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만난 나만의 공간
2020년 12월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내가 했다기 보다는, 일어났다고 표현한 것은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12월 20일쯤 마음에 쏙 드는 작업실이 내게 찾아온 것도 그 중에 하나이다.
작업실에 대한 생각은 올해 8월 개인전과 단체전 일정이 모두 끝난 후부터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100호 정도 큰 작업을 하는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더 많은 작품을 동시에 마음껏 늘어 놓고 싶었고 또 시야 확보도 충분히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올해 여름 전시 일정이 끝난 후 집에서 15분 이내로 걸어갈 수 있는 상가 위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예산으로 얻을 수 있는 공간은 크기가 작아 집에서 하는 작업과 비교 하여 이점을 얻기가 어려워 보였다. 예산을 조금 더 늘린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관리비가 비싸서 추가로 생각해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상가 작업실이 내 집의 작업 공간보다 좋게 느껴지지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현실적인 문제로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주거 형태는 일반 주택이다. 아파트가 닭장 같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했고, 똑같은 구조의 집들이 위 아래 옆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고 생각하면... 그냥 뭔가 꽉 막혀 있는 기분이 든다.
하늘에 붕 떠서 살고 있는 기분이 영 별로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눈이 땅에 떨어지는 풍경을 보고 싶고, 비가 내리면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현실적인 문제,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작업실에 대한 감성적 느낌의 문제로 집 주변의 상가 작업실을 알아보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렇게 작업실에 대한 생각은 멀어져갔다.
종종 작업실 여부에 대해 물어오는 분들이 계신다. 직접 그림을 보고 컬렉팅을 하고 싶은 분들이 그렇고 꼭 구매를 하지 않더라도 팬의 입장으로 작가의 작업 공간을 궁금해 하셔서 작업실 위치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작업실에 대한 문의를 받았지만, 이런 것들이 작업실을 얻어야겠다고 결심 하는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아니, 어쩌면 당장 영향을 주지는 못했지만 내면에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12월 초까지 작업실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12월 초! 정확히는 12월 7일! 작업실에 대한 로망이 여름에 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정말 강하고 절실하게 찾아왔다.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작년부터 지금가지 이어오고 있는 빈센트 오마쥬 작업에 대한 아티스트톡을 하던 날이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빈센트 반고흐에 푹 빠져 오마쥬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내가 만난 빈센트는 어떤 사람이였는지.... 작품에 담은 나의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강연이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강연이 끝난 직후 참석자 중에 한분이셨던 사진 작가님께 작업실에 대한 이야기를 뜬금없이 꺼냈다.
작업실을 갖고 싶은데,
혹시 적당한 곳 알고 있는 곳 있으세요?
수원 행궁동에 작업실을 갖고 계신 홍채원 사진 작가님이다. 내 지역도 수원이였기에 작업실 정보에 대한 문의를 작가님께 먼저 꺼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이 여름 이후부터는 작업실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가 빈센트 강연을 하고 난 직후 작업실에 대한 열망이 폭풍처럼 내 마음에 일렁이게 되었다는 것.
원하는 공간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딱 맞는 공간이 찾아올거예요.
사진 작가님은 조급해 보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다. "정말 그럴까요" 하며 되물으면서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하는 마음이 그날부터 시작 되었다.
1층이였으면 좋겠어요.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싶고
비가 오면 비 소리를 듣고 싶어요.
내가 원하는 공간이 어떤 곳인지부터 생각했고 부동산에 내가 원하는 조건들을 말씀 드렸더니 쉽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 감정과 느낌에 대한 조건을 가장 먼저 늘어놓게 되었고, 사장님은 웃으셨다.
1층이지만 사생활 보호가 꼭 되어야 해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집에서 차로 20분 이내까지 괜찮아요.
한적한 시골이여도 괜찮아요.
근데 밤에도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무서운 곳은 안될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조건들을 더 늘어 놓았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비싸면 안돼요. 싼데." 이 말까지 덧붙이고 나니, 부동산 사장님의 자신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 이 부동산 사장님은 평소 나와 테니스를 함께 치는 동네 언니이다.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응원해주고 늘 관심을 가져 주는 감사한 지인이였다.
나의 그림은 언니에게 달렸어요!
어렵지만 꼭 알아봐주세요!
이렇게 내 마음에 드는 작업실에 대한 강렬한 열망은 염치 없지만 부동산 언니에게 부담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너무 너무 너무 감사하게도 언니는 몇날 몇일을 나를 위해 이곳 저곳 발품을 팔며 알아봐 주셨다....ㅠㅠ
언니가 내가 원하는 조건에 다 부합되지는 않겠지만 참고로 보라고 주소를 내게 알려주면 늦은 밤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찾아가 보았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 어떤 부분이 아쉬운지 구체적인 조건들을 전달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면서 꼭 1층이 아니여도 옥탑방도 내가 원하는 작업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서 작업실에 대한 희망은 계속 커져갔다.
12월 중에 가장 바빴던 날로 기억한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 디지털 드로잉 강의 런칭을 위한 영상 촬영을 했던 날이다. 오전에 외부 미팅이 있었고, 오후 2시 강의 영상 촬영 그리고 저녁 7시에는 랄랄라 하우스에서 모임이 있던 날로 아침부터 밤까지 스케쥴이 있었던 12월 11일 금요일.
영상 촬영 중에 부동산 언니에게 주소가 담긴 메세지가 왔다. 뭔가 희망적인 목소리가 담긴 메세지였다. 도저히 여유가 없을것 같았던 날이라 다음날 가보겠다고 답장을 보냈는데 영상 촬영이 예상보다 조금 일찍 끝나 한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당장 그 주소지로 달려갔고 운명처럼, 기적처럼, 선물처럼,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났다.
화장실의 오래된 깨진 타일 그리고 세면대 조차 없는 낡은 곳. 그리고 낡은 시트지를 몇번이고 덕지 덕지 붙여져 있는 주방. 사실 이 곳이 내가 살아가는 현실적인 공간이라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을거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현실과 독립되어 분리된 공간을 하나 더 갖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렇게 나는 12월 23일 입주하기로 계약을 완료 했다.사실 작업실을 갖고 싶다고 마음 먹었을때의 생각은 나 혼자 틀어박혀 있을, 그러니 꾸미고 말고 할것도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계약을 하고 나니 사람들을 초대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내 취향을 담아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이 주는 힘이 나에게는 어마 어마 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중요한 공간을 내 취향과 감성으로 가득 담고 싶어졌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찾아오는 기회에 몸을 맡겨보자.
여러가지 기록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던 2020년 12월. 작업실을 갖게된 이야기 먼저 포스팅 하고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하나씩! 모두 다! 블로그에 기록해야겠다 꼭!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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