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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Sep 09. 2020

향수를 쓰지 않는 여자.

향수는 싫지만 향기롭고 싶어라.



하는 수 없이 오늘도 잼머 일을 많이 했다.

내일쯤 가려던 원래의 계획을 바꿔

물리치료를 받으러 퇴근 무렵 병원으로 날아갔다.

손목보호대 차고 온 나를 힐끔보더니 의사샘은

소용없다고 그냥 무조건 손을 쓰지 말란다 또.

저 오늘 많이 썼는데요 허허

보호대 자꾸 차면 괜히 손목만 더 가늘어지고 약해질 수 있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셨다. 더 가늘어지지 않게(?) 적당히 차야겠다.

자리를 옮겨 침대에 누웠다.

물리치료사 분이 들어오셔서 손목에 기계를 꽂는데,


"아니 몸에서 어쩜 이렇게
기분 좋은 달콤한 향기가 나요?"

네에 저 파인애플잼 만들다 와서 그렇숩니다•︠‧̮•︡


나는 향수를 쓰지 않는다.

원래 인위적인 향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기도 했지만

과일을 다루고 식품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부터

고집하는 것 가운데 하나.

1. 네일을 하지 않는다.

2.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

3. 행사 전날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예전에 한 남자친구는 싸이의 노래 중 '향수를 쓰지 않아. 샴푸 냄새 하나. 양주를 먹지 않아. 감수성 그 하나로 넌 독특해' 가사가 딱 나라고 한 적도. 물론 좋아하는 향수 향은 분명히 있다. 누구나 끌로에 오드퍼퓸 edp, 조말론 라임바질앤만다린 등. 본품이나 미니어처로 소장만 할 뿐 몸에 직접 뿌리진 않는 아이들 : ) 아무튼. 평생 쏘인 적 없던 벌에 잼머 하면서부터 두 번이나 쏘인 일도 평소 과일향이 몸에 베어 있음이 영향이 아주 없진 않을 거라며.


내가 되고자 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여운이 남는 사람, 잔향이 좋은 사람.'은 결코 향수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잔향. 샴푸를 어떤 걸 어떻게 쓰는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는지. 이 모든 생활습관이 다 뒤엉켜진. 어찌 보면 그 사람 삶 전체의 반영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사람을 만나고 나서 내가 느끼는 요즘에 나의 잔향이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객관적인 진짜 향 말고 주관적인 여운.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버린 지 오래다. 적어도 만나는 사람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고 싶은데. 나의 잔향이 그다지 좋은 기운을 전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공감이 장점이고 태생이 긍정이었던 김아라 어디갔나.


오늘 구 이웃사장님도 얘기하셨지만 "사장님 좋은 말 많던 인스타 글 그리워요..." 다른 사람들에게 글과 문장을 전파하던 문장수집가 습관도 잃었다. 세상 물정 1도 애가 뭘 좀 알게 되고, 뭐든 두렵지 않고 덤비던 쪼무래기가 현실의 벽을 자꾸 부딪히게 되면서부터지 싶다. 에잇.


간만에 맥주 큰 캔 하나를 다 비워내 

알딸딸한 취기에 두서없이 쏟아내는 지금.

김동률이 어느 무대에선가 한 말이 생각난다.

"조금만 더 멋지게, 조금만 더 늙어서

우리 다시 만나요."








bgm. 잔향 - 김동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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