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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담은 바다의 시작

오키나와 바다의 기억

by 자명

처음 바다를 그리게 된 건, 2017년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온 이후부터였다. 내 머릿속에는 처음으로 직접 본 바닷속의 모습이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아른거렸다. 차갑지 않은 미지근한 바닷물. 잠수복 덕분에 춥지 않았고 내게 닿는 물의 느낌은 포근했다. 스노클링 마스크를 쓰고 본 바닷속의 모습은 땅 위와 다른 모습에 이질감이 들면서 판타지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기도 했다. 수면을 경계로 물 밖과 물속의 모습은 지구라는 공간 안에 함께 공존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는 마법 같은 신비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고래상어는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라고 한다. 오키나와의 추라우미 수족관에서 그 거대한 생명을 처음 보았다. 하지만 그 거대한 몸은 바다를 잃고 수족관에 갇힌 느낌이었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큰 수족관이라 해도 그 거대한 생명을 담기에는 좁아 보였다. 나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그의 눈을 보았다. 그 눈은 바다를 닮았지만 바다를 잃은 눈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그림 안에서 고래상어를 바다로 보냈다. 그곳에서는 이제 아무도 그를 가두지 못한다. 내가 그린 바다에는 고래상어를 담기도 하고, 스노클링을 하면서 본 물고기들을 담기도 했다.


나는 바다를 낮에는 햇빛이 스며들고 밤에는 달빛이 스며드는 고요한 바다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추라우미 수족관에서 본 스스로 빛을 내는 심해어가 떠올랐다. '그림도 스스로 빛을 낼 수 있을까?' 나는 그림에 빛을 담고 싶어졌다.

나름대로 야광 안료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 자체로 쓰기에는 형광연둣빛 색이 너무 강해서 거슬렸다. 색은 투명하면서 빛만 담고 싶었다. 수없이 연습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야광의 성질은 그대로 두고 색을 투명하게 바꿀 수 있었다. 투명해진 야광안료를 통해서 낮에는 빛을 머금고 밤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그림이 되었다. 그렇게 하나의 그림에 낮과 밤을 동시에 담았다. 수면을 경계로 바다 위와 바닷속 세상이 다르고, 조용한 낮의 도시가 밤이 되면 형형색색 불빛으로 화려한 도시가 되는 것처럼 모든 것들은 다른 모습을 지닌다. 낮에 숨겨져 있던 진짜 모습이 꼭 밤이 되면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도 외향적인 모습과 내향적인 모습, 감정적인 모습과 이성적인 모습으로 우리는 늘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통적으로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는 희망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지 행복하기를 원한다. 양면성을 지닌 바다는 낮과 밤을 동시에 담아 여러 모습을 지닌 하나를 보여주면서 그 빛은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향한다.


빛이 스며든 바다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품고 있다. 바다는 생명을 창조하며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감싸 안는다.


Whale shark in Okinawa sea.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017. 김예빈 作)
전시실에서의 모습 (2019년 개인전, 대전예술가의 집)


Snorkeling in Okinawa sea.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017. 김예빈 作)


2019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vol.7 (서울 코엑스 3층 D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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