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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Sep 22. 2020

일요일의 쌀국수

동구밖여행


2만 보 걸음을 채우고

12km 거리를 걸었으며

1,090m 고도를 올랐고

1,300cal를 소모했던

비슬산 산행의 다음날,

아무것도 예정되어 있지 않은 일요일.


푹 자고 일어났고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한 그와 난

앞산에 새로 생긴 브런치카페로 장소를 정하고 집을 나섰다. 운전대를 잡은 그가 중얼거렸다.

"쌀국수 먹고시ㅍ..."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쌀국수!!!!!!? 먹자! 먹으러 갈래."

그래서 급으로 선회해서 간 퍼틴.

베트남을 가보진 않았지만 베트남 향기 물씬 나는 아웃테리어부터 단정한 사장님 내외분의 모습, 잇따라 나온 쌀국수와 꿔이, 반쎄오 맛에 우리는 앞으로 매달 아니 매주 일요일은 이곳에 오는 날로 하자 했다.

드디어 대구에서 원픽 쌀국수 맛집을 찾았다.


we lovin' here.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자연스레 생각나면 맛있는 커피. 'No coffee, No life'가 인생의 모토 중에 하나인 나인만큼 커피애호가다. 오래전 종종 가던 카페 커피맛을조금아는남자에 그를 데리고 갔다. 즐겨 먹던 샤케라또가 없어진 건 아쉽고. 이탈리아카푸치노와 클라우드더치커피, 그리고 치즈케이크 한 조각으로 (코로나므스키때문에 매장 내에서도 일회용 잔과 식기를 제공받는 것 빼곤, 섭취할 때 외엔 마스크를 꼭 껴야 함을 빼곤) 완벽한 티타임을 가졌다. 카페에 한시간씩이나 앉아있었단 걸 신기해하는 그와 그런 그가 신기한 나^^


일회용용기와 포크 싫어요...
빛무리? 빛일렁? 어떤 표현이 좋을까.


커맛남에서 그가 제안한 도동측백나무숲에 가기로 했다. 불로동에서 동쪽으로 2km쯤 더 가다 보니 오른쪽에 내를 낀 향산이 나타났다. 이 산 북쪽 비탈 낭떠러지를 온통 덮고 있는 울창한 숲이 바로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도동측백나무숲. 대구 10경 중 6경인 북벽향림이 바로 이 측백나무를 말하는 것이라고. 어떻게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이 측백나무숲이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1호로 선정된 까닭은 중국특산으로 알려져 있던 이 나무가 단양, 영양, 울진, 안동 등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지만 그중에서도 도동측백나무숲이 가장 남쪽에 위치한 자생지로서 식물 지리학적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록 문화재 보호를 위해 10년 간 숲 안으로의 입장이 불가한 건 아쉬웠다. 측백나무숲 옆의 관음사도 둘러보고 두 번째 동구여행 코스로 옻골마을로 향했다.



경주 최 씨 집성촌, 옻골마을. 그는 처음이고 나는 10년 만이다. 대학생 때 친한 친구와 단체버스를 타고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한 이곳. 10년 사이 관광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시 지원을 받아 정비는 잘 되어있었는데 섬세한 채워짐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청도에서 우연히 만난 새마을운동 발상지 신도리마을은 머무르고 싶고,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을 정도로 아기자기 정겨운 느낌을 받았었는데. 옻골마을은 여러모로 아쉬웠다. 실제 사는 주민들의 역할과 채움이 중요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돌아 나왔다.


비움과 채움의 경계에서.


마침 용암산성이 근처에 있길래 가을 단풍철에 오면 좋다 하지만 미리 맛보기 삼아 들렀다. 입구에 차를 댔고 용암산성까지 1km라 쓰인 표지판. 가벼운 산책길을 생각했지 등산코스일 줄은 몰랐지. 길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등산복 차림의 등산객들이었다. 이럴 줄 모르고 왜 하필 둘 다 예쁜 옷 입고 왔나(...) 경사가 꽤 가파른 탓에 속도조절을 해봐도 땀은 줄줄 흘렀다. 오르고 또 올라 도착한 정상 무렵엔 기대한 성벽이 없었다. 서울에서 좋아하던 낙산산성 같은 곳을 만나나 설렜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용암산성은 자연적인 토성이라고. 우리가 흔히 아는 석성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려오는 길, 노란나비가 내 주변을 계속 맴돌길래 "내가 꽃이라서 따라오나 봐" 주접을 떨었다. 반면에 자꾸 모기가 꼬인다는 그에게는 넌 땀냄새 나서 그런 거라 짓궂게 장난쳤고. 하산왕 오늘 실력 발휘 못하는 건 옷 때문인 거라고. 그럼에도 긴 바지 접어 올려 날아다녔다. 앞산고라니 누가 말리랴^^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은.
정상에 다다랐을 때. 생각한 성곽은 없었다.
소중한 바지를 지키기 위한 노력.
하산왕 앞산고라니 (feat.움켜잡은 바지)


이대로 집에 가기엔 날씨가 너무나 좋아서 차박은 못해도 캠핑하기로 했다. 마침 차에 릴렉스체어도 캠핑장비들도 다 있겠다 문제없지. 동구에서 장소를 서칭하다 멀지 않은 동촌유원지로 가기로 결정. 팔공산과 대구공항 근처라 차는 너무나 밀렸고 아점을 먹은 우리는 배가 고파서 저녁거리 살 겸 불로전통시장에 들렀다. 마침 장날이란다. 분식류를 사려고 했는데 그다지 끌리는 게 없어 돌아 나왔고 동촌유원지로 가려다 아양루로 선회했다. 사람도 없을 거고 배달음식 시켜먹기도 좋을 테니. 먹어보고 싶던 브랜드 떡볶이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 아양루는 2년 전 추억의 장소다. 사귄 첫날 아침에 만난 곳. 여기서 쌈밥도시락과 선드라이드토마토를 먹었었는데. 장난치는 그에게 "2년 전 여기서는 안 그랬잖아. 착한 남친 어디 갔어." 삐죽했더니 "그땐 남친이었고 지금은 남편이잖아." 하며 가진 자의 여유 웃음을 짓는 그. (말이나 못 하면 으이구) 오지 않는 떡볶이를 한 시간이나 기다렸고 그사이 해는 뉘엿뉘엿 저물었다. 하필 우리가 자리한 곳은 해를 등지고 있어 일몰을 볼 수가 없다 헝...


노을 안녕...
아양루. 할아버지들이 앉아 계셔서 안들어갔는데                                나중에 보니 '들어가지 마시오' 되어있었다. 반전.
금호강 건너 보이는 저곳이 아까 우리가 오른 용암산성.
오지 않는 떡볶이를 기다려.


마침내 떡볶이는 왔고 우리는 오봉테이블을 꺼내 만찬을 즐겼다. 생각했던 캠핑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랴. 다 먹고서 소화시킬 겸 두 손 맞잡고 걸은 해맞이동산부터 금호강변 밤산책이 참으로 좋았다. 이렇게 낮시간은 도심 데이트를, 늦은 오후 시간은 대구를 벗어나 시골여행을 한 것만 같은 일명 '동구밖여행'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갔다.


그래서 우리, 다음 주말엔 어디갈까?

 (가긴 어딜가 수제잼 추석선물세트 준비해야지..)



잇츠 파티타임. 치즈 쭉쭉 늘려주세여
내가 좋아하는 구름모양 조형물인데.                                                  그의 모양 비하 발언 때문에  이제는 달리 보인다.
손톱달 밝은 밤. 금호강 산책.






bgm. 우리, 여행 - SO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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