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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은 Aug 12. 2021

[재창작] 엄지마마 : "우리들은 모두 엄마가 필요해"

안데르센 동화 <엄지공주> 재창작 소설

가족 없이 쓸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 슬픈 눈으로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브의 거리에는 화려한 불이 켜지고, 감미로운 캐롤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보육원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애초에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이 왜 존재해야 하지? 이미 행복한 사람들이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행복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고약한 날일 뿐이잖아. 

TV를 틀자 함께 트리 장식을 하는 즐거운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환하게 웃어주는 TV 속 엄마의 얼굴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한테도 있었으면….”

태어나 ‘엄마’를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아이가 말끝을 흐렸다. 

“저게 행복이라면… 우리들은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어.”

한 아이는 그렇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육원의 선생님들과 수녀님들은 상냥했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그나마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는 아이도 슬퍼지긴 매한가지였다. 가슴 어딘가에 구멍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나날이 기억 속 엄마의 얼굴은 흐려지고 있었다. 시리고 찬 기운이 이따금씩 심장 언저리를 선뜩하게 할 때마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엄마가 생기게 해주세요. 산타할아버지.”

누군가가 그렇게 빌자, 아이들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작은 두 손바닥이 맞닿았고 모두의 기도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순간, 창틀에 추운 겨울바람을 타고 작은 꽃씨 하나가 실려와 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창 너머로 빨간 꽃봉오리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 겨울에 웬 꽃이지?”

창문을 열자 꽃봉오리가 부르르 떨리며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앞에서 잎을 피워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손가락 엄지만큼 작은 여자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뻑거렸고, 작은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희들의 엄마가 되기 위해 여기에 왔어.”


“당신이? 우리들의… 엄마가 돼 준다고요?”

“엄지만한 엄마네.”

아이들이 와르르 웃었다. 한 아이는 너무나 기뻐서 “엄지마마!”라고 외치며 빙글빙글 돌았다. 그런데 돌연 불어온 찬바람에 꽃잎 위에 기대 서 있던 엄지마마가 균형을 잃고 추락했다. 그리고 그 때, 마치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털뭉치 하나가 자신의 푹신한 몸으로 엄지마마를 받아냈다. 털뭉치는 곧장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엄지마마는 그 빠른 속도에 두 손으로 털을 꽉 붙잡은 채로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스티로폼 택배박스 안에서 눈을 뜬 엄지마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새카맣고 동그란 눈동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엄마가 깨어났어! 컹컹.”

“세상에. 정말로 엄마를 구해왔단 말이야?”

눈동자들 여럿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 중에는 누런 털이 제멋대로 길게 엉켜서 눈동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커다란 녀석도 있었다.

“너희들은 누구지?”

“이렇게 작은 게 우리의 새 주인이라고?”

점박이 고양이가 앞발을 핥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주인이 아니야. 분명 ‘엄마’라고 했어. 내가 엄마를 데려온 거라고.” 

그 때, 엄지마마는 자신을 데려온 개가 보육원 아이들과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너희들도… 엄마가 필요하니?”

“사실 우리는… 엄마가 뭔지 잘 몰라. 비싸게 팔리기 위해 새끼 때 억지로 엄마와 이별했거든. 주인은 우릴 버렸지만… 엄마는 절대 새끼를 버리지 않는다지?”

그렇게 말하며 기대에 찬 눈을 하는 검은 강아지가 안쓰러워 엄지마마는 코끝을 살짝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자 손길이 기쁜지 검은 강아지의 작은 꼬리가 살랑거렸다. 그걸 본 강아지와 고양이들은 스티로폼 상자로 너도나도 고개를 들이밀었다. 엄지마마는 일일이 작은 두 손과 볼을 사용해 그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겨울은… 너무 추워.”

엉망으로 털이 엉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누렁이 녀석이 볼멘소리를 하며 어리광을 부렸다. 엄지마마는 녀석의 등 위로 기어 올라가 톡톡 몸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아니야. 너희의 털은 충분히 따뜻해. 버려진 상자들로 추위를 막아내는 지혜도 가지고 있는 걸. 너희가 추운 진짜 이유는….”


- 잃어버린 손길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야.


엄지마마는 작은 자신의 손길에도 기뻐하는 개와 고양이들이 안쓰러웠다. 자신은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주기 위해 태어났지만, 이 세상엔 엄마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알았다.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어루만져 줄 따뜻한 온기가 필요했다. 버려도 버려도 다시 주워지는 존재여야 했다. 우리 모두는.


“그래! 나는 모두에게 엄마를 줄 수 있어!”

영문을 알 수 없는 엄지마마의 말에 개와 고양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를 다시 아이들이 있는 보육원에 데려다줄래? 너희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엄지마마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그렇게 부탁했다. 엄지마마의 따뜻한 손길에 잠시나마 행복을 느낀 개와 고양이들은 그녀의 말을 믿고 보육원으로 달려갔다. 맨 앞에 앞장선 커다란 누렁이가 엄지마마를 태우고 가는 영광을 얻었다. 커다란 꼬리가 신나게 흔들렸다.   


“저기 봐! 우리들의 엄마가 커다란 개의 등에 타고 있어!”

보육원 아이들이 마당 밖으로 나와 개와 고양이 무리로 몰려들었다. 엄지마마는 묘기를 부리듯 누렁이의 긴 털을 스르륵 붙잡고 내려와 당당히 가슴을 내밀며 외쳤다. 

“우리는 모두 엄마가 필요해! 그렇지?”

“… ….”

“우리가 누군가의 엄마가 돼줄 수 있어.”

“엄마가 돼준다고?”

“그래. 서로가 상대방의 엄마가 되어주는 거야.”

“하지만 우린 엄마가 뭔지 모르는 걸.”

“어렵지 않아. 별 거 아냐. 이리 와 봐. 어서!”

아이들과 개와 고양이들이 엄지마마 주변으로 가까이 다가섰고, 서로의 어깨와 어깨가, 꼬리와 꼬리가 맞닿았다.

“엄마란, 그저 아주 가까이에 늘 있어주면 돼. 상대가 ‘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웃어주고 쓰다듬어 주면 돼.”

“그게… 다야?”

“응. 그리고 하나의 규칙만 명심하면 돼.”

“그게 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버리지 말 것.”

“영원…히?”

“영원히.”


엄마란 그러니까… 가장 소중한 장소가 되어주는 거야. 엄지마마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과 개와 고양이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얻지 못했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돼줄 수는 있다는 것을. 이 세상엔 되어줌으로써 갖게 되는 것이 있었다. 그렇게 보육원의 스무 명 아이들과 일곱 마리의 떠돌이 고양이, 강아지들에게는 기적처럼 엄마가 생겨났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  



<작가 노트>

어떤 크리스마스 날에 나는 유독 외로웠다. 이 축복의 날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잔인하다는 것을 화려한 트리장식과 캐롤의 거리를 걸으며 사무치게 깨달았다. 평소 혼자서 잘 살아가던 사람들도 그 날만은 혼자 있으면 절대 안 되는 것인 마냥 각자의 최애를 찾아 떠나갔다. 거리에 혼자인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누구나 혼자 살아가지만 때때로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온기를 필요로 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럴 때 엄지마마가 눈 앞에 나타나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무언가 해주지 않아도 좋다. 이 커다란 도시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나를 가장 소중한 존재로 바라봐주는 누군가의 눈동자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에 이 글을 썼다. 모두가 버려지지 않는 존재가 되길 희망한다. 일상의 유일한 기적이란,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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