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은 대게 에어비엔비 숙소를 찾을 때부터 시작된다. 숙소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침실이 주방/거실과 분리되어 있어서 먼저 일어난 사람이 부스럭거려도 수면에 방해받지 않는 곳, 그리고 공간이 분리된 곳에 각각 테이블이 있어서 각자의 시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곳. 이 외에 개인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을 것, 엘리베이터가 있을 것 등의 선호하는 추가 조건들이 있긴 하지만 필수는 아니다.
짐을 풀고 대충 정리를 마친 후 타로 카드를 꺼내 남편과 이런저런 대화를 했고, 아이패드로 그림도 그렸다. 타로 카드와 아이패드는 여행할 때 꼭 함께 하는, 나의 좋은 친구들이다. 사실 타로 카드는 늘 챙겨 다니지만 매일 펼치지는 않았는데, 요즘 다시 타로 카드에 푹 빠져서 시도 때도 없이 카드를 펼친다.
부피는 크지 않으면서 재밌는 것들을 무한대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한국에서는 각자의 생활로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다르다. 남편은 매일 나와 타로 카드를 두고 이야기 나누는 타로 친구다. 여러 가지 생각들, 상황들, 고민들을 타로 카드를 통해 꺼내 놓는다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깊어진다.
타로카드를 펼치기에 안성맞춤인 둥근 철제 테이블. 상상 속의 타로 상담자가 찾아와 내 앞에 앉아 있을 것만 같은 동그랗고 푹신한 의자. 에펠탑이 보이고 뷰가 좋은 집 보다 이런저런 재밌는 공간들, 내내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의자와 책상이 잘 갖춰진 작지만 알찬 공간이 나는 훨씬 좋다.
남편과 함께 공간을 나눠 쓰기에 불편함이 없이, 독립되어 따로 있을 공간과 함께 할 공간이 적절하게 혼합된 숙소. 좋은 뷰까지 갖추고 있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정해진 예산 안에서 에펠탑 뷰는 과감하게, 기분 좋게 포기가 가능하다. 언젠가는 멋진 뷰까지 갖춘 숙소에 머무를 수 있는 날이 오려나? 돈을 충분히 많이 갖게 되는 날이 오려나? 이 질문이 대답만큼이나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하다. 이 질문이 그래도 또렷하게 내게 다가온다면, 그런 시기가 온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때 해도 늦지 않겠지.
파리 숙소는 일본의 작은 집을 떠오르게 한다.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낭비되는 공간 없이 콤팩트하게 공간을 확보해 놓았다. 작은 공간이지만 수납과 정리 공간은 부족함이 없다. 대신, 건조기가 침실 한편에 놓여 있는 등 엉뚱한 배치는 있다. 모서리를 활용한 책상은 매우 파리스럽다고 느껴진다. 집중이 다른 공간보다 잘 되는 느낌이 든다. 눈을 감고 싶을 때 모서리 책상에 앉아 본다. 고요해지고 싶을 때도.
숙소에 도착하고 짐을 풀고, 한 달 동안 이용하게 될 마켓을 찾아 장을 본다. 메트로와 버스 정류장도 확인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티켓 10장 할인 묶음을 샀다. 10여 년 전 파리에 머무를 때는 없었던 easy 나비고가 생겼다. 예전에는 증명사진이 있어야만 나비고를 발급받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변한 것 없이 보이는 이곳 파리에도 없었던 것이 생기고, 있던 것이 없어지는 변화가 있긴 있구나. 내일은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없이 동네 이곳저곳을 걸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