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양보와 배려를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양보와 배려를 왜 배우지 못한 걸까? 그것은 어떻게 배우는 것인가?
문득 생각해 보니 풍요로움 때문에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모자람 속에서 배워지는 것들 같아서.
예를 들어서, 빵이 3개가 있고 사람이 3명이 있다. 그럼 각자 1개씩 먹으면 다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빵은 1개가 있는데 사람이 3명이라면 그 3명이 다 먹으려면 빵 1개를 3조각으로 나누게 된다. 그러면 3명 모두가 먹을 수 있다. 나누고 양보해야 할 상황이 눈앞에 벌어져야 나눔과 양보를 선택할 일이 생긴다.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고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교육환경 속에서는 내 것을 나누고 양보하는 것을 배울 기회가 없다.
예전에 성당 미사시간에 어떤 신부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예수께서는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을 먹게 했다'는 부분이다. 이것은 매번 들을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 신부님의 말씀은 와닿았다.
"이것은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5천 명의 사람들이 먼 길을 왔다면, 누군가는 식량을 넉넉히 가져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식량을 가져오긴 했지만 가져온 식량을 다 먹은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모두가 먹어야 한다고 하면 그러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식량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먹되, 다른 이들의 것을 남기기 위해 조금만 먹었을 겁니다. 반면, 식량이 넉넉히 있던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식량을 나눔을 위해 바구니에 넣었을 겁니다. 시작은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였지만 그 바구니 속의 음식은 먹기도 하고 넣기도 하면서 모두가 먹을 수 있던 거지요. 예수께선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을 만들어주신 거고, 사람들이 그것을 해낸 겁니다."
따뜻한 기적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시작된 양보와 배려의 결과다. 나누고 양보하고 배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