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음에 관해
빨래를 널고 있는 나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그거 너무 낡지 않았어?
이제 그만 버려.
하지만.. 좀 낡은 옷이 편한데....
난 무언가 사야될 때 물건을 잘 고르지 못하곤 했다. 애 셋을 키우느라 뭘 하든 빨리빨리 결정하고 해치워야 했던 울 엄마는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마다 적당한 걸 사주셨었다. (아마 그건 엄마의 일을 조금 덜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내 물건을 직접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적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아님 단지 결정장애가 있는 내 성격 때문인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도 나는 물건을 쉽게 고르질 못하고 또 쉽게 사질 못한다.
결정이 힘든 만큼 한번 내 손에 들어온 건 오래 쓰는 편이다. 나도 모르게 자주 쓰고 입는 것들은 낡아 떨어져도 고쳐 쓰고 또 고쳐 입는다. 밑창을 대여섯 번 갈아 떨어질대로 떨어진 구두는 더이상 수선이 불가능해졌지만 아직 신발장 안에 그대로 있다. 진짜 가죽도 아닌 몇 만원짜리 신발을. 이미 수선비가 원래 신발 가격을 넘겨버린지 오래인데.. 아마 다른 이가 본다면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참 이상한 게 물건의 가격을 떠나 그렇게 오래 나와 함께하게 되는 물건들이 있다. 물건과도 궁합이 있는 건가.
그냥 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오랜 시간을 같이 하는 게 좋다. 많이 갖진 못하더라도 내가 가진 것을 더 오래 쓰고 더 오래 지켜보고 싶다. 그러다보니 맺고 끊는 게 힘들 때도 있고, 버려야 되는지 알면서도 잘 버리지 못한다.
낡았지만 익숙한 게 좋고, 시간이 들어서 그런지 새것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물론 내 급한 성질 때문에 험하게 다룰 때도, 상처를 줄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쉬이 버리지 못하는 게 단지 미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언젠가는 끝내고 버려야 될 때가 오겠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에 무언가가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