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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은 Oct 26. 2020

"과학자에게 무지는 기쁨이며, 삶의 이유"

나탈리 앤지어 <원더풀 사이언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을 아는 것은 재미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안다고 해서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이 쓸데없는 것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 일명 ‘덕후’라 불리는 고상한 취미의 애호가들만이 누리는 작은 사치. 그리고 그것은 과학적 지식도 마찬가지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에게 과학은 의미 없는 것일까. 마치 세상의 비밀에 접근하는 것 같은 앎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놀라울 만큼 바꿔준다는 것만으로도 과학은 충분히 '덕질'할 만한 대상이다. 작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재미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과학은 재미있다."

‘과학 덕후’ 저자의, 과학자의 눈으로 세상보기 

나 역시 다양한 분야의 얕은 지식들로 그간 덕력을 쌓아왔기 때문일까. ‘과학 덕후’라 할 만한 나탈리 앤지어의 접근 방식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마치 고상한 여흥을 즐기듯이 과학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음미하는 그의 서술방식은 (덕후 특유의 잘난 척이 적절히 녹아 있긴 했지만) 충분히 쿨하고 유쾌했다. 


나는 모기를 참 싫어한다. 하지만 그런 모기도 해부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자코메티의 조각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가느다란 남자>처럼 보인다. -나탈리 앤지어 <원더풀 사이언스> 中 -


그의 눈에는 척도에 따라 지구의 시간도 인간의 수명으로 보이고, 그의 입은 음식을 먹을 때도 보이지 않는 음식 원자들이 감각 수용체의 원자에 전자를 밀어넣는 것을 느낀다. 세포를 크게 늘리면 콧물 덩어리 같은 느낌일거라는 상상을 하고, 밤하늘 북극성의 별빛을 보며 그 빛이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기에 출발한 것임을 생각하며 가슴 설렐 수 있다. 


이쯤 되면, 과학을 즐기는 태도가 유쾌함에 나아가서 꽤 우아하고, 낭만적이기까지 하지 않은가?  

나는 원래부터 과학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과학을 알아가는 통로를 닫아버렸다. 과학 덕후의 눈을 빌어 세상을 보니 꽤 오래 잊고 있었던 과학의 재미를 새삼 실감한 느낌이다. 아, 그랬지 하고. 


나에게 과학은 마치 무엇이 일어날지, 무엇을 발견할지 알 수 없는 추리게임 같은 흥미진진한 실험의 세계였다. 중학교 때까지 과학 실험에 열을 올리며 좋아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실험한 결과가 책에서 배운 것과 달라 좌절과 반성, 혹은 조작이 늘어나면서 과학은 그저 누군가 특별한 이들만의 전유물처럼 까다롭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그 전까지 나에게 과학은 일종의 즐거운 ‘해프닝’이었는데, 과학이 이미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처럼 지루해졌고 각종 법칙과 원소기호에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물리와 화학은 가까이 할수록 멀어졌고, 다만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지질학과 천문학만이 여전히 좋았다. 


죽은 지식은 재미가 없었다. 이미 누군가가 발견해놓은 것을 암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지? 나는 그 뒷면의 ‘어떻게’와 ‘왜’를 알고 싶었을 뿐인데. 

과학자처럼 사고하기: "무지는 기쁨이며, 삶의 이유"

과학수사가 등장하는 범죄미드를 좋아하는 내게 익숙한 장면이 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드물게 발견된 뼈나 벌레, 화학현상에 대해 이게 왜 이렇게 된 걸까 의문을 갖는 동시에 갖는 쾌감의 표정이다. 그것은 형사들이 범죄의 증거를 발견했을 때 흥분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다. 



이 책에서도 과학자들에게 ‘무지는 기쁨이며 언제나 새로운 이유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불확실성에 익숙하며 늘 새로운 불확실성을 찾아 나선다. 새로운 패턴, 새로운 법칙, 새로운 기본 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강한 의지를 가진 동시에 일에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게 아닐까. 


그런 과학자들의 표정을 때때로 외부인들은 ‘괴짜’라고 부르지만 나는 과학자처럼 사고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두 배, 세 배로 즐겁게 만들어주는 ‘여흥’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어떤 숨은 원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위대한지와는 상관없이 그 즐거움과 긴장감에 주목하고 싶다. 


