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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터치 우주 Dec 24. 2022

파리 신혼일기&불만일기

14년 전의 파리를 추억하며

파리 로망

"파리"라는 말만 들어도 반짝이는 에펠탑이 머릿속을 스치며 가슴이 설레었던 적이 있었다. 나의 첫 파리 여행은 대학교 때였다. 나 홀로 45일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가보고 싶고, 가장 기대되며, 가장 큰 로망을 갖고 있던 곳이 파리였다. 유레일 패스로 유럽의 많은 나라를 오가면서 실망을 안겨주는 곳도 있었고, 생각보다 더 크게 만족을 시켜 주는 곳도 있었다. 


막상 가보니 기대와는 다르게 불친절함, 더러움, 불편함 등에 실망 했다는 후기가 많은 파리이지만, 단 5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머물렀던 파리는 다행히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내게 실망보다는 만족을 주었던 도시로 기억되었다. 수박 겉핥기 밖에 되지 않을 짧은 파리 체류로도 충분히 실망을 느끼는 일을 경험할 수 있었겠지만, 감사하게도 파리에 대해 갖고 있던 환상은 깨지지 않았고, 더 오래 머무르지 못한 아쉬움까지 더해져 더욱 파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남편의 직장 때문에, 그리고 덕분에 파리에서의 신혼이 시작되었다. 비교적 큰 스트레스 없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던 차에 결혼과 동시에 찾아온 파리에서의 신혼은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보기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다. 그 좋은 직장을 어떻게 과감하게 정리하고 남편을 따라가기로 어려운 결정을 했냐며 의아함과 걱정이 담긴 질문을 받곤 했다. 대책없이 철이 없던 나에게는 전혀 어려운 결정이 아님은 물론, 빨리 퇴사하고 내가 사랑하는 파리로 떠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로맨틱한 도시 파리에서의 신혼이라니!


파리 실망

파리를 여행하는 것과 파리에서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거주할 집에 인터넷 설치는 예약도 힘들뿐더러 예약 후 수일이 소요되었다. 2009년 당시는 지금처럼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만 있다면 인터넷이 가능한 환경이 아니었기에, 집에 인터넷이 없다는 것은 각종 업무를 위한 이메일 확인은 물론, 한국 가족들과의 소통, 낯선 곳에 대한 정보 검색 등 모든 것이 불가능한 그야말로 바보가 된 기분으로 암흑기를 버텨야 하는 힘든 일이었다. 


프랑스에 3개월 이상 합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체류증이 필요하다. 체류증을 발급받는 것을 시작으로 행정 지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프랑스 공공 기관의 일 처리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느리며, 운영 시간도 짧아서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업무가 종료되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듣고 발길을 돌리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프랑스 사람들의 긴 휴가와 짧은 업무 시간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행정 공무원들의 불친절함까지 직접 경험하게 된다면 "지옥 같은 프랑스 행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만만한 게 동양인이라고, 인종 차별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드는 멸시 내지는 하대를 받는 일이 반복된다면 파리에 대한 환상은 산산조각이 나며 애꿎지만 파리지앵, 프랑스인이 모조리 싫어진다. 

행정 지옥 프랑스

공무원은 '갑', 민원인은 '을'이라며 프랑스인 스스로도 행정 기관의 행태에 불만을 쏟아 내는데, 언어가 안 되는 외국인이 느끼는 행정의 복잡함, 어려움, 답답함, 서러움은 말해 무엇하랴. 프랑스 행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내 나라 한국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안 되는 게 어딨니, 다 되지!"라는 자조 섞인 개그가 모든 것이 다 가능한 참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때 당시 내가 떠나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참 살기 편한 나라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공공기관은 치열하게 이익을 내야 하는 사기업에 비해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기도 하지만, 한국의 행정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의 업무를 신속하게 해결해주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프랑스 행정은 되는 것도 되지 않게,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어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져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최악이었다. 실제로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포기하기도 했다. 


체류증을 소지한 외국인은 자국민과 똑같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병원을 이용하면서 납부한 금액의 70%를 돌려받기 위한 행정 절차가 지옥 같아서 포기했다. 복지 시스템은 천국일지 몰라도, 혜택을 받기 위한 행정은 지옥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의료 복지 시스템이 천국인지도 잘 모르겠다.


기다리다 죽어요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고름이 차서 급하게 안과를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병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요하며, 반드시 지정된 개인 주치의를 통해 상담을 먼저 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의 상태가 악화되고 있지만, 예약이 바로 잡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더 최악인 것은 긴 기다림 끝에 만난 주치의는 눈의 상태를 보고 상담만 진행한다. 실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상급 병원인 안과를 가야 하고 당연히 예약 후 기다리면서 또 며칠이 추가로 소요된다. 

선진국의 복지라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었는지, 프랑스 병원 시스템을 경험하면서 실망을 넘어 경악했다. 의료 복지 혜택을 포기하고 돈을 더 내더라도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방문하고 아픈 눈을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방법이 없다. 지정된 주치의를 거치지 않고, 수일의 기다림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없다.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몸 상태를 복지 천국의 허울 아래 오롯이 견뎌야 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이런 게 복지 천국이라면, 그 천국 나는 사양하고 싶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을 다녀오고 내가 경험한 일을 프랑스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 역시 프랑스 의료 시스템에 문제가 많고, 게다가 의사 수가 부족하여 갈수록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임신 후 첫 산부인과 진료를 위해 예약하고 기다리다가 많은 대기자들 때문에 결국 첫 진료도 못한 체 산달이 다가와 출산을 해야 했던 그녀의 지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출산을 하면서 비로소 처음으로 산부인과 의사를 대면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 프랑스의 의료 복지라니. 프랑스 시골의 경우 상황이 더 좋지 않다고 했다. 


