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오는 바람에 대한 이야기
지금 마음의 풍경은 어떤 모습인가요?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바람"이였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억새처럼 보이는 황금빛의 들판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다양한 강도의 바람으로 들판의 황금빛은 요동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저 잔잔하고 평화로운 황금 색깔의 바다 지평선으로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가까이에서 느끼는 그 들판은 평평하지 않았다. 지평선이라고 말하기에는 굴곡이 져 있는 작은 언덕과 같은 들판이다. 드넓은 황금빛 바다 위에 내가 혼자 서있는 풍경이지만 외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외로워 보이고 싶지는 않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내가 서있는 들판도 그랬다.
멀리서 보면 잔잔한 바다
가까이서 보면 요동치는 바다
- 마음터치 우주 -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고 밤인가 했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감각들은 어떤 특정 시간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내가 발을 딪고 서 있는 들판에는 밤인지 낮인지 분간할 수 없는 다른 시공간과는 전혀 다른 빛이 흐른다. 들판을 비추는 빛이나 시간이 소유하고 있는 색깔 때문이 아니라, 들판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의 흐름에 따라 들판의 색깔이 변하는 듯도 하다.
내가 서 있던 들판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 마음터치 우주 -
나는 나의 모든 감각을 열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즐기고 있다. 사실 즐기고 있다고 하기에는 때로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강력한 세기의 바람에서조차 나는 그 바람을 즐기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 나는 그 바람들이 무섭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 바람은 기존에 내가 만났던 바람보다 세기도 물론 강했고, 불어오고 나가는 방향도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새로운 바람이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그 바람은 낯설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몸을 움츠러들게 했고 나를 작게 만들어 바람에 저항하고 싶은 생각도 자주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렇다고 그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돌진 하지도 않을거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첫번째 질문:
들판에 불어오는 바람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은 어떤가요?
이리 저리 흔들거리고 있어요. 그 흔들림이 싫지는 않아요. 몸에 힘을 빼고 바람이 이끄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날아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들어요. 중요한 것은 온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자연스럽게 흔들거리고 싶기는 하지만, 땅에 딪었던 나의 발을 떼어버리면서까지 멀리 날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바람이 이끄는 저 멀리의 세상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지금 이곳에 서있기 위해 힘을 주며 애쓰고 있는 나의 작은 발.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스스로에게 던지는 두번째 질문:
바람이 불면 어떤가요? 좋은가요?
바람에 대한 생각을 종종 했었어요. 바람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상황 그리고 긍정적인 상황 모두에 쓰일 수 있는 단어 같아요. 그동안 생각했던 바람은 언제나 긍정적인 느낌으로 사용했었어요. 사람과의 관계에도 바람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여백은 꼭 필요하다고. 그렇게 나에게 바람이란 것은 긍정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대상이였기에 이번 나의 마음의 풍경을 묘사할때 생각한 바람 역시 좋은 느낌의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번 마음의 풍경에 등장하는 바람에 긍정적 느낌만 있지는 않음을 자세히 마음을 들여다 보는 글쓰기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좋은 관계너와 나 사이 여백 있는 사이
너와 나 사이 바람 부는 사이
바람이 불어오는 여백이 필요한 사이⠀
눈 마주침의 힘을 아는 사이
마음과 마음의 지름길은 눈길
- 마음터치 우주 -
예측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은 언제나 저에게 두려운 감정을 몰고 옵니다. 다양한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바람의 세기도 제각각이예요. 내가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드넓고 황량한 들판 위에 제가 서 있습니다. 그 바람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도 하지만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은 그 흐름에 몸을 맡겨 보는 순간까지도 망설이고 걱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지금 있는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나게 될 거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예요. 지금 내가 서 있는 세상도 충분히 편하고 만족할만하다고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은 욕심일 수 있다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 합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세번째 질문: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불안하지 않나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어느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의 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창작을 한다는 것이 결과에 대한 보상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쌓일수록 더 확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새해가 밝았지만 2021년 목표나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되었어요. 구체적으로 목표나 계획을 잘 세우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새해에는 나름의 이루고 싶은 목표들을 생각했었거든요.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저에게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겠지요. 제 힘으로, 의지로 만들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제게 다가오는 기회들에 몸을 맡겨 볼 생각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다가올 기회들이 저에게는 바람이라는 단어로 표현이 된것 같아요. 제게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에 몸을 맡겨 볼 생각입니다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던지는 네번째 질문:
땅에 딪고 있는 발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지난 2020년에 많은 기회들이 제게 찾아왔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제가 이제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하면서 한해를 보냈어요. 제가 가진 그릇에 비해 너무 크고 감사한 행운들이라는 생각에 매번 새로운 도전 앞에서 부담스럽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어요. 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음의 풍경을 이야기 하면서 표현했던, 작지만 궂게 딛고 있는 현재 이곳에서의 나의 발 때문이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새롭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겨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회를 받아 들이며 도전하고 경험해 나갈거예요. 하지만 땅에 단단하게 뿌리 내리고 있는 나의 가치관의 상징으로 생각되는 그 발은 떼어버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자유롭고 싶다는 참 많이 하면서 살았어요. 절대로 나의 자유를 침범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어쩌면 게으르고 두려움으로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자유에 대한 의지를 이용해 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토록 자유롭고 싶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자유롭고 싶은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섯번째 질문:
바람이 불지 않는 평온한 들판이였다면 어때요?
바람이 불지 않는 저의 마음의 풍경 들판을 상상해 보았어요. 바람이 불어오지 않으니 이리 저리 흔들릴 필요도 없어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하는 마음도 들지 않겠지요. 눕고 싶으면 누울 수 있고 걸어가고 싶은 방향 그대로 걸어도 방해되는 요소가 없어서 편하게 갈 수 있을거구요.
더없이 평온해 보이지만 지루할 것 같아요. 내 주변 상황은 평화롭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안의 마음은 힘겹게 방황하게 될것만 같아요. 한때 "지루해지면 끝장이다."하는 심정으로 하루를 살아내야 했던 때가 있었어요. 무기력증에 빠져 나만의 동굴에 갖혔어요. 그 동굴을 빠져 나오기 위해 그때 제게 필요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니 바로 바람이였나 봅니다.
지금 제 주변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있어요. 동굴에 갖혀 있던 그때 제게는 어떤 바람도 불어오지 않았어요. 지금 불고 있는 다양한 방향과 세기를 갖고 있는 바람이 어쩌면 저의 적극적 움직임으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움츠러들고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바람도 불어오지 않게 되는거구나.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
요즘 평온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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