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요가 강사가 되었다
“내 삶 위 한 길에 요가가 있기를, 요가가 내 삶을 휘두르지 않기를, 내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제목을 썼지만 키보드 위 얹어둔 두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복잡한 마음을 읽히기 쉽게 쓰자니 어렵고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는다.
요가원에서 수업하지 않은 지도 꽤 됐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획이 없다. 당장은 지금처럼 소소하게 주변 사람과 친한 친구에게 요가를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가를 즐기는 사람으로 돌아와 명상하고 수련하며 깨달았다. 가르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가 당장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잘 숙성되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주변에서 알아차리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그 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요가강사 자격증 과정을 시작한 이유는 팬데믹 이후, 배움에 대한 목 마름과 요가가 합쳐져 실현된 것이었다. 운이 좋아 자격증을 딴 요가원에서 제안을 주셔서 수업을 시작하긴 했지만, 나는 요가를 가르치는 사람일 때 가장 요가를 즐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완벽주의 성향이 발동되어 그런 것 같다. 요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강사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만든 완벽주의 규칙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아사나를 수련해도 부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고 매일의 수련은 고통스러웠다. 이 완벽주의 성격, 제거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요가 강사가 힘들었던 이유 중 첫 번째는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옆 사람이 아프면 나도 같이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내 것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나의 예민함이 강사 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도 있었다, 관찰력이 좋아 학생들의 자세나 통증의 원인에 대해 잘 이해했다. 이 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업을 하면서 때로는 학생들이 다가와 고마움을 표현할 때면 정말 따뜻하고 좋은 느낌이 났다. 하지만 강사 생활을 오래 할수록 전달된 통증은 내 안에 축적되어 갔다. 나는 이 통증을 제거하는 방법을 몰랐다. 혹시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초민감자입니다’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나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예민함을 잘 이용하고 보호하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했다.
두 번째로 요가로 돈을 벌기 위해선 SNS를 필수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난도 동작을 해내는 세상의 많은 요가 강사들을 작고 좁은 휴대폰 화면으로 만날 때마다 강사를 시작하기 전 시절처럼 감탄하기는커녕 보는 게 힘이 들었다. 내 SNS는 처음부터 요가 수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저 영상촬영을 좋아하고 요가를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가볍게 시작한 것이 강사를 시작하면서 어려운 말을 쓰기 시작하고 힘이 들어가면서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는 요가의 본질과 멀어짐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요가를 즐기는 수련자가 되기 위해 행동에 옮긴 것은 홍보성이 짙은 요가 계정과 고난도 자세를 척척 해내는 만나 보지도 못한 유명한 요가강사들을 언팔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는 온몸에 힘을 빼고 다시 마음에서 우러나 요가를 즐기는 수련생이 되기로 했다. 껍데기를 벗어내 죄책감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수련하는 요가.
그 후로 아사나 수련 시간을 줄이고 나는 명상 수련에 더 헌신했다. 내가 제일 편안해하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온라인 명상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항상 관심 있던 미국 요가 선생님, Jared와 온라인 명상을 수련했다. 쿤달리니 요가, 초월 명상, 칼리 만트라, 가야트리 만트라 등 명상법과 효과는 각각 다르지만 최종적인 목표는 내 안의 영혼의 목소리를 잘 듣고 나로서 잘 살기 위한 도구이다.
어느 날, 명상 수련 중 선생님이 처음에 요가원을 열 때 그의 스승이 해 준 말을 우리에게 나눴다. 그의 스승이 이제 막 요가원을 연 Jared 선생님에게 물었다.
“Jared, 너는 어떤 학생을 가르치고 싶니?”
“스승님, 어떤 학생을 가르치고 싶냐니요? 저는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 요가원에 찾아오는 모두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듣기에 좋은 말이지만 곧 깨닫게 될 거야. 넌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에 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만 도와줄 수 있다. 반면, 의식의 수준이 낮은 사람은 너를 끌어내리고 네가 수련해서 쌓은 아름다운 에너지만 뺏으려 할 거야. 그러니 항상 너를 보호하고 그런 사람이 찾아오면 조심해라 너 또한 무너질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띵’하는 소리와 함께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주변 사람과 친한 친구에게 수업하는 시간들은 힘들어하지 않고 요가원에서 단체 수업을 할 때 왜 그렇게 진이 빠졌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몰랐거나 혹은 깊은 곳에서 느꼈지만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수업을 그만두고 가끔 기존 브라질 학생들에게 연락이 와서 다시 수업해 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나는 고맙기도 하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내 깊은 곳에서는 알았던 것 같다. 지금은 내가 먼저 단단해져야 할 시간이라고. 언젠가는 이 머나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한국인이 수련하는 조그마한 요가원을 열고 싶다. 모두를 위한 요가원이 아닌 내 수련을 나눌 수 있는 곳, 열린 마음으로 수련을 시작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을 위한 요가원.
“내 삶 위 한 길에 요가가 있기를, 요가가 내 삶을 휘두르지 않기를, 내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