잘난 점심시간

프랑스 직장인들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2시간의 긴 점심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형 체인을 제외한 동네의 작은 마켓들도 철저하게 점심시간을 챙겼고 문을 닫은 후 재오픈을 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시간이 임박해 오면 마켓 문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곤 했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업무로 복귀하는 것이 보장된 여유 있는 일상이 한국의 야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부럽기도 하고 좋아 보이기도 했다. 문제없는 삶에서 2시간 마켓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고 이런 것이 선진국 사람들의 여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 문제가 발생하니, 전혀 다른 시선으로 다가왔다.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복통 때문에 병원을 예약하고 오랜 기다림 끝에 의사를 만난 날이었다. 그날 또다시 복통이 찾아왔고 걸어서 15분 밖에 되지 않는 병원이었지만, 겨우 발걸음을 옮기며 힘겹게 도착해 진료를 받았다. 미리 예약을 했지만, 앞의 환자들의 진료가 길어졌는지 예정된 시간보다 한참을 더 기다린 끝에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들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고, 걸어서 15분이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는 택시라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이 들 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의사 진료를 마치고 진료비를 납부하기 위해 접수를 도와주던 창구를 찾았다. 창구는 닫혀 있었고 직원이 떠난 자리에 2시간 점심시간이라는 안내 표지판 앞에서 할 말을 잃고 주저앉았다. 접수와 수납이 같은 창구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의사를 만나고 있는 환자가 아직 안에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그들이었다. 게다가 12시부터 시작되는 점심시간까지 15분이나 더 남아 있던 11시 45분이었다. 


환자가 진료를 마치고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을 뻔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환자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시 해버린체 매정하고 이기적인 점심시간을 기어이 사수한, 그것도 15분이나 일찍 나가버린 그들이 야속했고, 그들의 그 대단한 점심이 끝날 때까지 2시간을 꼬박 기다려야 했던 아픈 나 자신이 한없이 서러워졌다. 


환자의 불편은 간단하게 지려밟으며 어떠한 배려의 융통성도 허락되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긴 점심시간이 더 이상 좋아 보이지도, 부럽지도 않게 된 사건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믿는 그들의 이기적인 여유로 인해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창구 직원이 한 명만 근무하는 것도 아닌 큰 종합병원이었는데, 왜 그들은 로테이션 근무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인가!

이외에도 은행 계좌 개설, 소득 신고 등 수없이 많은 행정 지옥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프랑스어가 서툴러서 겪는 고통인 줄 알았고, 동양인이라 인종 차별을 받아서 고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과 같은 포지션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파리로 넘어와 일하고 있는 유럽인들 역시도 우리만큼 파리와 파리지앵에 대해, 특히 행정에 대해 끝없이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묻는 과정에는 여지없이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파리에서 겪는 서로의 어려움들이 백번 공감이 되어 우리는 더욱 빨리 친해졌다. 동양인인 우리만 프랑스에 사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EU로 묶여 있는 다른 유럽인들도 같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큰 위안이 되곤 했다. 정기적으로 만나 <프랑스 불만대회>의 장을 열고 스트레스틀 풀자며 웃었다.


파리 불만일기

14년 만에 처음으로 나의 파리 신혼일기, 아니 파리 불만일기를 적어본다. 10여 년이 넘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때의 사건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걸 보니, 다행이다. 언젠가는 꼭 기록을 해두고 싶었는데 그 언젠가가 14년이나 흐른 오늘이 되었다. 젊었던 날의 내 지난 추억들을 하나씩 소환하면서 그 추억이 유쾌한 일들이 아니었음에도, 그때의 감정과 상황들이 생생하게 떠오를수록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을 하고 있다. 행복한 기억은 아니지만, 특별한 추억들로 나는 살아간다. 


프랑스에 대해 안 좋았던 기억들만 잔뜩 늘어놓아서 이 글을 우연히 읽게 된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글을 적으면서도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기록하는 것이 망설여지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파리 불만일기는 조금씩 더 흐릿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작심하고 오늘은 불평불만으로만 채워 넣고 싶었다. 유쾌하지 못한 기억들이지만 특별한 추억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붙잡아 두고 싶었다. 


2012년 파리를 떠난 후 처음으로 다시 파리로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파리에 다시 가게 된다면 파리에 살기 전에 파리에 대해 갖고 있던 처음 느낌 그대로 파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파리는 로맨틱하고 예술적이고 환상적인 추억들을 선물해줄 것이 분명하다. 파리에 살기 위한 체류증, 그러니까 지옥 같은 행정이 필요한 3개월 이상의 거주가 아닌 여행이기 때문이다. 파리를 떠나면서 절대로, 다시는 3개월 이상 머무르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파리에 다시 가게 된다면 지난 파리에서의 추억들이 새로운 추억들로 뒤덮여 그때의 어둡고 회색빛의 감정들은 로맨틱한 핑크빛으로 물들어 그때의 온전한 날것의 감정들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 오늘 서둘러,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세하게 그때의 일들을 떠올리며 적어둔다. 14년 동안 미루었던 숙제를 끝낸 기분이 든다. 14년 전의 감정이 담긴 도화지를 안전한 곳에 따로 저장해 두니 든든하다. 이제 비로소 새로운 도화지를 들고 파리를 만나러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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