리산둘레길 12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자연을 찾아 옛어른들이 호연지기를 키웠듯이 우리도 마음을 키워보자며 가장 먼저 버디재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지리산 둘레길 12코스 start-!
이미 완주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시작점


고개 하나를 넘으니 또 다른 마을을 만난다. 그가 작년의 둘레길 트레킹에서 산 하나를 넘을때마다 지역을 넘나드는 기분이 짜릿하다고 했는데 그 기분을 살짝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오늘은 지역이 바뀌는 코스는 아니지만. 한시간 정도 걸었을까, 무인가게 하나가 나왔다. 막걸리를 판다고 적혀있어 호기심에 들어간 그곳이 이번 여정의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 가장 좋았던 순간이 될 줄은. 그곳은 전시갤러리이기도, 마을사랑방이기도, 매점이기도, 공용 주방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된 냉장고 안에는 안성탕면과 비어있지만 김치통, 그리고 골드빛 패키지가 매력적인 하동막걸리가 들어있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은터라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뭐라도 먹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우리는 라면 한봉을 끓여 막걸리를 먹기로 했다.



이런 분위기였다.

양은냄비로 끓인 라면에, 막걸리 한잔은 정말 기가 막혔다. 좋아하는 몇가지 막걸리를 제치고 단박에 우리 인생막걸리가 된 '하동막걸리'. 아침 열시에 막걸리 두병이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대단해 정말- 새참사랑방에서의 기부금 포함 만원의 행복한 시간을 꽉꽉 채워 보내고 나왔다.



이제부터 남은 6/7 힘내서 걸어봅시다. 흐려서 시야가 좋지 않아 아쉬워하던 중 대신 흐리기 때문에 반영이 환상적인 적량저수지를 만났다. 제방을 따라 걷는데 아까 마신 막걸리의 취기가 올라 살짝 알딸딸했다. 기분 좋은 취함이다.



데칼코마니



한참 고개를 오르락 내리락 한 후에 원래 오르려고 했던 구재봉 등산 입구를 만났다. 그런데 오늘 시야가 너무 좋지 않아 그가 오르지 말자고 했다. 거북이 모양의 정상비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아쉬움과 함께 왕복 4km 구간이 줄었음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엔 날 좋은 날 꼭 올라야지. 그 후로도 몇 번의 고개를 넘었다. 갑자기 기온이 오르며 나른해지는 찰나 평상을 만나 쉬어가기로 한 우리. 동네과자점에서 산 햄버거빵과 함께 그는 대구에서부터 나 몰래 가져온 비밀의 음료를 의기양양해하며 꺼냈다.



햄버거빵, 쌀과 쑥 우유, 통크, 그리고 비밀의(?) 음료.
체고-
평상에서 잘 쉬었다 갑니다.


이제 3분의 2 가량 왔다. 지루한 아스팔트길 너머 저멀리 섬진강이 보였다. 빨리 저 곳에 닿고 싶어라-





대축마을에 거의 이르러 만난 천연기념물 하동 축지리 문암송. 문암송은 문암, 곧 문바위 위에 난 소나무로 문바위에 떨어진 소나무 씨앗 하나가 바위 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뻗어 뿌리를 내렸고, 수백년 풍상을 겪어 마침내 앞에서 보면 바위에 걸텨 앉은 모양의 기괴한 소나무로 자랐다. 나이는 600살로 추정된다고. 마치 라임오렌지나무처럼 동네 가까이 있으면 매일매일 찾아와 안부도 묻고, 아지트로 삼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1km를 걸어 마침내 우린 12코스의 종점, 대축마을에 도착했다. 만세!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되어주겠니



마지막 완주 인증샷을 찍고, 슈퍼 할머니가 말해주시는 "버스 곧 와" 라는 말을 믿고 기다리는데 그가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버스는 아직 한시간 후에나 온단다. 그러니 조금만(?) 더 걸어가서 자주 오는 버스정류장으로 가자는 그. 난 또 그렇게 그에게 낚여 1.7km를 더 걷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마주하고 싶던 부부송도 보고, 청보리밭도 만나고, 하동 배파이 맛도 보고, 오늘의 걸음 3만 보도 달성하고 이래저래 좋았다.


세 부자의 라이딩은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다.


하동 평사리 부부 소나무. 우리 같다.



깨어있은지 열두시간 넘게 지난 오후 다섯시. 거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정말 최종 도착지인 최참판댁에 당도했다. 곧 온 버스를 타고 하동시외버스터미널로 가 우리 차와 다시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진주에 가서 냉면과 흑돼지곰탕을 먹고 대구로~






속도를 늦추었다.
세상이 넓어졌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세상이 더 넓어졌다.
아예 서버렸다.
세상이 환해졌다.

-속도, 유자효




대견해 우리~



bgm.

달리기 - S.E.S

Walk on - Neil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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