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은 Oct 29. 2020

"트랜스휴머니즘 시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브 헤롤드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

SF가 허무맹랑한 망상이라 믿으며 소비하던 시대는 차라리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논픽션의 현실이 픽션의 상상을 압도하니까. 


현대 SF작가들을 비웃듯 책의 저자는 미래 인간 빅터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고는 이렇게 이어간다. 너무나 익숙한 SF의 서사를 방금 보셨지요,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의 내일이에요. 픽션이 아니라 현실이요. 멍 때리는 독자를 향해 천천히 부연 시야를 닦아낸 저자는 마지막에 가선 멱살잡이를 하듯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신을 들먹이며 쓸모없는 음풍농월에 빠져 있는 사이, 과학이 저만치 당신을 추월해가고 있다고.”


한 번도 맞닥뜨린 적 없던, 피할 수도 없는 ‘뉴 노멀’


나는 예전부터 생명의 기원과 진화, 인류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가장 천착했던 것은 과거 종교였으나, 현재는 과학이 빠르게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문제는 그 가속도가 붙은 그 동력에 우리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제대로 대처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인데, 이 책의 저자는 자꾸만 먼 미래로 유보하고 싶은 우유부단한 신경줄을 인공장기라는 현재 문제로 바짝 잡아당겨 놓는다.


인공장기가 대중에게 널리 받아들여질 첫 번째 첨단융합기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을 것이다. 건강한 사람이 한 가지 장기 때문에 생명이 위태롭다면, 그리고 생체장기를 구할 수 없다면 인공장기의 선택지로 가는 것이 거의 불가피할 테니까. 의료적 목적으로 시작한 융합기술과 인간의 결합은 많은 것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과거 인류 역사에 한 번도 맞닥뜨린 적 없던 선택지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럴지도 모르는’ 미래가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될’ 미래라고 저자는 여러 번 강조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현재와 미래의 불가피한 흐름을 이끌어낸 방식이다. 인공장기라는 구체화된 현실 속에서 ‘인공장치의 비활성화’ 문제를 통한 죽음의 통제를, 군부대라는 사각지대에서 이미 시작된 ‘인간 강화 기술’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민간으로 확대될 위험을 경고하는 식이다. 


그 현재와 연장선인 불가피한 흐름 속에서 육체적 ‘고통’과 죽음은 더 이상 인간의 숙명이 아니게 된다는 것, ‘노화’‘정상’은 새로운 개념 정의를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을 저자는 최대한 피부에 와닿게 언급하려 애쓴다. 그의 말대로라면 ‘뉴노멀’의 업데이트 주기는 점점 짧아질 것이다. 그리고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시대의 우리를 판단한다는 것은, 지금껏 유용했던 모든 기준을 폐기처분하며 매번 빈 책상에 앉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혼종’이라는 형태학적 자유, 그저 “나는 나다”


인류는 다른 종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들을 구분해내고, 오롯이 인류만이 가진 특성들에 의미를 부여하기를 즐겨왔다. 그 엄격한 배타성이 이제 인류 스스로를 공격하게 됐다는 것은 씁쓸한 아이러니다. 


너는 인간이냐, 인간이 아니냐. 과학의 힘을 빌어 다른 종으로부터 분리되길 희망해 온 인류의 정체성은 다시 과학에 의해 오롯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적어도 영속하고 싶다면, 혼종을 받아들이라는 첨단기술의 계시. ‘종’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풀면 진정한 자유를 얻을지니. 그 두렵고도 달콤한 속삭임이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 모든 의문의 근본에는 궁극의 질문인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남을 거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한 번 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인간이 무엇인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의 집단-인류를 넘어선 문명공동체-은 반드시 동질성과 균일성으로만 존립 가능한가.


정상과 비정상의 스펙트럼이 무수한 형태로 존재하듯이,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의 개체는 인간과 기계, 무기물과 유기물의 사이에서 무수한 경우의 수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인류가 자신을 어떤 집단의 동질성으로 규정하려는 강박증에서 벗어난다면, 완전한 ‘형태학적 자유’를 얻게 될지 모른다. 그 때에 가서는, “너는 정체가 뭐냐?”라는 물음에 “나는 나다.”라는 말로밖에는 답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나’는 매일 달라지는 유일무이한 ‘나’이게 된다. ‘종’이라는 족쇄를 푼 미래의 우리는 그제야 ‘나’라는 존재의 공동창조주로서, 진정한 실존의 의미를 강렬하게 체험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아래는, 내가 형태학적 자유를 즐기게 된, 또 다른 미래인간 빅터를 상상해보며 쓴 픽션이다.



『손이 녹아 흘러내렸다. 앙상한 세라믹의 뼈마디만 남은 그것을 더 이상 손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빅터는 생각했다. 이것을 뭐라 부르든 뭐 어때. 그 이전의 것보다 나은 것이면 됐지. 그는 모든 관념 따위야, 물질이 있고 나서야 생겨난다고 굳게 믿는 사이보그 디자이너다. 그러니 이럴 때도 주저함이 없어야 했다. 새하얀 세라믹 뼈마디를 신중히 고른 손 모형 몰드에 맞춰 넣고 버튼을 누르자, 강도를 높인 합성수지 반죽이 뜨거운 김을 뿜으며 흘러내렸다.


 새로 주문한 고강도 탄소섬유장갑을 낄 생각을 하니 입꼬리가 비죽이 올라갔다. 이렇게 완벽한 타이밍에 최상의 부품이 구비됐다면 적어도 다음 교체 주기는 한참 더 길어지겠지. 그는 이로써 또 한 번 자신을 새롭게 디자인한 셈이다. 빅터는 흡족한 기분으로 또다시 업데이트된 자신의 신체 사양을 SNS에 업로드했다. 빅터와 같은 사이보그 디자이너들은 서로의 디자인을 겨루고 전시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당분간 질릴 때까지 이 사양을 즐겨볼 작정이다.


 길고 미끈한 손가락 열 개가 공중에서 부드럽게 활강하는 것을 감탄하듯 잠시 바라보다가 택배상자의 리본 매듭을 풀어내는 유연한 손놀림을 음미했다. 그는 상자를 뚫고나온 잘 배합된 허브향이 후각센서를 통과해 뇌신경을 청량하게 자극하는 것을 느꼈다. 특별히 오더메이드한 이번 탄소섬유 장갑은 향기뿐 아니라 색상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올해 2030년 트렌디 컬러, 10년 전 유행이 복고풍으로 다시 떠올랐다는 톤다운된 올리브그린이었다.』






이전 15화 "지식은 물이 약간 새지만 떠다니는 배와 같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