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루틴 만들기
거의 두 달 반을 정리에 몰두하고 있다. 정리에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냐고 묻는 남편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 부부가 살아온 몇십 년의 인생을 정리하고 있어.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해.”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요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정리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려도 하나도 안 힘들어. 난 ‘정리’에 꽤 높은 역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집 정리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 까봐 걱정하는 남편에게 내 생각을 분명하게 말했다.
집을 깨끗이 정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뭘까? 성공한 사업가나 유명한 스포츠 선수들을 보면 정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듯 보였다. 우선 잘 된 사람들을 따라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달 동안 본격적인 정리를 해보니 나름 개인적인 이유들이 하나하나 생겨났다.
#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정리를 한다.
정리하지 않은 짐들은 내가 가진 행복을 보이지 않게 가려버린다. 결혼한 지 3년이나 지났지만 펜트리방 한 구석에 남편의 옷박스가 방치되고 있었다. 남편을 설득하여 판도라의 상자 같은 옷상자를 정리했다. 사이즈가 맞지 않은 옷, 유행이 지나거나 해진 옷들을 다 솎아내니, 판도라 상자는 그야말로 보물 상자로 변해있었다. 맨날 옷이 없다며 구멍 난 티셔츠와 속옷을 입던 남편은 알고 보니 고급 스웨터, 질 좋은 스포츠웨어, 새 속옷들을 한가득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만수르가 된 것 같다며 행복해했다.
정리를 하지 않으면 내게 좋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쓰레기 같은 짐에 가리어 누릴 수 없게 된다. 가난하지 않은데 가난한 사람처럼 살게 된다. 그리고 많은 것을 이미 가졌음에도 이를 망각하니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불행해진다. 옷 박스를 정리한 후 생겨난 팬트리 공간에 남편을 위한 옷장을 만들어 주었다. 요즘 남편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청소를 한다.
#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정리를 한다.
남편은 미니멀리스트가 될 생각이 전혀 없는 맥시멀리시트이고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맥시멀리스트이다. 어쨌든 둘 다 맥시멀리스트인 우리 부부는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가르는 심판대 위에서 엄청 고민했다. 남편이 가장 많이 버린 것은 비닐봉지와 포세린 가방이었고, 절대 버릴 수 없는 것은 야마하 전자피아노를 비롯한 악기와 공구함, 초등학교 때 쓴 그림 일기장이었다. 내가 가장 많이 버린 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이었고, 남기기로 한 것은 내 다이어리와 여행기념품 그리고 책이었다.
정리를 하면서 우리는 정말로 자신에게 의미 있는 물건들을 알게 되었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잡동사니를 버리고 비워진 공간에 우리의 취향과 추억을 담은 소중한 물건들을 오브제처럼 예쁘게 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 마지막으로 내게 정리란, 하루의 시작을 깨끗이 하는 작업이다.
반듯하게 그어진 출발선 위에서 오늘 하루도 힘차게 뛰어나간다. 아침에 나는 집안의 먼지들을 닦아내고, 환기를 하고 어질러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으면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정리를 한다. 깨끗해진 집안을 보며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는다. 하루하루를 내 의지대로 끌고 갈 힘을 얻는다. 앞으로도 정리 루틴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내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정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