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
세계의 어떤 도시도 파리만큼 책과 내밀하게 연결된 도시는 없다. 왜냐하면 수세기 전부터 센 강에는 학문의 담쟁이덩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파리는 센 강이 가로지르는 도서관의 거대한 열람실이다. 가장 완성된 형태의 산책, 가장 행복한 산책은 책을 향한 산책이고 책 속으로의 산책이다. (발터 벤야민)
- <파리를 생각한다> 발췌, 정수복 저 -
정수복 교수님의 두 권의 책을 읽으며 파리의 이곳저곳을 두 발로 걷고 싶다는 생각은 커져간다. 아무 목적 없이 배회하는 걷기를 추구하는 마음과 그래도 여행자의 제한된 체류 시간 안에서 시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걷고 싶다는 생각이 충돌한다. 여기서 말하는 효율적인 걷기란 모두가 찾는 북적이는 관광지가 아닌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골목이지만 독특하고 흥미로운 풍경을 간직한 골목을 잘 짜여진 동선으로 걷고 싶다는 욕심이 담긴 산책이다.
모두가 목적지로 찾는 북적이는 진입로보다는 한 정거장 미리 내려 뒤쪽으로 올라가는 골목을 선택했을 때 그 동네의 분위기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다던가, 하는 팁을 알고 싶다. 두 차례에 걸쳐 총 17년간을 머물며 파리 골목을 걷고 또 걸었던 정수복 작가님의 인문학적 시선이 담긴 두 권의 산책기에 내가 찾던 정보들이 잔잔하게 담겨 있다. 이 책을 알고 읽게 된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내가 다시 파리에 가게 된다면 2년간의 거주를 포함해 세 번째 방문이 될 것이며, 익숙함과 낯섬의 그 어딘가에서 설렘과 편안함의 양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익숙하지만 호기심은 여전한 상태, 낯설지만 공포는 없는 상태로 파리 골목을 산책하기에 완벽하다.
지난 두 번의 파리는 내가 그림을 그리기 전으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었다. 다시 파리에 가게 된다면 그때와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파리를 만날 것이다. 파리로 떠나기 전부터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파리로 떠날 날을 상상하며 준비한다. 그림을 그리기 전의 나는 기억과 사진으로만 파리를 기록했지만, 지금의 나는 글과 그림이라는 창작 수단을 장착하고 있어서 든든하다. 어떠한 기억을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그림만큼 강렬하게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대상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안 그때 느끼는 감정과 대상의 아름다움은 내 그림 속에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영원을 향해 다가가는 일
파리 걷기 여행을 마친 후 나의 시선과 발길을 따라 기록한 그림 여행 에세이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정수복 작가님의 책을 읽고 파리 골목을 산책하게 된다면 "파리는 거대한 도서관"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나의 파리 여행이 책으로 기록 된다면 파리라는 거대한 도서관의 한켠에 책 하나를 꽂게 되는 의미있고 멋진 일이 될 것 같다.
책과 내밀하게 연결된 여행
가장 완벽한 산책은 책을 향한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