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내가 사랑스럽다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다.
내 이야기를 말로 하는 것에 서툴기 때문이다.
서툰 것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표현을 해야 살아지는 감정이 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표현의 수단으로 말이나 글이 아닌
그림을 선택 하면서, 아니 내가 선택했다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릴 수 밖에 없는 감정을
밖으로 꺼내 놓으면서 나는 행복해졌다.
한없이 자유로워졌다 그 감정들로부터.
그래서 믿게 되었다.
어떤 수단으로든 표현하고 꺼내놓아야만 하는
그런 감정을 사람들은 누구나 갖고 있다고.
그것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릴때까지 묻어두더라도
언젠가는, 어떤 모습으로든, 떠오르게 된다는 것을.
한번쯤 보듬어주지 않으면 언젠가 못생긴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 나를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내것으로 받아들이고 내것이 되어야
비로소 평온하게 사라지는 아이러니한 그것.
그것 또한 내것임을 인정한 순간 그것을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었고 나는 자유로워졌다.
그림을 그리면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난다.
내가 나를 본다는 것은 어떤 놀이보다 재밌는 일.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만나면서
나는 내가 더 좋아진다. 새롭고 사랑스럽다.
무엇이든 관심이 많을수록 더욱 알고 싶고
알면 알수록 더욱 사랑스럽고 매력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우주를
함께 공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많은 영감을 받는 것은 책과 사람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그들의 우주와 나의 우주가 만나
더 큰 우주 속의 세상에서 서로의 에너지를 공유한다.
그것이 나의 그림에 그대로 담긴다.
그렇기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너무나 소중하다.
나의 우주와 만난, 만나는, 만날 사람들.
선과 색이 가진 힘.
그 힘의 매력에 빠져 오늘도 그리는 삶을 산다.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