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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터치 우주 Jan 21. 2023

파리 한달살기 혼자가 혼자에게

오늘도 파리를 목적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시선이 가는 대로 걸었다. 파리의 겨울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하루 걸러 하루 해가 나오는 듯하다. 어제 구름이 끼었다면 오늘은 파란 하늘을 보여주는 식이다. 어제와 오늘은 감사하게도 연이어 햇빛이 좋은 날이다. 구름이 많은 날에도, 온도가 낮아 추운 날에도 바람이 많이 불지 않으면 걷기에 괜찮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웬만하면 밖에 나가지 않을 생각이다. 바람 부는 겨울의 파리는 춥고 힘들다. 

5시 30분이면 해가 지는 요즘의 파리는 4시 이후부터 서서히 회색빛 도시로 변하기 시작한다. 파랗던 하늘색이 조금씩 옅어지고 회색빛으로 도시가 차분해지고 완전히 깜깜한 밤이 되면 파리는 다시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한다. 세상 로맨틱한 파리가 된다. 


어둠이 내리면서 비도 함께 내리는 날,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나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우산 쓰는 것을 귀찮아해서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머리카락 빠진다고 핀잔을 듣곤 했다. 난 머리숱이 많아서 조금 빠져도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굳이 우산을 내어주던, 나를 많이 아껴주던 지인들. 이곳에서는 우산을 챙겨 주는 사람도,  비 맞고 다닌다며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 남이 나를 신경 쓰는 게 신경 쓰이지 않아서 좋다. 

저녁에 먹을 장을 보러 가는 길, 매일 새로운 골목을 걸어보기로 했다. 숙소 가까운 거리에 다양한 마트들이 있어서 어제 가보지 않았던 마트를 가보기로 했다. 파리 시내의 돌로 만든 비슷한 모양의 건물들을 매일 보다 보면 서서히 감흥이 떨어지고 조금은 질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때는 큰 도로와 연결된 작은 골목으로 피신한다. 파리 건축물 특유의 위엄과 웅장함이 사라진 따뜻하고 정겨운 풍경을 만난다. 

파리스럽지 않은 작고 아담한 사랑스러운 동네. 파리 시내에서는 흔치 않은 작은 돌을 이어 만든 바닥. 우연히 들어선 작은 골목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나처럼 여행객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분이 건물 하나하나 살펴보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처럼 그냥 예뻐서 찍는 것이 아니라, 뭔가 공부하듯이, 탐구하듯이 진지하게 골목 탐방을 하는 모습에 호기심이 일었다. 역사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는 골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이냐고 말을 걸었다. 혼자가 혼자에게는 말을 걸기가 쉽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혼자가 되어 멈춰서 있을 때, 안내문을 읽기 위해 같은 곳을 보며 서 있게 되었을 때, 혼자가 혼자에게 말을 걸기 편한 시공간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파리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냥 평범한 여행객은 아니다. 평생을 파리 건축과 역사 탐방을 취미로 삼아 온 대단한 파리덕후 아저씨. 그냥 예뻐서 아무 정보 없이 들어서게 된 작은 골목은 역시나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곳이었다. 몇몇의 아티스트들이 값비싼 임대를 피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아뜰리에들이 있는 골목. 파리에서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이래서 파리 도시 전체가 하나의 큰 박물관이라고 하나 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또 다른 숨은 역사적인 장소가 있다고 하여 1시간 정도 함께 파리를 걸었다. 동네에 얽힌 파리 사람들도 모를 세세한 정보들까지 꾀고 있는 파리덕후 아저씨가 대단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 전에 파리에 왔을 때는 자신이 제대로 건물을 찾은 건지 확실하지가 않아서 네덜란드로 돌아간 후 파리 역사와 건축 전문 서적들로 정보를 수집하여  다시 찾아왔다고 했다.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파리가 더 좋아지는 거겠지. 역사와 함께 한 세월의 순간들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프랑스의 노력으로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파리의 매력을 발견한 파리덕후들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파리를 더 많이 알고 싶어 진다. 세월이 흘러 다시 찾아와도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겠지. 난 파리의 이런 점이 좋다. 오늘도 우연히 길을 걷다가 십여 년 전 파리에서 신혼을 시작했을 때, 첫 그릇을 장만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방문했던 그릇 가게를 만났다. 망하지 않고 아직도 같은 모습으로 그대로 있어 주어서 반갑고 감사했다. 고향을 찾았을 때 느끼는 기분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제 찾아가더라도 그대로인 풍경이 주는 든든함, 편안함, 정겨움 그 속에서 젊었던 지난날의 우리를 느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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