나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내가 즐기는 문학적 상상력과 기승전결의 서사도 과학자의 가설과 증명 과정과 어딘가 모르게 닮았다. 내 몸 안의 아주 작은 세포 하나하나, 혹은 나를 아주 작은 존재로 만드는 거대한 우주를 상상하면, 그 매우 작은 일부와 거대한 무한의 세계가 닮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혹자는 과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기계처럼 정밀하고 빈 틈 없이 논리적인 사고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역시 낭만적이며 신비롭기 때문이다. 과학은 결국 아주 드넓은 세계의 무질서를 가로지르는 보이지 않는 질서에 대한 상상이 아닐까.  

물리와 생물학, 보이지 않는 위대한 힘의 여정 

이번에 새롭게 흥미를 발견한 부분은 물리와 생물학이다. 물리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힘에 관한 학문이고, 이 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를 생각하는 지극히 철학적인 탐구에서 출발한 학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구를 포함해 우주 통틀어 오직 4가지 힘으로만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한다는 것. 그것도 우리가 가장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중력’이 그 중 가장 약한 힘이라니. 그리고 처음에는 하나였던 힘이 우주가 나이가 들고 식어가면서 네 가지 힘으로 나뉘게 됐다는 의견이 흥미로웠다. 마치 영화 스타워즈의 어떤 알 수 없는 힘의 존재인 ‘포스’를 만나는 듯해서. 



생물학은 진화생물학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데 진화의 위대한 여정이 긴 투쟁처럼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리처드 도킨스의 “자연선택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작위적이지 않은 힘”이라는 정의가 인상 깊다. 아주 먼 조상으로부터 나를 지나 아주 먼 인류의 후예에 이르기까지의 머나먼 여정이 가장 완벽한 완결성을 보이는 하나의 기나긴 연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진화는 “조직적이지도 않고 선견지명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진화는 “땜장이, 임기응변의 달인, 응급 장비”이다. 당장의 시급한 문제만 해결할 뿐 미리 앞을 내다보고 계획하지 않는 이 연주는 완벽하게 타당한 피날레로 나아가는 ‘즉흥연주’인 셈이다. 

과학적 색채를 다채롭게 하는 ‘문학적 프리즘’ 

작가가 기초과학을 서술하는 방식은 지극히 문학적이어서 어느 분야든 독특한 비유와 상징이 넘쳐난다. 과학을 설명할 때 과학적인 용어만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비유나 상징은 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응용기술이다. 어떤 학문이나 이론, 개념을 그 분야가 아닌 쉽고 일상적이며 문학적인 언어로 바꿔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저자의 또 다른 재능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부 부분은 그 비유와 상징이 이해를 가로막거나 오해를 불러올 여지도 있어 보인다. 결국 과학은 수치로 된 정합성의 학문이고, 문학은 읽는 이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주관성과 다양성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엔트로피를 ‘엉망이 된 서재’나 ‘쏟아진 물’로 비유하는 것은 타당할까. 나는 엉망이 된 서재가 꽤 마음에 들지만, 누군가는 그 서재를 단 한 순간도 못 참을 끔찍함으로 해석할지도 모른다. 이 세계는 엉망으로 가고 있어! 하고 절규할지도 모르니까.  

나는 그가 열역학 제2법칙의 두 번째 전제를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요약한 것만은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1그램의 손실도 없이 완전히 에너지로 바뀌는 일은 없으며, 누구든 반드시 에너지를 가져가 탕진해버린다는 것.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완벽을 추구한다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에는 엔트로피가 당신을 지배할 것’이니까. 적어도 우리가 어느 빅뱅의 순간에서 시작되어 어떤 엔트로피의 세계로 가고 있는가를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책을 덮고 표지의 그림 속 연쇄고리를 따라가며 아주 큰 것의 일부에서 다시 아주 작은 것들의 모음이 되는 상상을 한다. 핵에서부터 우주로 향하기까지 수많은 연결고리들이 꿈틀댄다. 


과학의 즉흥연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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