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을 담는 그릇

by 자명

2008년에 홍대 앞에서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었을 때였다. 당시 나는 22살이었는데 휴학하고 학원을 더 다니던 중이었다. 계속 그래왔듯이 그날도 아무도 없는 학원에서 혼자 새벽에 그리고 있었는데, 하다가 내가 나한테 화가 나서 연필을 집어던졌다.

'내 손은 왜 이렇게 밖에 안될까', '이 바보 같은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다' 이런 생각들로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혼자 답답해서 울다가 예전에 내가 고등학생일 때 날 가르쳐주셨던 선생님께 전화했다.

늦은 시간이라 민폐인데 선생님은 태연하게 전화를 받으셨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그림이 잘 안 되냐."


"맞아요. 선생님 저 처음에 만났을 때 어떤 아이였어요? 저 진짜 재능 하나도 없는데 그냥 꾸역꾸역 나 혼자 아닌 것을 붙잡고 이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너 내가 예전에 한 말 잊었나 보네. 내가 그동안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재능 있는 아이들은 정말 많다. 그 재능이 뛰어나든 애매하든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많아. 그런데 그 재능을 담을 그릇을 가진 아이들은 많지 않아. 그래서 끝까지 가질 못해. 내가 말했지 않았냐 재능보다 그걸 담을 그릇이 더 중요하다고. 너 고등학교 때 뭐 이렇게 지독한 애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 아주 지독한 애라서 얘는 계속하겠구나 싶었다. 잡생각 말고 그림이나 그려."


"손이 너무 바보 같아서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인걸요."


"그런 멍청한 생각할 시간에 그림이나 더 그려!"


"네...."


멍청한 생각 한다고 혼나서 그림이나 더 그렸다.



"타고나야 하는 건 재능이 아니라 노력을 타고나야 해."
- 유도 선수 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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